합리 모드 v 생존 모드

의뢰인의 마음, 뇌과학으로 이해하기

by 뉴욕 산재변호사

동공이 커지며, 심박수가 증가하고, 호흡이 가빠지는 등 교감 신경계가 활발해지기 시작했습니다. 혈액에 분출된 포도당은 세포가 필요로 하는 에너지를 제공하고, 내부 장기에서 빠져나온 혈액이 팔다리로 이동합니다. 면역 체계가 들썩거리며 분비된 아드레날린과 코르티솔이 근육에 쏟아집니다. 이 모든 신체 변화는 스트레스 요인에 반응하여, 더 잘 뛰거나, 싸우거나, 도망갈 수 있는 에너지를 공급하기 위함입니다. 합리적,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전두엽의 기능이 주춤거리면서, 본능적으로 즉각 반응하는 변연계가 전면에 나섭니다. 급기야 뇌는 합리 모드에서 생존 모드로 전환합니다….


산재 관련 사고를 당해 통증을 겪고, 잘 나가던 직장에서의 보수 대신 보험사에서 제공하는 많지 않은 대체 급여 (lost wage)에 의존하며 치료를 받기 위해 통증병원에 오가는 것으로 하루를 보내고 계실 제 의뢰인들. 그분들의 신체 반응과 뇌를 정확히 들여다볼 수는 없지만, 추측컨대 위와 같은 모습이 아닐까 상상을 합니다. 다친 정도와 통증의 정도에 있어서 편차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것이 유발하는 스트레스가 만성화됨으로 인해 그분들의 뇌는 사고 전 합리 모드에서 사고 후 생존 모드로 전환되었다는 것은 충분히 짐작 가능합니다.


생존 모드로 전환한 뇌는 분명 사고 전과 다른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을 보이게 하는데요. 우리나라 속담에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고 놀란다”는 말이 이것을 잘 보여 줍니다. 자라를 보고 나서 놀란 가슴이라고 표현했지만, 놀란 것은 사실 가슴이 아니라 우리의 '뇌'이지요. 자라를 보고 나서 그것이 나를 공격할 대상으로 파악한 뇌는 그로부터 도망칠 에너지원을 각 세포에 전달하기 위해 심장 펌프를 촉진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 반응으로 인해 합리 모드에서 생존 모드로 전환되어 있던 뇌는 '솥뚜껑'이라는 유사한 자극에도 '자라'로부터 얻은 동일한 스트레스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입니다. 자라를 보지 않았던, 그리하여 놀랄 일도 없었던 뇌였다면 솥뚜껑을 보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마도 평소와 다름없이 “오늘 무슨 밥을 맛있게 해 먹을까?”란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부상으로 인한 통증, 경제적 어려움, 가족과의 불화, 이혼과 실직과 같은 스트레스도 분명 제 의뢰인들의 뇌를 생존 모드로 전환시켜 놓았을 텐데요. 자라보고 놀란 사람이 솥뚜껑만 보아도 놀래듯, 별 문제 아닌 것에도 놀람의 반응을 보이면서 왜곡된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문제는 의뢰인의 케이스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결정이 사건 당사자인 의뢰인이 아닌, 판사와 그의 변호사, 그리고 보험사로부터 나온다는 것입니다. 판사, 변호사, 보험사는 모두 법리로 무장되어 냉철한 합리 모드의 뇌를 사용하는 자들입니다. 생존 모드의 뇌를 갖고 있는 의뢰인은 합리 모드의 뇌로 당신들의 케이스를 접근하는 판사, 변호사, 보험사와 다른 생각과 행동을 보일 수밖에 없을 텐데요. 히어링 (hearing)마다 판사가 내리는 부상 부위, 사고 전 소득, 치료와 수술 필요성, 보상 등의 판결에 대해 청구인이 불만족스러워하고 낙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판사가 “청구인은 앞으로 주당 600불을 대체 급여로 받는 것으로 결정함.”이라고 판결을 내렸을 때, 판사, 변호사, 보험사는 그 판결을 사고 전 소득 900불에 근거하여 볼 때, 2/3에 해당하는 합리적인 판결이라고 생각할 것일 테지만, 사고 전 900불을 받던 청구인은 “300불은 나중에 따로 받는 것인가?”와 같이 합리 모드인 저의 뇌가 생각하기 어려운 질문을 하시곤 하지요. 900불의 임금을 받던 분이 600불이라는 생존의 경계에 걸려있는 대체 임금을 받도록 판결받았다는 사실이 납득이 안되신 것인데, 아무리 법이 사고 전 2/3가 대체 임금의 100% 수준이라고 설명드려도 외뢰인은 불만족하시기 마련입니다.


또 한 예로, 부분 장애 (partial disability) 진단과 판결을 받은 제 의뢰인에게 "구직활동의 의무과 부과되었으니, 지금 바로 구직활동을 시작하세요.”라고 조언을 드리면, “저보고 일을 하라는 소리인가요?”란 반응이 일반적입니다. 합리 모드인 뇌가 제 조언을 받아들였다면 “구직활동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요?”란 질문이 나왔어야 하는데, 생존 모드인 뇌가 해석하다 보니 “일을 하라는 소리인가?”와 같은 합리 모드의 뇌가 기대하기 어려운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을 어루만져 드리고, 솥뚜껑 보고 또 놀래기보다는 잘 대처하는 방법을 알려드려야 할 소임을 부여받는 변호사. 생존 모드로 전환되어 있는 의뢰인의 마음을 더욱 이해하고 냉철한 변호사의 관점과 그분들의 관점을 동시에 견지하는 지혜로운 카운슬러 되기를 다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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