곡즉전 (曲則全)

불안과 분노, 그리고 생각의 전환

by 뉴욕 산재변호사

상해 사건을 갖고 저를 찾아오시는 의뢰인들의 감정을 읽어 드리는 일은 법정에서의 변호만큼이나 저에게 중요합니다. 그분들의 복잡한 감정을 딱 두 개의 단어로 표현하면 불안과 분노가 될 것입니다. 제 하루 일과 중 70% 이상의 시간이 제 의뢰인들의 불안과 분노를 달래 드리는데 쓰이는 것을 볼 때, 변호사 업무는 변호 업보다는 카운슬러에 가깝다는 생각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불안이란 "사실을 알려달라"는 감정이고, 분노란 "진실을 알려달라"는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사실과 진실은 언뜻 유사해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의미가 사뭇 좀 다릅니다. 사실이란 말 그대로 실제로 있었던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정보'란 말이 이 범주에 들어가며, 따라서 사실이란 것은 양적인 측면이 강합니다. 다시 말해, 불안을 달래기 위해서는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란 뜻입니다.


반면, 진실은 "거짓이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진실을 밝힌다”란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진실이란 지금 일어나는 다양한 사실의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진실은 원인의 다른 이름이며, 양보다는 질에 가깝고, 따라서 상대적으로 더 간결합니다.


사람들은 어떤 상황보다도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사형 날짜를 모르는 사형수가 극도로 불안해하고, 귀신이나 좀비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호러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불안을 넘어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불안은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증폭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치 앞을 알 수 있는 시국에서도 정보를 제공받아 일정 수준 이상 예측이 가능해지면 상당히 완화될 수 있는 것이 불안이란 감정입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현 상황을 인정하고 대비하거나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상황이 불안하면 사람들은 그래서 어쭙잖은 위로나 격려보다 차라리 정확한 사실을 요구합니다.


초기 코로나 사태에서 대한민국은 소위 K방역이라고 세계로부터 칭송받는 성공적인 방역 시스템을 구축하였는데, 그것은 정부와 컨트롤 타워가 코로나 확진자와 사망자수를 실시간으로 공개함으로써 정확한 사실을 전 국민에게 알린 결과라는데 여러분들도 동의하실 것입니다. 실시간으로 업데이트되는 사실 정보를 바탕으로 국민들은 코로나 확산 정국에서도 불안을 상당히 덜어낼 수 있었고, 마스크와 거리 두기 등 생산적인 대비책에 힘씀으로 방역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반면에, 분노는 원인을 따지는 감정이기 때문에, 아무리 객관적 정보의 양이 많다 하더라도 충분히 느낄 수 있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사그라지면 전 세계가 다음으로 맞닥 드려야 할 과제가 바로 자국민들의 분노를 어떻게 달랠 것인가 하는 문제라고 예상합니다.


제 의뢰인들은 근무 중 다쳐서 치료와 보상을 필요로 하는 산재 신청자들입니다. 한창 일을 하여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 다쳐 일을 못하게 되면 제일 먼저 엄습해 오는 감정이 바로 불안입니다. 또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 다친 그분들이, 치료와 보상에 있어 보험사와 사사건건 부딪히게 될 때 느끼는 감정이 바로 분노입니다. 저는 불안해하는 의뢰인에게는 최대한 구체적인 법규정을 자세히 알려 드리고자 노력함으로써 그 불안을 달래 드립니다.


그러나, 화를 내고 있는 의뢰인들에게는 아무리 관련 법률을 설명해 드려도 그분들의 분노가 사라지지 않는 것을 종종 봅니다. "사고를 당해서 억울한 사람은 나인데, 왜 내 뜻대로 치료가 안되고, 왜 내 뜻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가, 이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하는 분노인 것이지요. 이럴 때는 아무리 뉴욕의 산재보험 시스템이 노폴트 (no fault) 제도를 따름으로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지 아니하고, 그 치료와 보상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보험사와 협상 또는 행정법원의 재판을 통해 처리된다고 아무리 설명을 해도 그분들의 분노를 달래기에 역부족임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노를 느끼는 의뢰인이 “왜 내가 다쳐야 했고, 왜 산재보험 시스템은 나의 치료와 보상 청구에 갖가지 제한을 두는가?”에 과한 진실 캐기로 분노의 화살을 돌리게 되면 생산적인 사건 진행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


노자도덕경에 보면 곡즉전 (曲則全)이란 말이 나옵니다. “꼬부라지면 온전하여진다”는 뜻입니다. 꼬부린 채로 사는 상태는 오히려 온전하게 펴질 수도 있는 가능성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이 꼬부라진 것은 인생에서 억울한 일을 당하여 움추러든 상태라는 의미도 함의하고 있습니다. 직무 수행 중 다친 분들은 대부분 정신없이 일에만 매달려 오신 선량한 가장, 세금을 성실하게 납부해 온 젊은 전문직들입니다. 자신의 건강과 가족을 돌볼 시간도 없이 일에 매달려온 그분들에게 직무 관련 사고는 오히려 당신의 건강을 좀 더 잘 챙기고, 가족을 돌보며, 좀 더 나은 미래를 그려보고 대비하게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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