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의 합리적 선택 돕기
산재보험 사건을 종결지을 때, 청구인은 보상금을 청구할 기회가 주어집니다. ‘기회’란 말에서 알 수 있듯이, 보상금이란 100% 보장된 권리는 단연코 아닙니다. 보상금이란 다른 말로 하면, 보험사 파일에 열려있는 나의 케이스를 닫아주는 대가로 받는 돈을 말합니다. 즉, 보상이란 케이스를 닫음으로써 보험사가 얻는 이득과 그로 인해 청구인이 받는 이득이 서로 비슷할 경우 교환 가치로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케이스를 닫음으로 인해 청구인이 받는 이득이 보험사가 얻는 이득보다 더 크면 협상이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보험사는 케이스를 닫는 것이 그들에게 이득이 된다고 생각될 때만이 협상에 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보험사와 상대하는 변호사의 협상 기술이란 결국, 케이스를 닫을 시 청구인이 받는 이득보다 보험사가 얻는 이득이 커 보이도록 착시 효과를 유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케이스를 계속 열어 두었다가는 보험사 당신에게 득 될 것이 없어요. 오히려 제가 원하는 보상금을 내놓고 케이스를 닫는 것이 보험사 당신에게 더 득이 될 것이에요.”라고 유도하는 것이지요. 그 유혹의 언어는 변호사의 경험이며 지혜입니다.
보상이란 다른 말로 ‘선택’이 될 것 같습니다. 근로 중 직무 관련 사고로 인해 열린 산재보험은 사실 평생 열어두고 근로 중 다친 부위가 아플 때마다 꺼내 쓰는 보험입니다. 보험이 없는 사람이 무척 많은 미국에서, 산재보험은 직무 관련 사고 부위에 대한 치료 목적으로 평생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는 보험 혜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청구인은 케이스를 평생 열어두는 대신 닫음으로써 보상금을 받고자 합니다. 케이스를 한번 닫으면, 그 케이스와 관련되었던 부상 부위는 개인 보험이 있어도 커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의 케이스를 굳이 닫을 필요가 없는데도 닫고자 하는 것, 케이스를 계속 열어두는 대신 닫음으로써 보상을 택하는 것, 중대한 선택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의 선택 행위에는 ‘과도한 가치 폄하 (Hyperbolic Discounting)’이란 것이 작용합니다. 그것은 무엇인가를 주고받을 때, 인간의 뇌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물건의 가치가 떨어진다고 생각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과도한 가치 폄하 효과 때문에, 우리는 가치가 높지만 나중에 얻을 수 있는 것보다는 가치는 작아도 당장 얻을 수 있는 것을 더 높게 평가하는 경향성을 갖게 됩니다.
과도한 가치 폄하 현상을 증명하는 고전적인 실험이 있습니다. 실험자들에게 연구원들이 두 가지 선택지를 주었습니다. 하나는 오늘 당장 100달러를 받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1주일 후에 120달러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 선택지에 대한 여러분들의 선택은 무엇인가요? 대부분의 실험자들은 오늘 당장 100달러를 받는 쪽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들도 같은 선택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과도한 가치 폄하 효과는 인류가 진화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습득한 생존수단이란 것이 뇌과학자들의 설명입니다. 우리의 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히 합리적이지는 못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인류는 생존에 필요한 중요한 정보라고 판단하는 것들만 선택적으로 처리하도록 진화하였습니다. 인류의 조상이라고 일컫는 호모 사피엔스만 보더라도, 당시 인류는 야수들이 간단히 잡아 포식할 수 있는 먹잇감에 불과했습니다. 표범과 같은 날카로운 이도, 곰과 같은 힘도, 독수리와 같은 날개도 없던 그들은 당장 내일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확신할 수 없는 혹독한 환경에 살았던 것입니다. 당장 내일의 생존 여부가 불확실한 극한 환경 속에 살던 인류는, 먼 미래 대신 지금 당장 생존하는데 필요한 것을 즉각 취하도록 진화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뇌는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 때문에 현재의 확실한 이익을 포기한다는 것에 익숙하지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무리 그것이 비합리적인 행동일지라도,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보다는 당장 확실한 이익을 좋아하고 선택합니다.
저는 보상 문제에 있어서도 제 의뢰인으로부터 이러한 ‘과도한 가치 폄하’를 관찰합니다. 보험사와 보상을 논의하는 지루한 협상 과정에서, 의뢰인들이 그런 시간 싸움을 견디기 힘들어하는 것입니다. 그분들에게 있어서는 지금 당장의 보상이 더 가치가 있을 텐데, “협상이 진행 중입니다. 시간을 주십시오. 더 많은 보상으로 보답하겠습니다”라며 불확실한 미래의 이익을 말하고 있는 변호사가 얼마나 답답하시겠습니까? 의뢰인의 ‘과도한 가치 폄하’를 이해함과 동시에, 불확실하지만 가능성 있는 보상을 위해 그분들의 이해를 구하는 것, 결국 변호사란 의뢰인의 보다 합리적인 선택 행위를 돕는 사람이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