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전이와 역전이 현상
의뢰인과 나 자신의 감정 읽기
의뢰인과의 소통에 있어 제가 주의하는 것 중의 하나가 감정 전이 (transference)과 역전이 (Countertransference)입니다. 감정 전이, 역전이 현상 모두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에서 나온 개념인데, 현대 심리치료에 있어서도 치료자와 내담자 사이의 심리 역학 관계를 설명하는데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변호사와 의뢰인의 심리 역학 관계도 치료자와 내담자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양자의 관계는 모두 의뢰인과 내담자가 갖고 있는 문제로부터 시작한다는 것, 그리고 변호사와 치료자의 비밀 유지의 의무가 있다는 것까지 쏙 빼닮아 있습니다. 의뢰인이 가져오는 문제는 법률문제이고, 내담자가 가지고 오는 문제는 심리 문제란 것만 다를 뿐이지요. 그리고 사실 많은 경우 법률문제와 심리 문제는 복합적으로 얽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혼 소송의 경우 부부가 갖고 있는 문제는 법률문제일 뿐만 아니라 심리 문제입니다. 산재보험 클레임에서도 청구인과 고용주 사이에 흐르는 심리적 갈등 문제는 법률문제와 함께 해결해야 할 변호사의 숙제입니다.
감정 전이(transference)란 과거의 상황에 느꼈던 특정한 감정, 혹은 날 때부터 무의식에 새겨진 정서를 현재의 다른 대상에서 다시 체험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감정이나 정서는 보통 유년기의 주요한 관계에서 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심리 치료 장면에서 내담자가 치료 중 치료자를 부모처럼 느낄 수 있는데 이것이 전이의 예입니다. 부모에게 가지고 있던 감정을 치료자에게 무의식적으로 투사하는 것이지요. 이혼한 내담자가 전 배우자와 비슷한 행동이나 목소리 혹은 외모를 가진 치료자를 불신하거나, 어렸을 적 친구와 밀접한 애착 관계를 형성했던 내담자가 그 친구를 닮은 치료자에게 과도하게 순응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것도 전이의 예가 됩니다.
의뢰인과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음을 느낄 때, 전 의뢰인이 저에게 이런 감정 전이를 겪는 것이 아닌가 의심을 합니다. 산재보험제도를 열심히 설명해도, 불만만을 토로하며 제 조언을 귀담아듣지 않는 의뢰인들이 간혹 있습니다. 권위주의적인 부모에 의해 양육되어 그 부모에 대한 저항감이 형성되어 있는 의뢰인의 경우, 제가 권위적 조언을 하였으므로 제게 반감을 형성하였다는 추측이 가능합니다. 이런 의뢰인의 경우 저는 그분들의 감정을 제가 잘 이해한다는 모습을 계속 보여주려 노력합니다. 법률을 열심히 설명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 오히려 법률 설명 대신 의뢰인이 느끼는 감정을 잘 읽어 드리려는 모습을 보여 드림으로써, 그분들의 감정 전이를 극복하려 하는 것이지요.
전이 현상과 반대로,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을 역전이(Countertransference)라고 합니다. 역전이는 치료자의 감정을 환자에게 전환하거나 환자와의 감정이 얽힌 치료자의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치료자는 환자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역전이에 대하여 스스로 조율함으로써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고, 환자가 자신들로부터 무엇을 이끌어내려 하는지 이해하는 단서로 활용합니다. 예를 들어, 치료자가 내담자에게 성적으로 끌리는 경우, 치료자는 자신이 처한 역전이 상황을 이해하여야 하며, 내담자가 이러한 매력을 어떻게 이끌어 냈는지를 바라봐야 하는 것이지요. 역전이 상황을 인지함으로써 치료자는 내담자가 자신에 대하여 어떤 감정인지를 물을 수 있으며, 이러한 감정이 무의식적 동기, 욕구, 공포에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탐색해야 합니다.
저도 간혹 의뢰인과의 관계에서 이런 역전이 현상을 겪습니다. 예를 들어, 백인 의뢰인을 상대할 때, 명확한 근거 없이 “이 백인 의뢰인은 아시아계 변호사인 나에게 대해 인종적 편견을 갖고 있을 거야”라고 지레짐작하면서, 그 백인 의뢰인의 말 한마디에도 과도한 민감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있습니다. 백인 의뢰인이 “you know what I am saying?”이라는 말을 할 때, 그분의 마음은 그저 자신의 말을 제가 이해했는지 확인하는 질문이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속으로 “이 의뢰인은 내가 자신의 말을 못 알아듣는다고 생각하는 건가?”라고 생각하면서 불쾌한 감정을 느끼는 것이지요.
화장을 예쁘게 잘하고 다니는 여성들에게 화장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물어보면 ‘클렌징’이라고 답한다고 합니다. 의뢰인과의 성공적인 소통에 있어서도 화장만큼 내면세계의 클렌징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의뢰인이 혹시 겪고 있을지 모를 감정 전이, 내가 혹시 의뢰인에게 겪고 있을지 모를 역전이를 모두 이해하면서, 의뢰인과의 소통이 불편해질 때마다 이러한 감정 처리를 내가 잘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계속 되돌아볼 때, 비로소 의뢰인과의 소통 문제가 원만한 해결을 찾으리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