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상,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
저는 의뢰인들께 보상이란 ‘선택’이라고 말씀드립니다. 한번 열린 산재 상해보험 케이스는 사실 평생 열어두고 근로 중 다친 부위가 아플 때마다 꺼내 쓰는 보험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청구인은 케이스를 평생 열어두는 대신 닫음으로써 보상금을 받고자 합니다. 케이스를 한번 닫으면, 그 케이스와 관련되었던 부상 부위는 일반 보험이 커버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의 케이스를 굳이 닫을 필요가 없는데도 닫고자 하는 것, 케이스를 계속 열어두는 대신 닫음으로써 보상을 택하는 것, 중대한 선택 행위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제게 흥미로운 것은 같은 1만 불의 보상을 두고도 어떤 의뢰인은 많이 기뻐하는 반면, 어떤 의뢰인은 그렇게 기뻐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1만 불이 두 의뢰인의 케이스에 있어 모두 ‘최적’의 보상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액수를 받아들이는 의뢰인의 태도에서 차이가 있는 것이지요. 같은 보상에 대해 의뢰인의 보상 만족도가 달라지는 원인에 대해 저는 학문적 관심이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보상은 선택이 행위이고, 선택은 의사 결정의 다른 이름입니다. 의사 결정에 관해 케임브리지 대학의 울프람 슐츠 교수가 <네이처 신경 과학 (Nature Neurosciences), 1998년>에 실었던 실험 내용이 있는데, 전 이 실험 결과를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의뢰인의 보상 만족도가 달라지는 과학적 근거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슐츠 교수는 실험에서 모니터를 원숭이 앞에 설치하였습니다. 그리고 원숭이 뇌의 활동을 측정하기 위해 측좌핵에 전극을 꽂았습니다. 모니터에는 여러 기호들이 뜨는데, 그중 특정한 기호를 누를 경우에만 오렌지 주스가 나오게 해 두었습니다. 원숭이는 이 기호, 저 기호를 닥치는 대로 눌러보다가 우연히 특정 기호를 눌렀을 때 오렌지 주스가 나온다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처럼 예상하지 못한 보상 (오렌지 주스)을 얻게 되자, 측좌핵에 있는 도파민계 신경 세포들이 갑자기 발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시간이 지나면서 원숭이가 오렌지 주스를 나오게 하는 기호를 학습하게 되면, 그 기호를 누르는 ‘그 순간’에 신경 세포의 발화가 늘어나지, 정작 주스가 나오는 동안에는 발화가 증가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즐거움이 주스를 먹는 순간에서 주스가 나올 것을 기대하는 순간으로 옮겨간 것입니다. 이 발견은 원숭이에게 즐거움이란 보상 그 자체라기보다 보상이 나오리라는 기대감이라는 사실을 알려 주었습니다. 다시 말해, 오렌지 주스 자체보다는 오렌지 주스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즐거움의 원천인 것이었습니다.
그다음 실험은 더 재미있습니다. 특정기호를 누름으로써 오렌지 주스를 얻는 학습을 끝낸 원숭이에게, 특정기호를 눌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도록, 혹은 주스의 양이 줄어들도록 실험 조건을 조작해 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측좌핵 신경 세포의 활동이 평소보다도 훨씬 줄어드는 현상이 나타나더랍니다. 기대한 것보다 보상이 적으면 적어진 보상만큼 행복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화가 나는 상황이 되더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실험이 보여주는 것은 우리에게 만족이란 내가 얻는 효용에 의해서가 아니라, 효용에 대한 기대와 실제 얻은 효용 사이의 차이 값 (다른 말로, 예측 오차)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예상치 못한 보상(효용)이 주어지면 굉장히 기쁘지만, 보상이 예상대로 주어지면 별로 기쁘지 않고, 보상이 더 적게 주어지면 오히려 화가 납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실제로 얻는 보상이 아니라, 기대와 실제 보상의 차이 값인 것입니다. 우리의 일상 속에서도 월급 200만 원보다 길거리에서 주운 1천 원이 더 기분 좋지 않나요? 월급 200만 원은 기대대로 주어지는 것인 반면에, 길거리에서 주운 1천 원은 기대하지 않았던 선물로 받아들였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이 실험이 보상 만족감에 시사하는 바는 (1) 보상 자체보다는 보상을 받을 것이란 기대가 의뢰인을 즐겁게 할 것이라는 것, (2) 그러나 실제로 얻은 보상이 기대했던 보상보다 적은 의뢰인은 그 보상이 기쁘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의뢰인이 보상에 대한 기대를 가능한 적게 하도록 만드는 것이 그분의 보상 만족을 크게 할 것이라는 예측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저는 의뢰인들께 보상 없이도 잘 살고 있었던 자신의 예전 모습을 떠올리고, 보상을 ‘뜻밖의 선물’로 받아들여 보시도록 권유드리고는 합니다. 그렇게 되면 기대 ($0)와 실제 보상의 차이 값이 최대가 되어, 보상 만족감은 자연히 최고로 올라갈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