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뢰인의 헛웃음이 감사할 때
제 하루 일과는 히어링 40%, 전화 상담 20%, 파일 정리 20% 및 이메일 20%로 이뤄지는 것 같습니다. 전 보통 아침 6시에 출근해서 저녁 6시까지 일을 하니, 평균 2.4시간은 통화에 매달리고 있는 셈입니다. 의뢰인과 통화를 하면서 간혹 전화기 너머로 “허허”하는 헛웃음이 들려올 때가 있습니다. 사실 웃음이 나올 상황은 아닌데요, 예를 들어 이런 경우입니다. 뉴욕 종업원 상해 보험법에 의거하여, Uber 운전자가 대체 임금 (lost wage)으로 청구할 수 있는 주당 최대 금액은 166.67불에 불과합니다. 한 주에 1~2천 불은 족히 벌던 Uber 운전자에게 사고로 인해 일을 못함으로 인해 받으시는 대체 임금이 166.67불 밖에 안된다고 설명드려야 할 때, 저도 보통 난감한 것이 아닙니다. Uber 운전자들은 사실상 자영업자이지만, 뉴욕 종업원 상해보험법에 의거하여 종업원으로 간주되어, 사고가 났을 시 종업원 상해보험 혜택을 받습니다. 대체 임금 산정의 기본 원칙은 ‘사고 전 소득의 66.67%’입니다. 그런데 Uber 운전자들은 운전자들마다 소득이 천차만별이고, 또한 아무리 소득이 많다 하더라도 많은 부분이 품위 유지, 수리, 세차, gas 등 고정비용으로 빠져나감으로 인해 순소득은 그렇게 많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뉴욕 종업원 상해 보험법에서는 운전자의 1년 소득을 통상 13,000불로 간주합니다. 13,000불을 52주로 나누면 250불이 되고, 250불의 66.67%는 166.67불이 되는 것이지요.
이와 같이 난감한 상황을 설명하면 의뢰인들이 간혹 헛웃음을 터뜨리곤 합니다. 전 그때마다 “차라리 웃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응답하고는 합니다. 난감한 상황에서는 화를 내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일 텐데, 오히려 “허허”하며 헛웃음을 짓는 의뢰인들. 그분들의 심리를 설명하는 이론이 ‘항상성 (hemeostasis)’입니다. 우리는 신체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이러한 평형상태를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마무리 투수로 나왔던 한 선수가 상대팀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아서, 이기던 경기가 참패로 끝나는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이때 어떤 선수가 자신의 실투로 인해 경기가 역전패를 당한 채로 마운드에서 내려오다가 웃어서 팬들에게 엄청난 지탄을 받았던 적이 있습니다. “당신 때문에 다된 경기가 뒤집어졌는데 웃음이 나오는가?”란 악플이 기사의 댓글을 이루었는데, 이 처참한 순간에 웃었던 선수의 마음이 바로 제 의뢰인의 마음과 같다는 것입니다. 둘 다 부정적인 감정이 들었을 때 오히려 긍정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마음의 항상성을 유지하려 했다는 것이지요.
이와 반대로 긍정적인 감정이 들었을 때 오히려 부정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마음의 항상성을 유지하는 예도 있습니다. 저는 주말에는 교회에서 한글학교 교사로 자원봉사를 합니다. 제가 가르치는 학생이 한 번은 저를 두고 “선생님을 먹어 버리고 싶다!”라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항상성이라는 개념을 제가 몰랐다면 소스라치게 놀랐을 표현이었겠습니다만, 저에 대한 호감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실제 영어에 “I could just eat you up”란 표현이 있는데, 상대방이 귀엽다고 느낄 때 곧잘 사용되곤 합니다. 우리들도 귀여운 아이를 보면 “깨물어 주고 싶다”라고 표현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겉 표현과 속뜻이 다른 표현이 다른 나라의 언어에도 발견됩니다. “먹고 싶게 생겼다 (독일어)”, “쥐어짜버리고 싶다 (체코어)”, “짜버리고 싶다 (이태리어)”, “물어뜯고 꼬집고 싶다 (베트남어)” 등등 겉으로는 폭력적으로 보이는 이 표현들이 모두 상대가 귀엽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겉 표현과 속마음이 다른 이런 표현을 이형적인 감정표현 (dimorphous expression)이라고 부릅니다. 진화심리학에서는 이 두 가지 감정이 동시에 나와야만 오히려 더 적절하게 인간종을 보호할 있다고 설명합니다. 귀여운 아이를 보았을 때 마냥 귀엽다는 감정에만 빠져들고 있으면 이 아이를 보호할 길이 없습니다. “이 아이를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야지”란 생각도 동시에 들어야 만약에 있을지 모를 위협에 즉각 반응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처참한 상황에서도 웃음이 나올 수밖에 없는 것도 웃음이 부정적인 감정을 해소하여 좀 더 적응적인 심리상태로 만들어 주는 효과를 주기 때문입니다.
오늘 통화한 어느 의뢰인도 “허허” 웃음을 지으셨습니다. 전 차라리 감사하네요. 한바탕 웃음으로써 부정적인 법감정을 떨쳐 버려 주실 수만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