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력 총량의 법칙
의뢰인에게 또 화를 내다...
영국의 저널리스트 Will Storr는 자신의 저서 ‘Selfie: How We Became So Self-Obsessed and What It's Doing To Us’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원한다면 뭐든지 될 수 있다’는 말. 사실 이것은 완벽주의 시대의 본질에 있는 음흉한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수많은 불행의 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100만 권이 팔린 자기 계발서, 행복 전문가 등은 당신이 그 사실을 모르기를 바라는 것 같습니다. 당신에겐 한계가 있고, 불완전합니다. 그리고 이는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Will Storr의 이 말에 위안을 삼습니다. 저 오늘 또 어느 의뢰인에게 그만 화를 내고 말았거든요. 의뢰인에게 정성과 최선을 다하자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꾹 참자고 다짐하고 다짐하건만, 가끔 폭발하는 이 성미는 정말 어쩔 수 없는 것일까요?
그 의뢰인은 제가 일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그분의 사건은 제게 있어 수많은 사건 중 하나이지만, 그분에게 있어서는 그 사건이 당신에게 딱 하나뿐이라는 상황적 차이가 있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다른 사건과 마찬가지로 루틴대로 히어링을 준비하고 히어링 며칠 전 법률 자문을 드린 것이었지만, 그 의뢰인은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종업원 상해 보험 전문가로서 7년 이상 이 일을 하며 잔뼈가 굵었다고 나름 자긍심이 강한 저는 제 전문가적 소견과 부딪히는 발언을 하는 의뢰인에게 간혹 화를 내고는 합니다. 참고 또 참고 하다가 폭발하는 것인데요. 보험사와 맞서 한 편이 되어야 할 의뢰인에게 화를 내고 나면 기분도 참 안 좋고 사기가 떨어지곤 하지요.
화를 참는다는 것, 그것은 의지력이 발동되어야 가능한 것인데, 인간의 의지력이란 것이 그렇게 믿을 것이 못된다는 것이 인지심리학자들의 발견입니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도 면한다고 우리 조상들은 말하였지만, 사실 참을 인자 세 번이면 번아웃 (burn-out) 되고 말지요. Will Storr의 말처럼 우리는 한계가 있고 불완전하니까 화도 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왕 내는 화를 생산적으로 그리고 효과적으로 내면 얼마나 좋을까요?
인지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의지력이란 것이 ‘총량의 법칙’을 따른다고 말합니다. 의지력은 지갑 속 현금처럼 쓰는 만큼 없어진다는 법칙입니다. 이유 없이 사라지지도 않고 기적처럼 불어나지도 않는다는 것인데요. 예를 들어 아침에 일어나서 10만큼의 의지력을 장전하여 출근하였다면, 출근길 교통체증에서 의지력 2를 소모하고, 사무실에서 동료 직원과 기싸움을 하다가 의지력 3을 소모하고, 상사에게서 꾸지람을 들으며 의지력 2를 또 소모하고 났을 때, 내게 남아 있는 의지력은 3 뿐입니다. 그 의지력 3을 가지고 하루를 버티며 의뢰인과 상담하고 히어링에서 판사와 보험사 쪽 변호사를 만나야 하는 것인데요. 집에서 갑자기 걸려온 전화로 딸아이가 시험성적이 안 좋았다는 말에 그만 남아 있던 의지력 3까지 소진하고 말았습니다. 제게 남아 있는 의지력은 이제 0으로서, 어떤 의뢰인이 제 전문가적 소견과 부딪히면 전 화를 누를 의지력이 바닥났기에 그만 폭발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력이라는 것, 이렇게 믿을 것이 못되는데, 강한 의지력으로 감정을 다스리려 애를 쓰는 것 자체가 무모한 시도일 수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근무 중 다친 근로자를 돕는 일, 어떤 분들은 “좋아 보인다”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다른 일과 마찬가지로 “좋아해야만” 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좋아 보이는 것과 좋아하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지요. 좋아할 때 우리는 그 대상을 위해 기꺼이 대가를 치루지만, 좋아 보이는 것은 그럴 자신이 없을 때 포기하면 그만이니까요. 다친 근로자를 돕는다는 것, 정말이지 대가를 치러야 할 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디언에게 있어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이란 뜻이라고 합니다. 인디언에게 변호사란 말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만약 있다면 아마도 “내 불안과 근심, 초조, 고통을 등에 지고 가는 사람”의 뜻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