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의뢰인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습니다. 파일을 점검한 후 “보험사에서 귀하의 클레임을 기각하였습니다. 재판 청구 신청 들어갔습니다.”라고 답변드렸습니다. 의뢰인은 약간 격앙된 어조로 대답하셨습니다. “그래요? 싸워야지요.” 별다른 답 없이 저는 “일단 첫 번째 히어링 날짜를 기다려 보시겠습니다.”하고 통화를 마쳤습니다.
보험사와 싸우라… 위 의뢰인뿐 아니라 대부분의 의뢰인, 그리고 일반인들에게 있어 변호사의 이미지란 아마도 콜로세움의 검투사가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로마 공화정 당시 로마 시민들과 황제가 관람하던 콜로세움에서 검투사는 자신의 생명을 걸고 상대방 검투사와 결투를 벌였을 텐데, 그 콜롬세움 안에서 가장 힘센 자를 들라면 바로 검을 들고 싸우고 있는 그 검투사 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보통 강한 자가 살아남는다고 믿는데, 적어도 콜로세움에서는 이런 일반론이 적용되지 않았습니다. 왜냐 하면 오늘 결투에서 살아남은 검투사라 하더라도 내일의 결투에서는 목숨을 잃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장 오래 살아남은 검투사의 기록도 고작 40회라고 하니, 40번을 채 싸우기 전에 대부분의 검투사들을 목숨을 잃었다는 얘기입니다. 콜로세움에서 가장 강하였던 검투사는 죽어 사라지며, 자손을 남기지도 못했습니다. 반면에 자손을 남겼던 사람들은 다름 아닌 콜롬 세움 구석에 별 존재감 없이 앉아 구경하던, 냐약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약하였기에 싸울 필요도 없었고, 오히려 살아남아 자손을 남길 수 있었던 것이지요.
가장 힘센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한 것이란 말도 있는데요. 우리나라 역사를 보더라도 권력을 누리던 왕족과 귀족들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처참하게 죽임을 당해야 했습니다. 혼란한 정국에서도 살아남아 자손을 남기었던 평민들이 바로 우리 조상들이었으니, 우리는 어떤 면에서 볼 때, 당시 가장 힘없었던 사람들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것입니다.
따스한 봄마다 만날 수 있는 호랑나비들. 보통 화려한 색깔은 포식자의 눈에 금방 띄게 마련이고, 그런 날개를 갖고 있는 족속들은 모두 잡아먹혀 유전자를 남기는데 실패했을 것이며, 그러다 보면 호랑나비는 지금쯤, 아니 훨씬 이전에 모두 멸종했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호랑나비가 아직도 유전자를 남기고 있다는 것은 그 화려한 날개가 생존에 도움 되었다는 얘기입니다. 호랑나비는 그들 먹이의 독성 때문에 포식자들은 먹어봤자 아주 맛이 없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호랑나비를 한번 먹어본 포식자들은 다시는 유사한 색깔의 호랑나비를 먹지 않게 되는데요. 호랑나비 한 마리가 어떤 포식자에게 자신을 잡아 먹히게 함으로써, 자신의 족속들을 살아남게 도와주었던 것입니다.
콜로세움에서 살아남은 이름 없는 이들, 우리들에게 유전자를 물려주신 조상님들, 그리고 포식자에 잡아먹힘으로써 오히려 동족을 살렸던 호랑나비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힘이 없고, 싸울 이유가 없었기에 오히려 오늘날까지 자손을 남겼다는 것입니다. 끝까지 살아남은 자가 가장 강하다는 말로 비춰볼 때, 이들이야 말로 진정한 강자란 얘기입니다.
보험사와 싸우라는 의뢰인의 말도, 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려 합니다. 보험사와 다투지 않고 오히려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합의 (settlement)란 제도가 열려 있기 때문에 그러합니다. 종업원 상해 보험법 32조에 따르면 청구인과 보험사는 얼마든지 상호 간 협상하여 원만하게 다툼을 조정할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습니다.
노자도덕경 81장에 이런 말이 나옵니다. 聖人之道(성인지도) 爲而不爭(위이 부쟁). “성인의 도는 사람을 위해 잘하면서도 사람과 다투는 법이 없다.” 노자에게 성인은 무위 하기에, 자연을 닮아 너그럽기에, 비우기에, 소유를 주장하지 않기에, 몸을 앞세우지 않기에, 자랑하지 않기에, 화목하기에, 검소하기에, 편 가르지 않기에, 강해지려 하지 않기에, 만족할 줄 알기에, 어린아이를 닮기에, 겸손하기에, 그리고 일을 꾸미지 않기에 다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변호사의 도(道)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도 의뢰인을 위해 클레임을 잘 처리하면서도 보험사와 다투지 않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