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성향에 대응하는 심리 전략
저에게는 세 딸이 있습니다. 내심 아들을 바라는 아내는 제게 네 번째 낳는 아이는 아들일 확률이 높다고, 하나만 더 낳아 보자고 제안할 때가 있습니다. 저는 제 세 딸들이 너무 좋고, 더 아이를 갖고 싶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네 번째 아이를 낳아도 그 아이가 아들일 확률 또한 50%인걸요. 하지만 우리 사람의 심리는 첫째, 둘째, 셋째까지는 딸이었다면, 넷째는 아들이지 않을까 하는 믿음을 갖기 쉽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런 심리 현상을 두고 ‘도박사의 오류’라고 부릅니다. 인공수정을 하지 않는 이상, 잉태된 아이가 아들일지 딸일지는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것이 자연법칙입니다. 이렇듯 도박사의 오류란 “이제 자신이 원하거나 기대하는 것이 나올 때가 되었는데..”라며 기다리는 현상을 말합니다.
1차 세계대전 때 실제 있었던 일입니다. 당시 지휘관들은 “적군의 포탄이 한 번 떨어진 자리에는 다시 포탄이 떨어지지 않을 것이니, 그 자리로 이동하여 포탄을 피하라”라고 병사들에게 교육했다고 합니다. 이런 지침은 전쟁터에서 많은 병사들이 강한 믿음을 갖는 속설이 되었는데, 실제 전쟁터에서 경험으로 확인이 되면서 더더욱 믿을만한 사실로 굳어졌다고 합니다. 그러나 포탄 전문가나 수학자에 따르면 이것을 잘못된 믿음입니다. 왜냐 하면 포탄이 어느 자리로 떨어지든, 다음 포탄이 어디로 떨어지는가 하는 것은 전혀 새롭게 출발하는 문제라는 것입니다.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에서 나온 ‘홀짝 게임’을 기억하시는지요? 성기훈 (이정재)와 오일남 (오영수 )는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게임으로 구슬 홀짝 게임을 벌입니다. 상대방이 쥐고 있는 구슬이 홀인지 짝인지 알아맞추는 게임입니다. 이때 상대방의 손에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는 홀 아니면 짝, 둘 중의 하나이겠지요. 그런데, 만약 홀, 홀, 홀이 나왔다면 다음번에는 짝이 나올 것이라고 예상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간 심리입니다. 하지만, 이 역시 도박사의 오류에 해당됩니다. 직전에 홀, 홀, 홀이 나왔다고 하더라도 다음번에 짝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50%이기 때문입니다.
앞선 몇 번의 칼럼에서 소개해 드렸다시피 직장 상해 클레임에는 Workers’ Compensation Board에서 마련한 중재 행정법원에서 청구인과 보험사가 부딪히는 이슈들에 대해 판사의 판결을 받습니다. 행정판사는 엄격한 법의 잣대로 양심껏 판결을 해야 함은 물론입니다. 그러나 판사도 여전히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으로서 갖는 편견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판사님들은 물론 부정하시겠습니다만, 각 판사님들이 그동안 해온 판결의 히스토리 그리고 그 판사의 출신을 보면, 그분들이 청구인에 우호적인 판사인지, 보험사에 우호적인 판사인지 하는, 저희 변호사들이 갖는 느낌 혹은 감각이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판사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는 “이 판사는 청구인에게 우호적인 판사이니까 좀 마음 편안하게 할 수 있겠다”란 생각에 자신이 붙고, 반대로 어떤 판사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는 “이 판사는 보험사에게 우호적인 판사이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해야겠다”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다잡는 것이지요. 그러나 아무리 청구인에게 우호적인 판사라고 해도 반드시 100% 청구인에게 유리하게 판결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청구인에게 우호적인 판사라 함은, 예를 들어 7:3 정도로 청구인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라는 뜻이지요. 이 판사 앞에서 재판을 받으면 70% 정도의 승소 확률을 기대해 볼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데이터 역시 도박사의 함정에서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판사 앞에 놓인 재판 이슈는 각각 독립적인 것이기 때문에, 앞 사건에 대한 판결이 뒷 사건에 대한 판결에 영향을 줄리 없습니다. 따라서, 이 판사 앞에서 7번 승소했다고 그 다음번에 패소를 기대한다면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같은 이유로, 이 판사 앞에서 3번 패소했다고 해서 다음번에 승소를 기대하는 것 또한 도박사의 오류에 빠지는 것입니다.
최근에 어떤 의뢰인을 법률대리하며, 평소 청구인에게 우호적이라고 믿고 있는 판사 앞에서 재판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사실관계가 애매하여 재판에서 이길 것임을 확실할 수 없는 상태에서, 저는 이 판사에 대해 갖고 있던 7:3 데이터를 꺼내 들었고, 스스로를 격려하며, 의뢰인에게 자신감을 보여 드렸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패소였습니다. 다음번 이 판사님 앞에서 재판을 받을 때, 전 주눅 들지 아니하고 여전히 7:3 데이터를 근거로 자신 있게 나설 생각입니다. 다음 재판은 패소한 재판과 별개의 사건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