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적 능력 한계
기자불립(企者不立), 발 뒤꿈치를 들고 오래 서 있을 수 없으며, 과자불행(跨者不行), 가랑이를 넓게 벌리고 오래 걸을 수 없다는 뜻으로 노자도덕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발 뒤꿈치를 든다든지 가랑이를 넓게 벌리고 다니는 등 부자연스러운 행동은 우리의 신체구조의 제약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다는 것을 지적한 것입니다. “순리대로 삶을 살라”는 뜻으로 노자는 얘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산재보험 클레임을 전문으로 하는 저에게 이 말은 다른 의미로 다가옵니다.
신체의 그것처럼 우리의 인지능력에도 자연스러운 행동이란 게 있습니다. 바로 최대한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것이지요. 수렵생활을 하던 호모 사피엔스의 뇌로부터 크게 진화된 것이 없는 뇌를 갖고 있으며, 직립보행을 택함으로 지구 중력에 역행하여 뇌에 혈류를 공급해야 하는 현생 인류의 뇌는 가능한 적은 에너지를 쓰면서 효율적으로 기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생각은 가능한 적게 하면서, 판단은 빠르게 하도록 뇌는 작용합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국 당시를 보면, 이세돌 9단이 소모한 에너 량은 20W 정도였던 반면, 1000여 대의 CPU가 병렬연결된 알파고는 원자로 1기의 5분의 1 정도에 해당하는 엄청난 에너지를 썼다고 합니다. 우리 뇌의 이런 에너지 효율성은 인공지능이 아직 극복하지 못한 장벽입니다.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우리는 생각을 최대한 덜하게 되는데, 이러한 인간을 가리켜 심리학자들은 인지적 구두쇠라고 부릅니다. 애플의 스티브 잡스나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공식석상에서 한 가지 복장을 고집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검정 터틀넥 티셔츠에 리바이스 청바지, 스니커즈가 그의 유니폼이었고, 마크 저커버그 역시 회색 티셔츠에 후드티, 청바지, 운동화 차림을 고수합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매일 아침 무엇을 입을지 결정하는 건 시간 낭비”라고 말했다고 하네요. 인류사에 남을 이 세 천재들의 괴짜스런 행동은 다름 아닌 ‘선택 피로’를 줄이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해, 옷을 고르느라 사용될 에너지를 줄임으로써, 더 생산적인 생각을 하는데 그 에너지를 사용하고자 하는 것이지요. 한 가지 복장을 고집하는 이들의 행동은, 바로 인지적 구두쇠라는 인간 본연의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인지적 한계가 산재보험 클레임에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교통사고에서 목과 양쪽 어깨를 다친 제 클라이언트는 목이 너무 심하게 아픈 나머지, 양쪽 어깨 부상을 자신의 의사에게 호소하는 것을 등한시하게 됩니다. 뉴욕 산재보험헙에 의거, 목과 어깨는 별개의 부상이고, 별도의 부상 부위로 인정받아야 치료와 보상에 유리합니다. 그러나, 사고 초기 목 치료에 전념하면서 양쪽 어깨에 관한 진료와 치료를 뒤로 미룬 의뢰인은 사고 후 몇 달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어깨 관련 진료와 치료를 시작하였습니다.
뉴욕 산재보험법의 불문율이 바로 “사고로 인해 다친 부위라고 생각되는 모든 부위를 가능한 한 빨리 의사에게 알림으로써 그 부상 부위와 사고의 인과관계 및 진단에 관한 소견을 받고 바로 관련 검사와 치료를 시작하는 것”입니다. 어떤 부위의 진단과 치료 시작이 늦어지면 늦어질수록 보험사는 청구인의 진실성을 의심하게 되는 까닭입니다. “왜 사고 당시에는 안 아팠던 부위가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야 아프게 된 것인가?”라고 보험사는 의심하는 것이지요.
양쪽 어깨 부상과 사고의 인과관계에 관한 이슈가 제기되면서 재판이 청구되었습니다. 제 의뢰인의 담당의사는 목에 관한 통증이 완화된 후에 양쪽 어깨 진료와 치료를 시작한 것이 반드시 양쪽 어깨를 사고에서 다치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고 증언하였습니다. 그러나, 보험사는 사고 이후 몇 달이 지난 후에야 양쪽 어깨 관련 진료와 치료를 시작한 것으로 볼 때, 양쪽 어깨를 사고 관련 부위로 볼 수는 없다고 맞섰습니다. 행정 판사는 결국 보험사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정말 아쉬운 것은 의뢰인이 사고 직후 막바로 양쪽 어깨 관련 진료와 치료를 시작하셨다면 이런 결과는 나오지 않았을 텐데 하는 것입니다.
사고로 인해 여러 부위를 다치는 경우 우리의 주의는 당연히 더 아프고 더 많이 다친 쪽으로 기울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다친 부위에 대한 치료에 전념하면서 동시에 다친 다른 부위들은 소홀히 합니다. 인지적 한계 때문이지요. 많은 아쉬움으로 남는 위 케이스는 변호사로서 의뢰인의 인지적 한계를 극복하도록 도와야 한다는 숙제를 제게 던져준 사건이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