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의 심리학
수술, 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어느 날 의뢰인 한분이 찾아와 제게 하소연을 하십니다. 담당 의사께서 허리 수술을 권유하시는데, 수술을 받아야 할 것인가, 말아야 할 것인가가 고민된다고 하시면서요. 수술을 받으면 통증이야 완화되겠지만, 40대 나이에 받은 수술이 노년에 어떤 영향을 줄지도 모르고, 만약 수술로 인해 오히려 허리 상태가 더 안 좋아져서 영영 직장으로 복귀 못하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하소연이었습니다. 특히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 가족들 때문에 더더욱 힘든 결정이라고 하시는데, 세 딸을 두고 있는 저로서도 같은 상황이었다면 똑같은 고민을 했을 것 같았습니다. 수술을 받아도 후회하고, 안 받아도 후회할 것 같다는 이 의뢰인. 사실 제게 이런 고민으로 찾아오신 의뢰인이 이미 여럿 계셨습니다. 그때마다 저는 수술을 받아도 후회하고, 안 받아도 후회할 것이라면, 후회를 덜하시는 쪽으로 선택하시고, 그 선택에 대해서는 스스로가 책임을 지시라고 권유를 드리곤 했습니다. 변호사로서 냉철하게 생각한다 하고 드린 조언이지만, 의뢰인의 답답한 마음을 속 시원하게는 해드리지 못하는 모호한 조언이었음을 고백합니다. 의뢰인은 수술을 받을지 말지 좀 더 고민해 보겠다고 하고는 자리를 뜨셨습니다.
후회의 심리학에 관한 몇몇 실험들로써 이 의뢰인의 심리를 읽어보고자 합니다. 2002년 노벨상 수상자 인지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 교수는 실험을 위해 어느 날 땅에 1불짜리 복권을 떨어뜨렸습니다. 아직 추첨일이 지나지 않은 복권이었습니다. 지나가던 사람이 복권을 줍습니다. 바로 그때 카네만 교수가 그에게 다가가 이렇게 제안합니다. “방금 주운 복권, 제게 파시면 복권 값 1불로 바꿔 드릴게요.” 어차피 길거리에서 주운 공짜 복권이니 이 복권을 카네만 교수에게 판다면 1불이 생기는 상황인 것이었지요. 여러 가지로 따져볼 때 그 복권을 파는 것이 이득이지만, 같은 상황에서 많은 사람들이 팔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것은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라는 심리라는 것입니다. 1불에 팔라는 제안이 들어왔을 때 만약 복권이 당첨될 때 내가 느낄 후회를 상상하게 되는데, 그것만으로도 큰 고통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좋은 조건을 제시받아도 후회를 덜한 쪽을 선택하다 보니 복권을 팔지 않는 것이지요. 이 심리 실험은 우리가 “행동을 해서 잘못된 경우와 행동을 하지 않아서 잘못된 경우, 행동을 했을 경우 할 후회가 더 고통스럽기 때문에 차라리 행동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위 의뢰인의 심리를 이 실험을 통해 반추해보면, 수술을 받아도 후회, 수술을 받지 않아도 후회할 상황에서 수술을 받았을 경우의 후유증에 대한 후회가 더욱 크다고 생각되는 까닭에 차라리 수술을 받지 않는 쪽으로 마음을 정할 수 있는 것이지요.
Kahneman, Tversky, Feldman과 Chen이라는 심리학자들도 행동하는 것이 강한 후회를 낳는다는 연구들을 제시하였습니다. 수술을 거부할 경우 허리는 지금처럼 계속 불편할 것이고, 삶에도 큰 변화가 없을 것입니다. 반면에, 수술을 했을 경우를 상상하고자 할 경우, 수술이 어떤 후유증을 가져올지 현재로서 알 길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Kedia와 Hilton이란 심리학자의 설명을 빌리면, 수술이 잘못되면 그 의뢰인은 죄책감, 수치심, 부끄러움, 회한, 자기 분노, 자책감 등 강력한 부정적 정서를 경험할 것이고, 수술을 거부한 대가로서 허리가 계속 안 좋은 상황에서는 좌절감 정도를 경험할 뿐일 것입니다. 결국 수술을 받을 경우에 할 후회가 더 클 것이라는 거지요.
반면, Itzkin, Van Dijk, Azar의 실험 결과를 따르면, 이 의뢰인이 내 몸을 낫게 하고자 하는 ‘향상 초점’을 가진 사람일지, 아니면 허리가 계속 아플 경우 겪게 될 손해가 더 관심사인 ‘예방 초점’을 가진 사람일지를 고려해 봐야 합니다. ‘향상 초점’을 가진 의뢰인이라면 차라리 수술을 하는 쪽이 실패를 하더라도 후회를 덜 느낄 것이라는 것입니다. 한편, Gilovich와 Medev의 실험 결과를 따르면 단기적인 관점에서는 수술을 하는 것이 수술을 피하는 것 보다 더 강한 후회를 낳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오히려 수술을 거부한 경우에 더 많은 후회를 할 것이라고 예상 가능합니다. 수술이 잘못된 경우에는 그 후유증을 고쳐보기 위해 뭐라든 해볼 수 있지만, 수술을 거부한 결과가 잘못된 경우에는 수술을 받지 않은 상태에 계속 머물러 있기 때문에 평생 후회가 의뢰인을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라는 것이지요.
위 심리학자들의 실험 결과를 토대로 볼 때, 만약 의뢰인이 실패를 두려워하기보다 도전하기를 원하는 타입이라면, 즉, 현재의 몸상태에 머물지 않고 낫고자 하는 소망이 강한 사람이라면 수술을 하는 쪽을 선택하도록 권유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수술을 받든 받지 않든 후회하실 것은 마찬가지일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