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심히 설명드리는 와중에서도 전화기 너머로 의뢰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입니다. “네… 네…” 히어링 직후 히어링에서 있었던 판사의 명령을 일반인의 언어로 풀어서 설명해 드리고, 다음 해야 할 일에 관한 설명을 드리던 중이었습니다. 워낙 중요한 사항을 전달해 드렸는지라, 제가 의도한 대로 의뢰인이 제 설명을 제대로 이해하셨는지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이때 의뢰인의 이해도를 측정할 수 있는 질문으로 두 가지가 가능할 것 같습니다. “Did you understand(이해하셨나요, 알아들으셨나요)? ” 아니면 “Am I clear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제가 충분히 설명드렸나요)?”가 그것입니다.
같은 목표를 성취하게 하는 질문이지만, 이 두 질문은 제게 확연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Did you understand?”란 질문은 결국 의뢰인이 알아 들었는가 아닌가를 묻는 것이고, “Am I clear?”란 질문은 변호사인 제가 설명을 제대로 해드렸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Did you understand?”란 질문은 보통 선생이 학생들을 가르칠 때, 상관이 부하에게 명령을 하달할 때, 그리고 부모가 아이들을 다그칠 때 쓰는 표현일 테지요. 정보나 권한, 권력을 더 많이 갖고 있는 자로부터 일방적으로 정보나 명령을 하달된 후 듣는 사람은 “네” 혹은 “아니오”로 밖에 답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질문을 하고 싶어도 하기가 뻘쭘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이렇듯 “알아 들었는가” 하는 식의 질문은 의뢰인의 질문을 막을 수 있습니다.
반면에 “Am I clear?”란 질문은 말 그대로 의뢰인으로부터 조언을 구하는 화법입니다. 의뢰인은 이해를 했으면 한대로, 못했으면 못한 대로 답을 할 것입니다. 변호사가 의뢰인에게 조언을 구했으니, 의뢰인은 그만큼 이해를 못한 부분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될 것이고, 양자 사이에는 더 많은 정보가 오가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가 미처 알지 못했던 부분들을 채워나갑니다. 종업원 상해 사건이란 결국 의뢰인과 그의 의료 전문가로부터 받은 정보를 조각 맞추기 하여 큰 그림을 완성해가는 퍼즐과 같은 것인데, 양자 사이에 이러한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이 자유로울 때 변호사는 그 퍼즐을 더 쉽고 빠르게, 그리고 정확하게 맞출 수 있습니다.
위 두 질문의 방식은 타율과 자율의 관점에서도 조망해 볼 수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일본 해군은 미군에게 처참하게 패합니다. 상명하복에 익숙하던 일본 해군은 이 패전 소식이 전해질 경우 감당해야 할 수치심 때문에 은폐하기에 바빴다고 합니다. 그리고 실패를 엄폐하기 위해 부상병뿐만 아니라 건강한 장병들까지 모두 전선으로 내보내기에 이르렀고, 보병, 공병, 의무병 등 병과들 간의 커뮤니케이션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미군에게 완패를 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미군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일본군에 비해 사기가 현저히 떨어져 보이는 오합지졸 같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적당한 자율성을 바탕으로 돌아가던 조직이었기에, 오히려 위기에 강한 면모를 보였던 것이지요. 예를 들어, 전쟁 중 지휘관이 사망하면 그를 따르면 부하들은 다른 지휘관을 찾아가 지휘를 요청했다고 합니다. 병과들 간의 경계도 엄격하지 않아, 일반병이 공병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고, 공병이 의무병의 역할을 감당하기도 하는 등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주면서 위기관리를 잘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일본 해군을 압도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합니다. 일본 해군의 지휘관이 병사들에게 “Did you understand?” 의 방식으로 질문할 때, 미군의 지휘관은 병사들과 “Am I clear?”란 방식의 질문을 주고받으며 소통했던 것이지요.
노자도덕경에 따르면 정치의 등급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가장 훌륭한 군왕은 백성들이 그의 존재를 느끼지 않는 것이고, 다음은 덕으로 백성을 감화시켜 명예를 얻는 것이며, 세 번째는 힘으로 다스려 두렵게 하는 것이고, 네 번째는 권모술수로 백성을 우롱하고 속이는 것이라고 합니다 (17장). 거리낌 없는 의사소통을 통해, 그리고 의뢰인의 이해와 상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저는 오늘도 전화기 너머로 의뢰인에게 여쭙습니다. “Am I cl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