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르는 생명, 연결된 우주:

고립된 '나'를 넘어 진정한 삶으로

by 뉴욕 산재변호사

우리는 흔히 나라는 존재를 타인과 분리된 독립적인 섬으로 인식하며 살아간다. "나는 나다"라는 명제 아래, 자신의 신념과 소유, 그리고 계획을 공고히 다지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 믿는다. 그러나 메를로-퐁티의 몸철학, 데이비드 봄의 내재적 질서, 그리고 불교의 지혜는 입을 모아 말한다. 우리가 믿고 있는 그 '고립된 자아'는 사실 실체가 없는 착각일 뿐이라고.


고정된 '나'라는 환상에서 벗어나기

메를로-퐁티는 인간의 자아가 고정된 정신이 아니라, 신체와 환경의 상호작용 속에서 끊임없이 생성되는 것이라 보았다. 데이비드 봄 또한 현상계의 모든 모습이 더 깊은 '내재적 질서(Implicate Order)'에서 잠시 나타난 물결일 뿐이라고 설명한다. 불교의 '연기(緣起)'는 이 모든 것이 인연에 의해 잠시 머물다 가는 과정임을 강조한다. 따라서 우리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자기 정의의 감옥에서 걸어 나와야 한다. 삶은 완성을 향한 경주가 아니라 끊임없이 변주되는 흐름이다. 고정된 자아를 내려놓을 때, 비로소 매 순간 새롭게 태어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분리를 넘어선 연결의 감각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과 갈등은 "나와 너는 다르다"는 분리 의식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몸철학에 따르면 우리의 신체는 지각을 통해 이미 세계와 한 몸으로 얽혀 있다. 홀로그램 우주론처럼 우주의 한 조각에 전체의 정보가 담겨 있듯, 나의 작은 행동 하나는 전 우주적인 울림을 가진다. 타인의 고통이 나의 아픔으로 느껴지는 것은 도덕적 의무가 아니라 존재론적 실상이다. 내가 곧 세상이고 세상이 곧 나라는 연결성을 깨달을 때, 우리는 경쟁과 배척 대신 조화와 자비의 태도로 삶을 대하게 된다.


머리의 논리를 넘어 몸의 체험으로

현대인은 지나치게 머리(이성)로만 세상을 이해하고 통제하려 한다. 그러나 진정한 앎은 관념 속에 있지 않다. 우리의 몸은 이미 세상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으며, 생각보다 훨씬 앞서 진리를 체득하고 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논리적으로 정의 내리려 애쓰기보다, 직접 흙을 밟고 숨 쉬며 타인의 손을 잡는 '체험'이 중요하다. 지식은 축적될 뿐이지만 체험은 우리 존재 자체를 변화시킨다. 삶의 현장 속으로 직접 뛰어들어 몸으로 부딪히는 경험이야말로 우리를 살아있게 만드는 진짜 공부다.


흐름에 대한 저항을 멈추고 얻는 자유

많은 이들이 세상을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다 좌절한다. 하지만 거대한 우주의 흐름은 개인의 의지보다 깊고 강하다. 불교에서 말하는 고통의 원인인 '집착'은 결국 흐르는 물줄기를 억지로 막으려는 시도와 같다. 삶의 불확실성을 불안이 아닌 신비로 받아들여야 한다. 강한 의지로 세상을 꺾으려 하기보다, 내재적 질서의 흐름을 이해하고 그 물결에 몸을 맡기는 '무위(無爲)적 조화'가 필요하다. 세상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저항하기를 멈추고 현재의 순간에 온전히 머물 때, 외부 조건에 흔들리지 않는 평화가 찾아온다.


결론: 어떻게 살 것인가

결국 거대한 관점이 주는 교훈은 명확하다. 나를 비우고, 세계와 연결되며, 몸으로 체험하고, 흐름에 순응하며, 집착 없이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는 고립된 점이 아니라 거대한 그물망의 일부다. 고정된 나를 고집하지 않고 흐름 속에서 유연하게 움직일 때, 삶은 투쟁의 장이 아니라 경이로운 축제가 된다. 지금 이 순간, 자신을 구속하던 '나'라는 낡은 생각을 내려놓고 우주의 거대한 호흡에 박자를 맞춰보자. 진정한 자유는 바로 그 내려놓음의 지점에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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