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무 상생 (有無相生)
보험사 의사 (IME)를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
뉴욕의 산재 클레임에서 고비마다 넘어야 할 큰 산들이 몇 개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보험사 의사와의 신체검사 (Independent Medical Examination)입니다. 줄임말로 IME로 표현합니다. IME는 뉴욕의 산재보험법 137조에 의거 보험사가 갖고 있는 권리입니다. 137조에서는 보험사가 필요에 따라 혹은 행정법원의 명령에 의해 청구인에 대한 신체검사를 실시할 수 있습니다. 보험사는 이러한 신체검사를 실시할 의사를 섭외하게 되는데, 뉴욕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소수의 의사들이 이 모든 검사들을 담당하고 리포트를 씁니다. 현직에서 활동하는 의사도 있으나, 현직에서 물러나 IME에만 종사하는 의사들도 꽤 됩니다. 검사마다 150불 이상을 받으며, 한 달에 3만 불 정도의 수입을 올리는 의사들도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보험사로부터 보수를 받는 이 IME 의사들에게 검사 시간은 곧 돈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이들은 검사 시간을 최대한 줄임으로써 한정된 시간에 가능한 많은 검사를 하려고 합니다. 이에 따라 청구인이 느끼기에 제대로 검사를 하지 않으면서 리포트를 쓰는 느낌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스템적 한계에도 불구하고 IME는 여전히 보험사의 권리이며, 청구인 쪽 의사의 리포트와 맞서는 그들의 무기가 됩니다.
IME의 주제는 (1) 사고와 관련된 신체 부위는 어디인가? (2) 현재까지 받고 있는 치료가 사고와 관련된 것이었는가? (3) 청구인 쪽 의사에 의해 청구된 치료나 검사, 수술은 사고와 관련이 있는 것인가? 그리고 그 요청대로 허가되어야 하는가? (4) 사고로 인한 청구인의 장애 정도는 얼마인가? (5) 영구적 장애가 남아 있는가? 그렇다면 그 정도는 얼마인가? 의 5가지로 축약될 수 있습니다.
청구인 쪽 변호사인 저로서 IME 리포트가 항상 불만족스럽기 마련입니다. 위 5가지 이슈에 대해 IME 리포트가 청구인 쪽 의사의 리포트와 정면충돌할 때, IME 의사에 대해 조사할 권리를 신청하는 것은 청구인의 권리입니다. 이러한 조사 과정을 증언 녹취(deposition)라고 하는데, IME 리포트의 약점을 잡아 공략함으로써 그 리포트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기회로 활용합니다. 그럼으로써 상대적으로 청구인 쪽 의사의 리포트가 더 값어치 있고 신뢰할만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증언 녹취는 전화로 이뤄지며, 이슈마다 다르겠지만 대개 20~30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리고 그 녹취록은 행정판사에게 전달되어 판결을 받습니다. 행정판사는 이 녹취록을 근거로 청구인 쪽 의사와 보험사 의사 중 어느 의사의 소견이 더 신뢰 로운지 판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판단의 기준은 Preponderance Standard를 따르는데, 어느 쪽 의사가 51% 이상 신뢰로운가를 기준으로 한다는 뜻입니다.
IME를 처음 접하는 제 의뢰인들에게 “잘 쓰면 약, 못 쓰면 독”이라고 전 소개해 드립니다. 몇 분 안 되는 시간 안에 사고로 발생된 부상을 잘 보여준다는 것이 청구인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이율배반적으로 들리시겠지만, IME가 없이는 클레임 자체가 존립될 수가 없습니다. 일종의 필요악인 것이지요.
노자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옵니다. “있음과 없음은 서로를 낳고 (有無相生), 어려움과 쉬움은 서로를 이뤄주며, 긺과 짧음은 서로 비교하고, 높음과 낮음은 서로 기울며, 곡조와 소리는 서로 어울리고, 앞과 뒤는 서로를 따른다.”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오는 상대적 개념이라는 것, 또한 어떤 한 개념에 가치판단을 하는 것은 주관의 상대적 소산이지 그 사물의 본래성과는 무관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가치는 중립적으로 그 의미를 획득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IME 리포트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제 의뢰인들이 IME란 제도를 좀 더 관조적이고 여유롭게 바라보실 수 있도록 도와드릴 수 있는 구절로 생각합니다.
청구인 쪽 의사와 IME 의사, 양자는 비록 겉으로는 상호대립적으로 보이나, 실제적으로는 상호의존적이며, 양자 간의 강약 속에 클레임이 살아 움직인다고 볼 수 있도록 노력한다면, 2-3년 이상 걸리는 산재 클레임을 해나가는 가운데 일희일비하지 아니하고 꿋꿋이 해나가실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