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저물어서 날 저무니
내 의뢰인들에게 들려주고픈 찬송가
“Abide with me; fast falls the eventide; the darkness deepens; Lord, with me abide. When other helpers fail and comforts flee, Help of the helpless, O abide with me.”
“황혼이 급히 떨어질 때 주님 저와 함께 해주소서. 어둠이 점점 깊어지니 주여 저와 함께 해주소서. 모든 도움 실패하여 저는 평안을 잃었나이다. 도움을 잃은 저를 위해 저와 함께 해주소서.”
'Abide With Me' (때 저물어서 날 저무니)라는 기독교 찬송의 일부입니다. 스코틀랜트 성공회 목사 헨리 라이트 (1793-1947)가 지은 이 가사는 시련을 통해 자신의 인생 전부를 하나님께 의지하고 자신의 마지막을 위해 기도한다는 내용입니다. 라이트 목사가 폐결핵을 얻어 삶의 마지막이 다가옴을 깨닫고 임종 전에 쓴 곡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 제목과 가사는 누가복음 24:29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때가 저물어가고 날이 이미 기울었나이다”라는 성경의 행간을 살피면 그리스도, 그분의 가르침, 임재, 동행에 대한 제자들의 갈망이 느껴집니다. 그 제자들의 마음처럼 이 찬송도 인생의 매 순간 주님의 임재와 동행이 함께할 것을 간구하고 있습니다.
‘Abide With Me’는 그 가사와 멜로디가 주는 장중함으로 교회 안에서는 주로 임종예배나 장례식에서 불려지는데, 타이타닉 침몰 후 미사에서도 이 찬송가가 연주되었으며, 항공기 사고가 났던 2009년 네덜란드 공항에서도 이 찬송가 연주되었다고 합니다. 종교인과 비종교인들 모두가 좋아하는 이 곡은 심지어 영국의 식민지였으며 힌두교 국가인 인도에서도 그들의 ‘공화국의 날’에 이 찬송이 연주될 정도입니다. 인도 건국의 아버지라 불리는 마하트마 간디가 이 곡을 좋아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영국 국방부에서는 2020년 이 곡이 힌두교 국가와 맞지 않는다고 하여 공화국의 날에 더 이상 연주하지 않겠다고 선포했으나 국민적 반대에 부딪혀 이듬해 다시 연주되었던 해프닝도 있었습니다.
장례식과 국경일처럼 엄숙해야 할 때와 분위기가 사뭇 다른 뜻밖의 곳에서도 이 찬송가를 들어볼 수 있는데요. 특히 영국 국왕 조지 5세가 이 곡을 좋아해서 1927년 FA컵 축구 결승전에서 불려진 이후로 해마다 FA컵 결승전 시작 전에 이 노래가 불리는 재미있는 전통이 있습니다. Challenge 컵 럭비 결승전에서도, 2012년 런던 올림픽 개막식에서도 이 찬송은 연주되었고요. 축제의 장으로 분위기가 들썩어야할 축구와 럭비 경기장에서, 올림픽 경기장에서 이런 장중한 찬송이 울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랜 전통이라는 것만 가지고는 설명이 안 되는 무슨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기분 상태가 직전 경험에 의해 많이 좌우되는 까닭에, 너무 들떠있을 수 선수들과 관중들을 가라앉히고 차분한 마음을 유도하는 효과가 있기 때문입니다. 최고의 찬사를 받았던 선수들도, 그 선수들을 바라보며 한껏 흥분했던 관중들도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는 메시지를 줌으로써, 오늘의 분위기에 너무 취하지 아니하고 현실에 대해 겸허한 마음의 자세를 갖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의 유한성에 대한 자각, 그것은 우리의 삶의 태도를 겸허한 자세로 바꿔놓고 더욱 포용적이며 삶을 관조적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을 지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는 보통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쉽게 잊어버리고, 잊어도 되는 것은 잊지 않는 습성이 있습니다. 예기치 않았던 사고로 인해 클레임을 시작하게 되면 고용주와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면 생을 마감하는 순간이 반드시 있듯이, 한번 태어난 클레임도 그것을 종결짓는 순간이 언젠가는 오게 됩니다. 모든 생명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 생을 다하는 마지막이 있기 때문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클레임도 한번 태어나면 그 끝이 있는 까닭에 아름다울 수 있습니다. 근로 중 부상을 당하여 많지 않은 대체 급여 (lost wage)에 의지하여 살아가며 치료와 재활에 힘쓰고 있을 제 의뢰인들에게 이 찬송을 들려드리고 싶습니다. 모든 것은 끝이 있다고, 클레임을 진행해 나가며 겪게 되실 희로애락 역시 모두 지나가는 것일 뿐이라고, 그리고 클레임 자체에 얽매이기보다는 그 너머에 있는 소중한 삶의 가치를 단단히 붙드시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