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뉴욕 산재변호사 Sep 06. 2022

불안과 분노, 그리고 보험사 심리

사실과 진실의 차이

직무 중 사고를 당하신 제 클라이언트들이 느끼시는 불안과 분노 감정에 대해 제 생각을 나눠보고 싶습니다. 직무 중 상해를 당하여 저를 찾아오시는 클라이언트들의 감정을 읽어 드리는 일은 법정에서의 변호만큼이나  저에게 중요합니다. 그분들의 복잡한 감정을 딱 두 개의 단어로 표현하면 불안과 분노가 될 것입니다. 


심리학에서는 불안이란 사실 (fact)을 알려달라는 감정이고, 분노란 진실(truth)을 알려달라는 감정이라고 말합니다. 사실과 진실은 그 의미가 좀 다릅니다. 사실이란 “실제로 있었던 일”인 반면, 진실은  “거짓이 없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불확실한 상황에서 불안을 느낍니다. 사형 날짜를 모르는 사형수가 극도로 불안해 하고, 귀신이나 좀비가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호러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불안을 넘어 극심한 공포를 느끼는 것에서 볼 수 있듯이, 불안은 예측 불가능성 때문에 증폭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치  앞을 알 수 있는 시국에서도 정보를 제공받아 일정 수준 이상 예측이 가능해지면 상당히 완화될 수 있는 것이 불안이란 감정입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현 상황을 인정하고 대비하거나 조심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한창 일을 하여 가족을 부양해야 할 가장이 다쳐서 일을 못하게 되면 제일 먼저 엄습해 오는 감정이 바로 불안입니다. 저는 불안해하는 클라이언트에게는 최대한 구체적인 법규정을  자세히 알려 드리고자 함으로써 그 불안을 달래 드리려고 합니다. 


반면, 회사를 위해 열심히 일을 하다 다친 그분들이, 치료와 보상에 있어 Workers’ Compensation보험사와 사사건건 부딪히게 되는데, 그때 느끼는 감정은 바로 분노입니다. 분노를 표출하는 클라이언트에게는 아무리 관련 법률을 설명해 드려도 그분들의 분노가 사그러지지 않는 것을 종종 봅니다. 사고를 당해서 억울한 사람은 나인데, 왜 내 뜻대로 치료가 안되고, 왜 내 뜻대로 보상이 이뤄지지 않는가, 이 시스템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하는 분노인 것이지요. 이럴 때는 아무리 Workers’ Compensation 시스템이 노폴트 제도를 따름으로 누구의 잘못인가를 따지지 아니하고, 그 치료와 보상은 견제와 균형의 원리에 의해 보험사와 협상 또는 산재보상 위원회의 재판을 통해 처리된다고 아무리 설명을 드린다 해도 그분들의 분노를 달래기에 역부족임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산적인 클레임 진행을 위해 제가 권유드리는 것은, 비록 그것이 매우 어려운 일이기는 하지만, 보험사의 눈으로 케이스를 바라보는 노력입니다. 한국의 국민 간식, 초코파이. 초코파이하면 떠오르는 말은 “情(정)”입니다. 한국의 초코파이가 중국에서도 대히트를 쳤는데, 중국 초코파이에는 정이란 말대신 “仁(인)”이 쓰입니다. 한국 기업 오리온이 굳이 정을 버리고 인을 택한 이유는 인이란 것이 중국 문화의 상징인 유교의 핵심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논어에서 가장 많이 언급되는 가치도 인입니다. 이소룡의 사부이며 영춘권의 대가로 알려진 실존 인물 엽문을 다룬 영화 “엽문”에서는 이런 대목도 나옵니다. 일본군이 엽문을 가두고 무술을 가르쳐 달라고 하자 엽문이 이렇게 말합니다. "일본인은 인을 모르기 때문에 무술을 배울 수가 없다." 이렇듯 오리온 초코파이는 중국인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인 인을 콘셉트로 잡아 중국 문화에 접속하고 있는 것이지요. 더군다나 “情(정)”이 중국인들에게는 남녀 간 정을 통한다는 의미의 정으로 받아들여진다고 합니다. 


정을 인으로 바꾼 것과 마찬가지의 노력으로 Workers’ Compensation 보험사의 눈으로 케이스를 바라볼 때 진실에 근접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보험사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치료가 되었든 보상이 되었든 법적으로 강제되지 않는 지출은 굳이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사분들께서 신청하신 치료가 보험사에 의해 거절되고, 클라이언트께서 원하시는 만큼의 보상을 보험사로부터 얻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진실은 “보험사는 판사나 산재보상 위원회로부터 강제되지 않는 치료와 보상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러한 보험사를 설득하는 과정은 어려울 수 밖에 없고, 사사건건 부딪히지 아니할 수 없으며, 그것이 바로 한번 태어난 클레임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는 것입니다. 


 
 

이전 10화 정신과 진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