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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욕 산재변호사 Oct 01. 2022

보험사의 치료 거절에 대처하는 심리 전략

뉴욕 산재보험법

뉴욕에서 산재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저는 업무 중 다친 근로자의 편에서 보험사와 상대하며 최대의 치료와 최적의 보상을 위해 일하는 변호사입니다. 


산재부상에 관한 치료를 진행하다가 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판단이 될 때 담당 의사는 추가 치료를 신청합니다. 이런 추가 치료 신청이 들어갈 때 보험사의 반응은 크게 2가지로 나뉩니다. 


허가 granted

거절  denied


보험사의 거절 통지를 받으실 때 통증병원 여러분들, 그리고 그 치료 혜택을 받으셔야 할 제 의뢰인들의 마음은 어떠할까요? 이러한 거절 통지를 받으셨을 때 우리가 가져야 할 심리 전략을 얘기해 보고 싶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메가 히트를 친 넷플릭스의 오징어 게임, 혹시 다들 보셨나요? 주옥같은 장면과 대사들이 많이 있었지만, 여러분들은 어떤 장면과 대사를 최고로 뽑으시나요? 


전 징검다리 게임에서 ‘한미녀’가 ‘덕수’에게 "나 배신하면 죽는다고 했지? ”라고 말하고는 그를 꽉 끌어안고 다리 아래로 함께 추락하는 장면을 꼽습니다. 한미녀는 자신의 성(性)을 무기로 무한 생존 게임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리저리 강자에 빌붙으며 연명해가는 캐릭터인데, 여성성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요.


“한미녀가 덕수를 죽였답니다!”


자, 이 이야기를 들으면 오징어 게임을 보지 못하신 분들의 반응은 대개 이러할 것입니다.


“한미녀란 사람이 덕수를 왜 죽였나요..?”


그런데 똑같은 이야기를 이렇게 들려 드리면 어떨까요? 


“그녀는 살인자입니다!”


이런 말을 들으면 대번에 사람들은 그녀의 기구한 사연은 들어보지도 않을 채 그녀에게 싸늘한 반응을 보이며 나쁜 사람으로 바로 낙인찍어버릴 것입니다. 


“사람을 죽였다”는 말과 “살인자”라는 말, 결국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같았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이렇게 달라지는 것이지요. “사람을 죽였다”라는 말을 “살인자”로 명사화하는 순간 그 의미는 훨씬 간명해지고 판단도 빠른 효과는 분명 있습니다. 


실제로 국립국어원에서 발표한 통계를 보니 우리 국어에서 명사는 우리가 전체 사용하는 단어의 무려 58%나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동사는 고작 21%로서 명사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데요. 명사가 우리가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를 간명하게 한다는 면에서 동사보다 유리한 면이 분명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명사화 때문에 편견을 낳고, 그 명사화 때문에 상황을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두어버리는 부작용도 있는 것이지요.


오징어 게임에서 한미녀는 덕수에게 “나 배신하면 죽는다”라고 이미 경고를 했고, 실제 덕수에게 배신을 당하자 그 말을 실행에 옮긴 것이었습니다. 오징어 게임을 보신 분들은 왜 한미녀가 징검다리에서 덕수를 끌어안고 다리 아래로 몸을 던져야 했는지에 대해 공감을 하셨을 텐데요. 아마 한미녀가 살인자라는 말에도 동의 안 하실 겁니다. 그녀를 살인자로 낙인찍어 버리기에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많기 때문이지요.


명사화가 갖는 함정은 우리 삶 곳곳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저와 같이 살아주신느 그분은 하루에 한 번은 제게 다가와 “나 사랑해?”라고 묻습니다. 그럼 저는 “그럼, 사랑하지”라고 말하곤 하는데, 이 역시 명사화에 갇혀 버린 대화의 예임을 고백합니다. 


사랑이란 단어는 사실 명사가 아닌 동사로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실천적 행위를 통해 그의 진심을 상대방이 느끼게 됨으로써 비로소 아는 것이니까요. 사랑을 실천하는 행위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는데요. 퇴근길에 꽃을 사 오는 것, 설거지와 방청소를 대신해 주는 것, 뒤에서 꼭 안아주는 것, 멀리 고국에 계신 장인, 장모님께 안부 전화를 드리는 것, 저녁에 멋진 외식을 함께 하는 것, 가사 노동에 대한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는 것, 이 모두 아내를 사랑하는 행위일 것입니다.


저와 살아 주시는 그분은 사실 이렇게 사랑하는 ‘행위’를 요구했던 것이었는데, 저 스스로 명사화의 함정에 갖혀 그 행위를 보여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럼, 사랑하지”란 제 응답에 그분이 항상 만족 못하는 이유입니다. 


어찌 사랑뿐이겠습니까? 우리는 많은 단어를 명사로 사용하면서 그 단어가 요구하는 과정과 변화, 실천을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삶의 목표로 뽑는 성공과 행복이란 것도 사실은 그것이 성취된 절대 상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추구하는 삶의 과정이 있는 것일 것입니다. 이렇듯 평소 명사로 알고 쓰는 것을 동사화하면 과정과 변화, 그리고 실천에 눈을 뜰 수 있습니다. 


뉴욕 산재 클레임에서도 명사의 함정에 빠지는 경우가 있는데, 그 예가 보험사가 우리 의사의 추가 신청을 거절(deny)할 때 통증병원이나 청구인이 그 거절의 의미를 명사로 받아들일 때입니다. 거절! 딱 듣기에도 차갑고도 날 선 느낌이 들지 않나요? 


보험사로부터 치료 신청 거절통지를 받은 의뢰인은 제게 급하게 전화를 하여 이렇게 하소연하십니다. “변호사님, 우리 의사의 치료 신청을 보험사가 거절했답니다. 전 이제 치료 못 받는 것인가요?” 


이와 같은 반응은 거절을 명사로 생각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인데요. 하지만, 거절을 동사로 풀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보험사로서 의사의 치료 신청을 검토해 본 결과, 그 치료가 청구인의 몸상태를 낫게 할 것이라는 의학적 증거가 불충분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귀하의 의사께서 의학적 필요성과 효과성에 대한 자료를 보충하여 다시 제출하시면 재검토해 보겠습니다.” 


이렇게 거절통지를 명사가 아닌 동사화하여 거절의 의미를 해석할 때, 통증병원은 “추가 증거를 첨부하여 치료 신청을 다시 해봐야겠다”는 대응 방안을 강구할 수 있는 것이지요.


보험사에서 거절한 추가 치료 신청은 또한 산재보상 위원회에서 따로 판결을 내리거나 deposition을 명령합니다. 보험사의 거절은 그저 보험사의 입장일 뿐, 그 최종 결정은 산재보상 위원회로부터 나온다는 것도 강조해 드립니다.


부언해서 말씀드리면, 우리 나라 말은 영어에 비해서 원래 동사가 많은 역동적인 언어랍니다. 미국 어린이가 엄마에게 묻습니다. “What is this? What is that?” 엄마가 대답하지요. “This is food. That is clothes.”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어린이가 엄마에게 “엄마, 이건 뭐예요? 엄마, 저건 뭐예요?”라고 물으면 엄마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응. 이건 먹는 거야. 응. 저건 입는 거야.” 이렇듯 우리 나라 언어는 본래부터 동사적인 언어였다는 것입니다. 


보험사로부터 거절 통지를 받을 때, 그 거절이 갖는 명사화의 함정에서 벗어나자는 취지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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