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주 뉴욕소재 프라미스 교회의 한국어 학교에서 교사로 봉사하고 있다. 그곳의 학생들은 모두 2세 한인 청소년들이다. 그들은 겉모습은 나와 닮았지만, 그들의 내면세계는 전혀 다른 문화적 무의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언어는 그 무의식을 드러내는 창이자 억압된 정체성의 흔적이다. 그들은 한국어를 구사하지만, 그것은 유창함보다는 불확실한 소속감을 반영한다.
나는 그들과의 수업에서 내 유년기의 강렬한 상징이었던 ‘서태지와 아이들’의 난 알아요를 선택했다. 14살의 나, 감정이 들끓고 자아가 형성되던 시기의 나는 그 음악을 통해 억압된 욕망과 자유에 대한 갈망을 처음으로 해방시켰다. 서태지는 내 무의식의 해방구였고, 금기를 깨고 나오는 리비도적 에너지를 표출하는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비디오를 보는 학생들의 반응은 나의 것과는 달랐다. 그들은 단지 “춤이 멋져요”, “노래가 슬퍼요”라고 했다. 감정의 깊은 뿌리보다는 표면적인 인상에 머무른다. 나에게 서태지는 금기를 넘어선 해방의 상징이자 억압된 집단무의식의 해소였지만, 그들에게는 단지 과거의 문화상품일 뿐이다.
세대는 다르고, 억압의 내용도 다르다. 내가 느꼈던 충격은 그들에게 전이되지 않는다. 우리는 같은 민족의 얼굴을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문화적 초자아에 의해 길들여져 있다. 내가 그들에게 서태지를 보여준 것은,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내 감정과 상징을 동일시시키고자 하는 시도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동일시는 실패했다. 그리고 나는 그 틈 속에서 세대 간 단절과 문화적 무의식의 불연속성을 실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