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슨한 관계가 주는 유용함

시간 할인

by 뉴욕 산재변호사

산재 관련 사고 후 저를 찾아오신 의뢰인 한 분의 이야기입니다. 전문직군에 종사하시는 분이었는데, 일하시던 곳에서 미끄러져 넘어져 목과 어깨, 허리를 다친 사건이었습니다. 미끄럼 사고가 업무와 직접 관련은 없었지만, 근무 시간 중이었고, 직장 내에서 일어났으며, 다음 근무를 위한 이동 중이었기 때문에, 그 사고는 업무 연관성을 인정받아 산재보험 케이스로 성립시켜 치료와 보상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였습니다. 그러나 30분 정도 저와의 상담 뒤 그분은 변호사 선임을 거절하시고, 자신의 지인에게 먼저 물어본 후 변호사 선임을 결정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지인이란 분이 그 의뢰인에게 가장 신뢰할 만한 사람인 것 같았습니다. 의뢰인의 자기 결정권을 존중하는 저는 그분의 결정을 존중해 드리고, 다음날 연락 주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의뢰인은 다음날 연락을 주셨는데, 지인의 의견을 따라 변호사 선임을 미루는 것으로 결정하셨습니다.


이 분처럼 산재 관련 사고 후 변호사 선임을 미루거나 변호사 선임을 아예 하지 않는 분들이 간혹 계신데, 대부분 주위 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하는 결정들입니다. 저는 이런 분들께 Temporal Discounting ('시간 할인')이란 개념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Temporal Discounting이란 쉽게 말해 인간의 심리는 시간적으로 멀리 있는 가치보다는 즉각적 만족을 줄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이 개념을 '시간적 소탐대실'이란 말로 쉽게 설명하기도 합니다. 즉, 시간 할인이란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다가 멀리 있는 소중한 가치를 놓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인간의 '시간적 소탐대실' 경향성이 나에게 심리적으로 먼 사람보다는 가까운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할 때 더 커진다는 심리학적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Similar Psychological Distance Reduces Temporal Discounting (Society for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라는 논문에 따르면 가까운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할 때 시간 할인을 더 많이 해서 결국 더 안 좋은 선택을 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 논문의 저자는 이 가설의 증명을 위해 재미있는 실험을 했는데, 우선 가장 가까운 사람과의 관계를 “1”로 두고, 가장 먼 사람과의 관계를 “100”으로 설정하였습니다. 그리고 “1”과 “100”에 해당하는 사람의 목록을 적게 했습니다. 이후 “프랑스 5성 호텔의 숙박권, 단 1년 후”라는 선택과 “어느 평범한 모텔 숙박권, 지금 당장” 중 하나를 선택하여 “1”에 해당하는 사람들과 “10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둘 중 하나를 추천하도록 했습니다. 실험 결과는 이렇습니다. “1”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모텔 숙박권, 지금 당장”을 선택해 주는 반면, “100”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는 “프랑스 5성급 호텔의 숙박권, 단 1년 후”을 선택해 주는 경향성이 두드러졌습니다.


프랑스 5성급 호텔의 숙박권이 평범한 모텔의 숙박권보다는 분명 높은 가치의 선택일 것입니다. 심리적으로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지금 당장 보이는 (그러나 작은) 가치를 선택하게 하는 경향성이 높아지는 반면, 심리적으로 먼 사람들에게는 지금 당장보다는 먼 장래를 위한 더 큰 가치를 선택하게 하는 경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가까운 사람일수록 즉시적으로, 그리고 즉각적으로 만족시키고 싶어 하는 인간의 본능이 발동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가까운 심리적 거리에 있는 사람들일수록 그들의 구체적이면서 눈에 보이는 현실적 욕구에 몰입하는 반면, 나와 거리가 먼 사람을 위한 선택을 할 때는 시간 할인이 줄어들면서 전자보다 더욱 합리적 판단이 가능하다는 뜻입니다. 심리학에서는 이것을 “느슨한 관계가 주는 유용함”이라고 표현합니다.


변호사 선임을 미루었던 의뢰인이 알고 있었던 지인은 의뢰인에게 변호사를 선임하지 않음으로써 얻는 단기적인 효과를 전했을 확률이 높습니다. 변호사 선임은 아무래도 고용주와의 관계를 껄끄럽게 한다는 인식이 있고, 크지 않은 사고를 부풀리려 한다는 인상을 줄 수도 있다는 것이 그 지인의 조언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단기적인 만족에 불과합니다. 어떤 사건과 사고를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변호사 선임이 가져오는 가치가 분명 존재합니다. 변호사를 선임함으로써 사건에 관한 조언을 언제 어디서나 들을 수 있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가능하며, 산재 보험사에게 휘둘리지 않게 되고, 필요한 치료와 적절한 보상을 확실하게 받을 수 있고, 더욱이 산재 법원에서 청구인의 단독 출석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본질적으로,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에 있는 느슨한 관계, 그리고 “느슨한 관계가 주는 유용함”이 바로 변호사 선임의 이유인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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