닻 내리기 효과

산재 보상 눈높이

by 뉴욕 산재변호사

산재보험 사건에는 일정 치료 후 보상이 따릅니다. 사건 수임을 위해 하는 첫 번째 미팅에서 의뢰인들이 제게 물어보는 단골 질문이 바로 보상에 관한 것인데, 재미있게도 그 질문의 패턴이 비슷합니다. “변호사님은 이런 일을 수없이 많이 해오셨잖습니까? 보상액이 얼마나 될까요?”


죄송스럽게도 제가 가장 난감해하는 질문입니다. 제가 비록 산재보험 사건만 7년, 직간접적으로 접해본 사건만도 어림잡아 7천여 개가 넘어가지만, 보상의 액수를 사건 초반부터 가늠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보상의 액수는 사실 여러 가지 변수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데, 사건 초반에 받는 정보는 이들 변수의 극히 일부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사고 전 임금 수준은 얼마였는가? 사고 관련 부위로 인정받는 부상 부위는 어디인가? 어떤 치료와 수술을 받으셨는가? MRI 등 진단검사의 결과는 무엇인가? 영구적 부상의 정도는 얼마인가? 일을 복귀할 수 있었는가? 일을 복귀하셨다면 같은 직장인가, 아니면 다른 직장인가? 일을 계속 복귀 못하고 계시다면, 그리고 대체 임금 (lost wage)을 받고 계시다면, 그 액수는 얼마인가? 고용주가 뉴욕시 산하 병원이나 교도관, MTA 등 특수조직인가, 아니면 일반 회사인가? 보험 담당자는 누구인가? 65세 이상 혹은 메디케어를 받고 계신 분인가? 판사가 누구인가? 등 적어도 12가지의 변수를 동시에 고려해야 비로소 보상의 액수를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사실 위 12가지 정보들은 사건을 진행해 가는 가운데 서서히 드러나거나 확인이 되는 것들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사건 초반에 보상의 액수를 대략 잡아 말씀드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것이지요. 이런 이유로 예상 가능 보상 액수를 말씀드리는 것을 주저하면, 많은 의뢰인들이 “대강이라도 말씀해 주세요. 나중에 왈가불가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패턴 역시 똑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단호히 “사건을 진행해 가면서 보상 액수를 가늠할 수 있겠습니다”라고 즉답을 회피합니다. 이점은 제 모든 의뢰인들에게 죄송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대강이라도 보상 액수를 달라고 하시는 제 의뢰인들의 요구를 거절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행동경제학적 측면에서 설명드리겠습니다. 닻 내리기 효과(Anchoring Effect)란 것이 있는데, 초기에 주어진 값, 혹은 이미 알고 있는 어떤 기준 정보가 그다음의 의사결정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의사결정은 감정적이고 비합리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1974년, 미국의 심리학자 대니얼 카너먼은 실험 참가자들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유엔에 가입한 나라들 가운데, 아프리카 국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몇 퍼센트나 될까요?”란 질문이었는데요. 카너먼은 실험 참가자들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숫자 돌림판을 돌리게 했습니다. 이 숫자 돌림판에는 0에서 100까지의 수가 쓰여 있었는데, 실제로는 10과 65 두 수 중 하나에서 멈추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숫자 돌림판을 돌린 결과 큰 수(65)가 나온 사람들은 높은 비율(45%)로 대답하고, 작은 수(10)가 나온 사람들은 낮은 비율(25%)로 대답하였습니다. 닻 내리기 효과는 결국 사람들은 수치화된 값을 추정할 때, 아무리 근거 없이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 초깃값에 의존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다른 예로, 1x2x3x4x5x6x7x8과 8x7x6x5x4x3x2x1의 값이 어느 정도 될지 3초 안에 추정해 달라고 하는 경우, 첫 번째 질문의 추측 평균값은 대략 512 정도에 불과한 반면, 두 번째 질문의 평균값은 대략 2,250 정도로서, 추정치가 4배 이상 차이나더라는 실험도 있습니다. 그 이유는 처음에 눈으로 인식한 숫자의 크기, 즉 1과 8이 추정치를 전혀 다르게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닻 내리기 효과에 의해, 제가 사건 초반에 예상 가능 보상 액수를 가늠해 드리면, 그것이 제 의뢰인들의 보상에 대한 눈높이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저는 그런 질문에 즉답을 회피하는 것입니다. 한번 설정된 그 눈높이는 여간해서 바뀌지 않아, 사건을 마치면서 실제 보상이 이뤄지는 시점에서는 변호사-의뢰인 사이에 극복해야 할 걸림돌이 되어 왔습니다. 제가 하는 말과 행동에 책임을 다하려는 변호사의 자세로 제 의뢰인들이 이해해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keyword
이전 14화느슨한 관계가 주는 유용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