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手)의 세계 – 배드민턴, 바둑, 그리고 산재사건

by 뉴욕 산재변호사

배드민턴을 칠 때, 나는 셔틀콕을 향해 라켓을 휘두르지만, 그 방향과 힘은 절대로 내 뜻대로만 정해지지 않는다. 상대방이 어디로 셔틀콕을 보낼지, 어떤 회전을 넣을지에 따라 나의 움직임은 즉각적으로 달라진다. 내 수는 상대의 수 위에서 형성된다. 마치 나 홀로 치는 운동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철저히 관계 속의 스포츠다.


바둑도 마찬가지다. 나는 돌을 하나 내려놓지만, 그 수는 그 자체로 완성되지 않는다. 상대가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그 수는 생이 되기도 하고 사가 되기도 한다. 내가 어떤 전략을 세워도, 상대의 수에 따라 그것은 파국이 되거나 기회가 된다. 바둑은 ‘내가 무엇을 두었는가’가 아니라, ‘서로 어떤 수를 주고받았는가’로 완성되는 세계다.


워크컴펜세이션(산재) 사건도 그렇다. 나는 사건을 설계하고, 증거를 정리하고, 전략을 짜지만, 그 사건의 결말은 결코 나 혼자 결정할 수 없다. 의사의 한 마디, 판사의 한 판단, 보험사의 한 대응이 사건의 흐름을 바꾼다. 어떤 진단서 한 장, 어떤 증인의 진술 하나가 바둑판 위의 반집처럼 절대적인 변수를 만든다. 그래서 법정은 운동장도, 전쟁터도 아닌, **‘수의 공간’**이다.


이 셋의 공통점은 분명하다. 내 수는 상대의 수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 다르게 말하면, 우리는 늘 ‘응답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절대로 완전한 선수가 될 수 없고, 완전한 전략가도 될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준비된 자세로, 열린 마음으로, 매 순간 최선의 응답을 시도할 뿐이다. 그렇기에 이 모든 세계는 우연에 열려 있다. 예상치 못한 드롭샷, 전혀 엉뚱한 곳에 놓인 한 점, 재판장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의학적 반론. 그 모든 우연 앞에서 우리는 ‘내 계획이 틀렸다’며 무너질 것이 아니라, 그 우연을 하나의 ‘수’로 받아들이는 유연함을 배워야 한다.


결국 인생도 그러하다. 계획은 수립되지만, 수는 살아 움직인다. 결말을 지워놓지 않고 살아가는 것, 내가 모든 것을 통제하려 하지 않는 것, 상대의 수에 따라 나를 유연하게 바꾸는 것. 그것이야말로 배드민턴의 기본기이고, 바둑의 묘미이고, 워커스컴 사건의 진짜 전략이다. ‘내 수는 내 것이지만, 동시에 상대의 것이기도 하다.’ 이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조금 더 유연해지고, 조금 더 사람다워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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