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영희 Aug 30. 2021

썩은 복숭아

음식물 쓰레기

  " 여보 임신했나 봐. 물렁거리는 복숭아가 엄청 먹고 싶어."

  남편은 무엇이 생각났는지 차 열쇠를 가지고 황급히 나간다. 가지고 온 상자 안에는 복숭아가 시커멓게 썩어 있었다.

  며칠 전에 남편에게 복숭아를 먹고 싶다고 말한 적이 있다.

  "당신이 복숭아 먹고 싶다고 해서 제일 큰 것으로 샀는데 깜박 잊어버리고 사흘 동안 차 뒤 트렁크에 놓아두었더니 이렇게 되었네."

  " 아니 이 더위에 사흘 동안 복숭아를 차에 넣어두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나를 조금만 더 생각했어도 복숭아를 차에 두는 일은 없을 텐데, 야속하기도 하고 마음 같아서는 정신 바짝 차리고 살라고 회초리로 한 대 때려주고 싶었지만 생각뿐이었다.

  먹을 수 있는 것은 좀 골라내고 썩은 복숭아는 음식물 쓰레기에 버리는데 내가 버리는 것보다는 남편이 버리는 게 좋을 듯싶었다. 남편을 불러 버리라고 하자 음식물 쓰레기 버릴 줄 모른다며 한사코 손사래를 쳤다.

  나는 보자기를 깔고 썩은 복숭아 상자를 남편의 침대 위에 갖다 놓았다. 그러자 더는 지켜보지 못하고 마지못해 갖다 버렸다. 들어오면서 하는 말이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고 했다. 내가 원하는 대답이다.

  지금도 지구 반대편에서는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우리나라도 음식물 쓰레기가 해마다 늘어 심각한 사태라고 들었다. 식자재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사고 많이 사서 버리는 일은 없어야겠다.

  나는 남편에게 복숭아 내가 먹고 싶을 때 조금씩 사 먹을 거니 사지  말라고 당부했다.

  일주일이 지난 뒤 남편이 보자기에 싼 상자를 나에게 내민다. 풀어 보니 복숭아였다. 산소에 벌초하고 올라오면서 복숭아 과수원에 들러 50살 된 아줌마가 임신했다고 하니 나무에서 좋은 걸로 직접 따주었다고 했다.

  젊었을 때는 농담도 못하던 사람이 세월의 탓인가 우리끼리 농담한 것을 과수원 아저씨에게 말한 것이었다.

  젊어서 임신했을 때는 생활이 어려워서 먹고 싶은 과일을 마음껏 먹지 못했다. 과일가게를 지나칠 때면 진열된 과일만 보고 입맛을 다셨는데 지금은 과일만큼은 마음껏 먹을 수 있으니 씁쓸함과 감사함이 뒤엉켜진다

  복숭아를 한 입 베어 문 순간 임신한 조카 생각이 났다.

  오늘은 복숭아 한 상자 조카에게 보내야겠다. 복숭아처럼 예쁘고 튼튼한 아이가 태어나길 기도하면서~~~

작가의 이전글 동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