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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Aug 28. 2021

동행

신발

앞코가 터진 채

숨을 깔딱이는 신발은 측은했다

신발의 인연은 십여 년 전

오일장에서 내 손을 움켜잡았다


싸구려라고 신발장에 처박혀 있던 신발은

애처롭게 나를 쳐다봤고

안쓰러운 모습에 내 발을 내주었다

꼬리표도 없는 그 신발은

살갗이 닿을 때마다

머쉬 멜로우처럼 부드러움을 안겨줬다


편안함에 발목 잡힌 그는

익숙한 동행을 길게 늘이고 있었다

여행을 갈 때마다 대꾸 없이 앞장서고

발의 온도는 높아만 갔다


나일 강을 지나

에펠탑을 지나

잘츠부르크를 지나

퀘벡에 오기까지

그려주던 지도는 발밑에 있었다


더 먼 곳을 동경했을까

빼곡한 그늘에 주저앉아

한 번도 쉬어보지 못한 채

찢긴 몸이 되어

영영 감을 수 없는 몸으로 나를 바라본다


걸음은

캄캄한 신발장 속에서 멈춰버렸고

그의 질긴 노동에 고개 숙인 나는

더 이상 같이 할 수 없음에

마지막 안부를 묻는다


몇 겹의 정적이

검은 봉지 안으로 따라 들어오고

빈자리에는

그의 온기가 앉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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