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송영희 Jan 03. 2022

유언장

부정적인 생각




  날씨가 추워서인지 길은 꽁꽁 언 빙판이 되어 있었다. 조심조심 걷느라고 걸었는데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로

뒤로 심하게 넘어지고 말았다.

  " 아줌마, 괜찮으세요."

  눈을 떠보니 아가씨 둘이서 나를 흔들어 깨우고 있었다. 나는  멍하게 바라보다가

  " 머리 뒤쪽에서 피나요?"

   하고 묻자, 괜찮다면서

  "많이 아프시면 병원에 가보세요."

   하고 가던 길을 간다.

  고맙다는 인사도 못 한 채 나는 뒷머리를 만져  보았다.

혹이라고 해야 하나 얼마나  부풀었는지 머리가  두 개인 것

같았다.

  택시를 잡아타고 가까스로  집에 왔는데  머리가 흔들거리고 아파서 바로 침대에 누웠다.  혹시 무슨 일이 있을까 병원에 가기도 무섭고 속상하고 서러워서 찔끔찔끔

울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온다.

  " 어디 아파? 누워 있게."

  " 여보. 나 못 볼 뻔했어.  빙판에 넘어져 정신을 잃었거든."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편은 빈정댄다.

  " 그래서 아까 땅이 그렇게 흔들렸구나.  난 지진이 난 줄 알고 깜짝  놀랐어."

  " 지금 이 상황에서 농담이 나와?  내 남편 맞아?"

  나는  화낼 기력도 없었다. 다만 끝내 정신을  잃어 이 세상 사람이 아니면 내가 하고 싶은 말 한마디도 못하고

간다는 게 너무 허망하고 어리석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종이를 가져와 유언장을 적었다. 마음이 숙연해지면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막연했다. 그래도 나름대로 써 내려갔다. 쓰면서 생각해보니 내가 없으면 양말도 짝작이로

신고 나갈 남편이 제일 불쌍했다.  지금부터라도 혼자 사는 방법을 하나씩 가르쳐 줘야지 생각하고 있는데  남편이 들어왔다.  유언장을 보더니

  "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넘어져서 정신을 잃었다고 다 죽니? 토하지도 않았으면서 무슨 호들갑이야."

하며 종이를 찢으려 한다.

  " 찢어도 좋으니 읽고 나서  찢어.'"

  남편은 호기심에 읽어 내려가더니, 얼굴에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아마 이 대목 일 것이다.

   " 혹 엄마 통장에 남은 돈이 있으면 아빠를 위해 쓸 수 있도록  해 주고, 엄마가 죽으면 바로 가장 좋은 사람과 짝을 맺게 해서 아빠가 죽는 그날까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해 주어라."

  다 고  난 남편은

  ''이것은 없애면 안 되겠구먼.''

  하더니 접어서 호주머니에 넣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저녁은 알아서 먹을 거니 신경 쓰지 말라며

" 자기 보다 한 달만 더 살다가 가."  한다

  그래도 내가 없으면 걱정은 되나 보다.

  이제 유언장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은 버려야겠다.


 불확실한 시대에 살면서 언제 어느 때 무슨 일을 당 할지

모르니 죽음을 대비해서  하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적어둘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전글 부부싸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