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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Sep 18. 2023

목 디스크 1

암이 아닌 디스크



   며칠 전부터  왼팔이 조금씩 저려왔다.

이러다 말겠지 하고 집에서 온찜질을 여러 차례 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농도는 더 심해지고 팔을 거의 쓸 수가 없게 되자 나는 동네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병원에서는  늦게서야 왔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서 목 쪽으로  온갖 검사를 마친 뒤에 최종적으로 MRI 검사를 했다.

  목 뒤가 좀 부어 있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의사가 소견서를 쓰고, 가야 할 병원과  의사 선생님 성함까지 받아 들고 서야  덜컥 겁이 나가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 봉합이 된 봉투 안에 뭐라고 쓰였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나는 봉투를 표시 나지 않게 뜯어보니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조직 검사를 해야 알겠지만.

  " 목암으로 판명됨. "

  나는  안 본 것처럼 봉투를 붙여 놓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 참 후에 내가 만약에 암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얼마 살지 못한다면. 과연  남은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녁에 들어온 남편은 봉투를 달라고 하더니

  왜 이것을 봉합했냐고 하면서 칼로 봉합된 부분을 찢더니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 정확히 판정된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으나 차분히 내려앉은 목소리는 나를 더 긴장되게 하였다.

  아이들에게도 나의 상태를 알렸는지 무거운 얼굴빛이 되어 평소에 안 하던 청소며 정리 정돈을 하는데.

나는 이 모습이 더욱더 괘씸하고 속상했다.

  " 그래 이제 죽을병에 걸리니 그동안에 안 하던 청소며 정리 정돈을 하니. 엄마 건강할 때  좀 그렇게 하지."

  소리소리 지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무언가의 억울함. 속상함. 공포심이 복합적으로 나를 짓눌러 밖으로 표출되었던 거였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큰 언니가 악성 유방암으로 39살의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 나는 암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다. 가족력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참담한 생각에 예약한 날을 기다리는 5일은 불안과 공포로 몸이 빨랫줄에 매달린 빨래처럼 습기를 거두고 있었다.

  예약한 날에 병원에 갔으나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조직 검사는 일주일이 더 미루어졌다.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해야 되지 않나 생각하며 일주일을 기다리는 시간은 일 년은 되는 듯싶었다.

  조직 검사하기 하루 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진료내역 가지고 다른 병원으로 오라는 거였다.

  나는 진료기록을 가지고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자 두 명의 의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암전문의와 신경외과 두 분이서 나의 진료기록과

 촬영한 CD를 훑어보고 나의 목 뒤를 살펴보더니 두 분이 합창이라도 하듯

  " 이것은 목 디스크가 분명합니다."

  내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인 듯싶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입에서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가 연거푸 흘러나왔다.

 간단한 수술로 완치된다는 말을 듣고서

  중요한 회의도 뿌리치고 온 남편은 회사에 가기 바빴고,

나는 가장 멋진 리무진  택시를 골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갈아 탄 마음이 이러했을까?

큰 병이다 싶으면 한 병원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병원도 들려  보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나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치료에 대해서는 목디스크 2에서 뵙겠습니다 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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