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시간이 가면 갈수록 그 농도는 더 심해지고 팔을 거의 쓸 수가 없게 되자 나는 동네 신경외과를 찾아갔다.
병원에서는 늦게서야 왔다며 핀잔을 주었다.
그리고서 목 쪽으로 온갖 검사를 마친 뒤에 최종적으로 MRI 검사를 했다.
목 뒤가 좀 부어 있는데 아무래도 심상치 않다며 큰 병원으로 가라고 했다.
의사가 소견서를 쓰고, 가야 할병원과 의사 선생님 성함까지 받아 들고 서야 덜컥 겁이 나가 시작했다.
집에 돌아와 봉합이 된 봉투 안에 뭐라고 쓰였을까?
궁금하기 짝이 없었다. 남편이 퇴근하기 전에 나는 봉투를 표시 나지 않게 뜯어보니 거기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조직 검사를 해야 알겠지만.
" 목암으로 판명됨. "
나는 안 본 것처럼 봉투를 붙여 놓고. 한동안 그 자리에서
멍하니 앉아 있었다.
한 참 후에 내가 만약에 암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얼마 살지 못한다면. 과연 남은 시간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이 복잡했다.
저녁에 들어온 남편은 봉투를 달라고 하더니
왜 이것을 봉합했냐고 하면서 칼로 봉합된 부분을 찢더니 이내 얼굴이 굳어졌다.
아직 정확히 판정된 것은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는 했으나 차분히 내려앉은 목소리는 나를 더 긴장되게 하였다.
아이들에게도 나의 상태를 알렸는지 무거운 얼굴빛이 되어 평소에 안 하던 청소며 정리 정돈을 하는데.
나는 이 모습이더욱더 괘씸하고 속상했다.
" 그래 이제 죽을병에 걸리니 그동안에 안 하던 청소며 정리 정돈을 하니. 엄마 건강할 때 좀 그렇게 하지."
소리소리 지르며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무언가의 억울함. 속상함. 공포심이 복합적으로 나를 짓눌러 밖으로 표출되었던 거였다.
아직 결정된 것은 아니지만, 큰 언니가 악성 유방암으로 39살의 나이에 죽었기 때문에나는 암에 대한 트라우마가 심했다.가족력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참담한 생각에 예약한 날을 기다리는 5일은 불안과 공포로 몸이 빨랫줄에 매달린 빨래처럼 습기를 거두고 있었다.
예약한 날에 병원에 갔으나 사람이 너무 많은 관계로 조직 검사는 일주일이 더 미루어졌다.
수많은 생각이 꼬리를 물고.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정리해야 되지 않나 생각하며 일주일을 기다리는 시간은 일 년은 되는 듯싶었다.
조직 검사하기 하루 전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진료내역 가지고 다른 병원으로 오라는 거였다.
나는 진료기록을 가지고 남편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내가 그곳에 도착하자 두 명의 의사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암전문의와 신경외과 두 분이서 나의 진료기록과
촬영한 CD를 훑어보고 나의 목 뒤를 살펴보더니 두 분이 합창이라도 하듯
" 이것은 목 디스크가 분명합니다."
내 귀에 선명하게 들리는 목소리 하늘에서 들려오는 신의 목소리인 듯싶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눈에서는 눈물이
흐르고 입에서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가 연거푸 흘러나왔다.
간단한 수술로 완치된다는 말을 듣고서
중요한 회의도 뿌리치고 온 남편은 회사에 가기 바빴고,
나는 가장 멋진 리무진 택시를 골라 타고 집으로 오는데,
차가 도로 위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지옥에서 천당으로 갈아 탄 마음이 이러했을까?
큰 병이다 싶으면 한 병원만 고집하지 말고 다른 병원도 들려 보는 것이 더 지혜롭지 않나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