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선생님은 새 단원이 들어갈 때마다 낱말을 찾아 반대말 20개를 써오라고 숙제를 냈다.
숙제를 하지 않은 사람은 다음날 5대씩 맞았다. 나는 언제나
옆집 친구 참고서를 빌려서 숙제를 해갔다.
그런데 그 친구와 싸워서 오늘은 숙제를 할 수가 없었다. 하는 수없이 참고서를 사달라고 엄마를 졸랐다. 그러나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엄마 혼자서 5남매를 키우시는 우리는 하루 세끼 식사도 어려워 저녁으로는 죽을 먹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참고서는 사줄 수 없다고 하셨다. 화가 난 나는 펑펑 울면서 학교 안 다닐 거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엄마는
''친구 비위 좀 맞추지 그랬어.'' 하는 게 아닌가!''
나는 그 말에 더욱더 속이 상해 소리소리 질렀다.
''엄마는 비겁해. 언제는 친구들에게 기죽지 말라고 해놓고, 나를 따돌림시킨 애 비위를 맞추래. 비겁한 엄마야.''
''참고서 안 사 주면 나 학교에 안 갈 테니까 그리 알아!''
으름장을 놓았지만, 엄마는 맞장구를 치듯 말했다.
''그래, 학교 가지 마. 잘됐다. 집에 할 일도 많은데 일하면 되겠네.''
나는 그러는 엄마가 너무도 미웠다. 저녁밥도 먹지 않고 떼를 써 보았지만 돌아오는 것은 회초리였다. 대 여섯 대를
맞고 나서야 참고서 사 달라는 것을 포기하고 나 나름대로 숙제를 해갔다.
다음 날이 되어 무거운 마음으로 숙제장을 제출했는데 선생님이 나오란다. 숙제 안 해온 애들은 5대인데 나는 10대란다.
''아니 반대말을 써오라고 했더니, ''
''춥다 / 안 춥다. 뜨겁다 / 안 뜨겁다. 울다 / 안 울다.
슬프다 / 안 슬프다. 너 장난하니?''
하더니 더 세게 때렸다. 나는 눈이 퉁퉁 붓도록 울었다. 속된 말로 친구들 앞에서 쪽 팔렸다.
집에 와 엄마 얼굴도 보기 싫었다. 이불을 뒤집어쓰고 화를 삭이고 있는데 이불을 걷어 올리며 하루의 품삯으로 샀다면서 신문에 싼 보따리를 나에게 건넨다. 펼쳐보니 헌 참고서였다. 구하느라 헌책방을 여러 군데 다녔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새 책방보다 헌책방이 더 많았다. 나는 엄마 얼굴을 감싸며 고마워했다.
''비겁한 엄마라고 한 말 취소예요. 공부 열심히 할게요.''
나는 이제까지의 일을 새까맣게 잊고 날아갈 듯 기뻤다.
밤이 되어 참고서를 품고 잠이 든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아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