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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영희 Jul 23. 2021

슬픈 그림

하루의 품삯

칼날 같은 빛이 나에게 향했다

숙제를 안 해온 아이는 다섯 대

숙제를 한 나는 열대

매를 맞을 때마다 나는

장난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가슴속에 웅크린 슬픔이 얼굴에 붙어

입술까지 일그러졌다

참고서 한 권만 있으면

열대의 매를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매는 손바닥에 미역 줄기 같은 무늬를 남기고

움켜준 손은 책 한 권 살 수없는 설움을 삼켰다


뜨겁다 ㅡ안 뜨겁다

슬프다 ㅡ 안 슬프다

춥다 ㅡ 안 춥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열개의 단어를 써 놓고

반대말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까지 상처가 필요했다


아이들 비웃음 뒤로 화상 입은 심장이 소용돌이치고

잿빛 하늘보다 더 깊은 그늘이 내려앉은 나에게

어머니는 신문지로 둘둘 싼 뭉치 하나 안겨 주었다

하루의 품삯으로 산 낡은 참고서

대낮보다 더 밝은 저녁이 내 얼굴에 달라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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