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살짜리아들 녀석이 가장 좋아하는 과일은 수박이다. 수박을 사다 냉장고에 넣어 놓으면 하루에도 수십 번 냉장고 문을 열어 달라고 보채는 바람에 성가실 때가 많다. 하지만 여름이 되면서 수박만 한 과일도 없기에 난 수박을 사다가 깍둑썰기를 해서 여러 개의 타파 통에 넣어 놓는다. 아들 녀석이 보챌 때마다 한통씩 주면 함빡 웃으며 거뜬히 먹는다.
오늘도 아들 녀석은 한참을 뛰어놀더니 수박 달라고 한다. 한통을 먹고 나더니 더 달라고 보챈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또 한통을 내어 주었다. 두통을 먹고 나더니 배가 부른 지 잠이 들었다.
2시간가량 잔 아들은 일어나자마자 바지를 내리더니 오줌을 싸려고 한다. 급한 나머지 나는 비어 있는 종이 우유팩에 받았다. 그리고는 우유 팩을 화장대 위에 올려놓고 치우는 것을 깜박 잊어버렸다.
퇴근한 남편이 후덥지근하다면서 방으로 들어가더니 우유 팩을 들고 말할 틈도 없이 단숨에 마셔버렸다.
그리고는 하는 말
" 우유 맛이 왜 이래."
아! 뭐라고 말을 해야 하나, 갑자가 멍하니 있다가 더듬거리며
" 약이라고 생각해. 백 년 넘게 장수하겠네."
말은 했지만, 왜 내가 찝찔하고, 매스껍고, 콧등에 눅눅한 진땀이 배는지. 아들이나 아버지나 급한 성격은 부전자전이다.
남편이 몇 번이나 나에게 무슨 물이냐고 물었지만, 사실대로 말할 수가 없었다. 약초 달인 물인데 유리병에 담아 두면 아이들 때문에 깨질 수 있어서 우유 팩에 담아 둔 거라고 말해주었다. 그때서야 남편은 안도의 숨을 쉬며 밥 먹자고 한다.
우리 네 식구는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오늘의 메뉴는 계란찜이다. 뚝배기에 계란찜은 보기에도 먹음직스러웠다.
잠시 일어나 내가 물을 가져간 사이에 아들과 남편은 계란찜을 뱉어 놓는다.
" 왜, 뭐 들어 있어."
" 아니, 입을 데었어. 엄마 나도."
" 어휴. 도대체 몇 번을 말해야 해. 계란찜 먹을 때는 천천히 식혀서 먹으라고 했잖아요. 성격이 급한 데는 뭐 있어. 그러니까 우유 팩에 들어 있는 애들 오줌도 정신없이 먹지."
화난 김에 나는 나도 모르게 실토하고 말았다.
남편은 식탁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 그럼 아까 먹은 게 오줌이었어."
뜨겁고 습한 기운이 등줄기에 훅 끼친다. 나는 망부석이 되었다. 이럴 땐 말을 않는 게 상책이다.
남편은 '이런' 하더니 화장실에 들어가 양치질을 한다.
그때서야 나는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오면서
'이미 뱃속으로 들어간 오줌이 이 닦는다고 다시 나 오냐.'
'성질 급한 사람은 당해도 싸.'
혼자 중얼거리며 생각했지만, 화장실에서 나오면 아무렇지도 않은 척 태연하게 혈액순환에 가장 좋은 약초 물을 먹은 거라고 남편을 진정시켜야 했다.
제때 치우지 않아 일어난 황당함이 내 얼굴에 민망하고 곤욕스러운 표정으로축축한 저녁을 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