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 번째 생각
우리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태어나면서부터 너를 만난다. 내가 아닌 다른 사람, 부모님. 언니나 오빠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다. 또 동생이 생길 수도 생기지 않을 수도 있다. 난 언니가 있었고 오래지 않아 동생을 만났다. 내가 아닌 타인이 만나서 이뤄지는 것이 바로 가족인 것 같다.
난 참 정이 많다. 최근에 꿈드림에서 나 따로 1박으로 어디 갔다 온 적이 있었는데 밤에 자기 전에 정말 집에 가고 싶었다. 가족이 심각하게 보고 싶더라. 나도 그런 기분은 처음이었기에 그런 나를 보면 깜짝 놀랐다.
난 우리 가족이 최고라고 말한다. 너무 재밌고 웃긴 우리 아빠, 다재다능하시고 상담사 해도 될 만한 우리 엄마, 겉은 툭툭, 속은 부드럽고 너무 멋진 우리 언니, 아직도 미운 짓 많이 하지만 함께 있으면 즐거운 소중한 우리 동생. 한 명이라도 없으면 너무 허전하다. 모두가 그렇게 느낀다.
가족이 왜 좋은지는 설명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을 좋아하는 것에 이유를 붙이기는 쉽지 않은가. 다만 계속해서 같이 보낸 시간이 많고 서로의 장단점을 너무 잘 알기에 서로를 보듬어 주면서 더 친해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상극이어도, 좋다.
이게 바로 가족이 있는 이유라고 난 생각한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 생각하는 것도, 받아들이는 것도, 보는 것도, 듣는 것도 모두 다르다. 가족 안에서, 닮은 사람들끼리도 다르다. 그런데 우리는 자주 이런 생각을 하며 실수하는 경향이 있다. ‘오래 같이 살았으니까,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알겠지? 이 정도는 받아주겠지?’
하나뿐인 동생한테 이런 적이 많았던 것 같다. 나랑 동생은 관심사는 비슷한데 취향이 다르다. 정말 다르다. 그래서 잘 싸우고 잘 다툰다. 어렸을 땐 다 쟤 문제라고만 생각했지만 나도 너무 일방적으로 대했던 것이 많다는 생각이 크면서 들기 시작했다. 생각 회로가 이렇게 다른데, 심지어 난 가족 사이에서조차 특이하다고 불리는 사람인데, 내가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대로 동생에게 말하면 당연히 못 알아듣겠지. 물론 동생이 눈치가 조금 없는 편이라 내 말을 잘 못 알아듣는 적이 많긴 하다.
오래 같이 살아서 동생의 특성을 거의 파악했다고 생각했지만, (난 사람 파악이 굉장히 빠른 편이라) 모르는 것도 꽤 있었다. 그래서 이젠 동생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서로의 다름을 생각하면서 동생이 이해할 수 있게 얘기해주려 노력한다.
가족이 있는 이유 첫 번째, 각 사람이 모두 다름을 알고 그 차이를 인정하며 서로를 보듬어 주기 위함이다.
난 이것을 사회성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을 자신과 다르다는 이유로 따돌리지 않고 함께 서로를 보듬어 주고 품어 주며 같은 인간이라는 이유 하나로 다른 사람을 존중하는 것.
홈스쿨링하는 친구들이 학교를 안 다녀서 사회성이 결여될 것을 염려하시는 분이 많다. 정확하게 말씀드리고 싶다. 오히려 더 사회성이 풍부해진다고. 사회성은 사람들과 잘 얘기하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것에 대해서도 의미하는 것이 아닌가? 가족도 사람이다.
난 다른 사람들에게 대하는 것과 가족에게 대하는 모습이 다른 것은 위선이라고 생각한다. 가족도 사실 남이다. 같이 살 뿐이지. 무조건적으로 모든 것을 요구할 수도, 성격이 다 같을 수도 없다. 다르니까 우리도 싸우고 다툰다. 같이 살기에 서로를 더 잘 알아서 더 아프게 할 수도 있지만 더 친밀해질 수도 있다. 서로를 결국 알게 되니까. 알게 될수록, 알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더 친해지고 서로를 소중하게 여기기 마련이다. 다 잘 맞을 수는 없다. 그렇지만 가족이니까 사랑한다.
언니와 나는 매우 다르다. 그렇지만 난 언니가 매우 좋다. 두 살 터울이어서 그런데 커서는 거의 싸우지 않고 친구처럼 지내고 있다. 이것도 경험의 토대에 세워진 관계다. 서로가 다름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더 잘 이해하고, 서로의 연약함을 정말 잘 알기에 더 도와준다. 그리고 서로의 상태가 안 좋을 때 적당히 건드리는 법도, 아예 냅두는 법도 안다. 언니지만 친구 같다.
또 한 가지 굉장히 다른 점은 언니는 이성적이고 비판적인 반면에 나는 감성적이고 비판도 하지만 수용도 하려는 마음이(내가 비판받는 걸 진짜 싫어하기 때문에) 있다. (참고 사항: 언니의 MBTI=ISTJ, 내 MBTI=ENFJ) 그래서 언니는 자기비판이 아주 강하고, 나는 자기 수용이 너그러운 편이다. 무언가를 하고 나서 나의 반응은 “괜찮아. 이 정도면 됐어. 다음에 더 잘하자.”이고 언니는 “완벽 그 자체를 추구하자”이다. 그렇에 이렇게 불과 물처럼 다른 우리의 반응에 가족들의 반응도 다르다. 나에게는 좀 더 잘하라고, 언니에게는 그만하면 됐다고 말한다.
처음에는 좀 불만이었다. “나도 충분히 잘한 것 같은데. 왜 난 칭찬을 안 해주지.” 이러면서. 그러다가 나중에는 덩달아 언니에게 그만하면 됐다고 말하고 있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가족이 있는 이유를.
두 번째, 가족이 있는 이유는 버팀목이 되어 주기 위함이다.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지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과하게 자기비판을 하거나 자기 수용을 하든지 어떻게든 과한 면이 있다. 그걸 뛰어넘어 일어날 수 있도록, 나의 장단점을 누구보다 잘 아는 가족이 함께 응원해 주고, 가끔은 쓴소리도 하는 것이다. 가족은 나를 누구보다 잘 아니까. 그리고 항상 끝까지 함께해 줄 수 있으니까.
사람은 집에서의 모습과 밖에서의 모습이 다르다고들 한다. 당연히 그럴 수 있다. 누구나 그럴 것이고. 그렇지만 사람을 대하는 모습은 똑같아야 할 것 같다. 밖에서는 한결같이 수용적이다가 집에 와서는 왜 넌 날 이해 못하냐면서 화를 내는데 정작 자기는 남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눈곱만큼도 안 보이면 너무 이질적이지 않은가. 남은 내가 아니니까, 나와 다르니까, 이해하고 알아가려고 노력해야 한다. 내 맘 몰라준다고 화내고, 짜증 내고, 가족이니까 이 정도는 해줘야 한다는 생각은 없애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서로를 알고 함께 살아가면서 더 파이팅 넘치게 응원해 주고, 아닌 것은 아니고 맞는 것은 맞다고 쓴소리도 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 함께 성장하는 멋진 관계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 가족은 다 좋은데 참 시끄럽긴 하다. 가끔 글 쓸 때 자꾸 불러서 짜증난다. 그러나 난 우리 가족이 좋다. 함께를 중시하지만, 또 개개인을 존중해 주고, 함께 웃고 울고 놀고 먹고… 서로의 꿈을 응원하는 우리 가족.
우리 모두 너로서, 남으로써 만났지만, 서로를 더 잘 알기 위해 노력하고 품어 주었다. 그래서 나도 집 밖에서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놀 때, 그렇게 하기 위해 노력한다. 엄마 아빠가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셨고 나도 그걸 언니와 동생에게 나누며 가족은 그러기 위해 있음을, 사람들은 모두 나처럼 소중하고 존귀하며 함께 나누며 살아야 함을 알았기 때문에.
그래서 난 이 글을 읽고 계시는 모든 분께 지금 노력하고 계시는 모든 일들에 응원을 보내고 싶다. 꿈을 위해, 옳다고 믿는 것을 향해, 각자의 주어진 자리에서 꿋꿋이 노력하며 마냥 행복하기만 하지는 않을 오늘을 살아가는 그분들께.
어차피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정말 저 위에까지 거슬러 가면 다 한 가족임을 난 믿으니까. (우리 조상은 아담.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아님.)
‘나’가 있고 ‘너’가 있기에 ‘우리’가 생기고 세상이 된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나와 다르고 특이한 점이 보인다고 해서 사람 취급하기를 멈춰서는 안 될 것이다.
너, 당신, 그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