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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y to the World Aug 24. 2023

어린 시절_8~13살

첫 번째 이야기

정말 특출난 사람이 아니라면 누구나 그렇듯, 나도 어렸을 때 노는 걸 무척이나 좋아했다. 그러나 나는 놀면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공부가 아닌 다른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어감이 좀 이상하긴 하지만;;)          


하루 일과는…. 아침에 일어나 성경 묵상 시간을 가지고 성경쓰기 및 읽기를 하고 아침을 먹었다. 어렸을 때는 아침 먹고 시간만 되면 쪼르르 안방으로 달려가 TV를 봤다. (지금은 TV가 없다.) 그리고 해야 할 일(코업(홈스쿨링 가족들의 모임을 우리는 그렇게 불렀다)에서 내준 숙제나, 초등학생 나이가 되고 나서는 조금씩이라도 진도를 나가 놓아야 하는 수학이나, 항상 습관이 되어서 할 일이라 보기는 어려운 독서)을 마치면 자유롭게 놀았다.(더 어렸을 때는 거의 책만 읽고 많이 놀고, 밖에서 놀거나 여행을 다니면서 자주 곳곳을 다녔던 것 같다.)          


인형 놀이, 색칠 공부, 소꿉놀이, 밀가루 놀이…. 정말 다양한 걸 갖고 놀았었다. 한번은 환경에 관한 책을 읽고 쓰레기를 줍겠다면서 비닐과 나무젓가락을 들고 나가서 담배꽁초를 주우러 다닌 적도 있었다. 나는 궁금한 게 많았고, 좋은 건 좋고 싫은 건 싫은 확실하고 조금은 엉뚱한 애였다.


난 잘 놀았고, 잘 먹고 잘 잤다. 자연 안에서 놀다 보니 저절로 자연을 소중히 여기게 되었고, 다른 벌레들과 차별하는 건 아니지만 집안에 들어온 무당벌레는 죽이지 않고 내보내려 노력하기도 한다. 항상 우리 가족이 나에게 이야기하는 거지만 난 무당벌레를 엄청나게 좋아했다고 한다. 아기 때부터 그림책에 있는 무당벌레들을 속속들이 찾아냈다고.   

  

책 읽고 서로에게 얘기하고 설명하고, 또 그걸 바탕으로 인형 놀이하고 역할극하고…. 과장일 순 있겠지만 난 진짜 여러 사회의 모습을 대부분 책에서 배운 것 같다. 학교에서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생활하는지,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는 적나라한 모습도 알게 되고, 정말 아껴주는 친구의 모습도 만나게 되었다. 우리 엄마 아빠 같은 좋은 엄마 아빠도 있지만, 허클베리 핀의 아빠 같은 별로 좋지 않은 아빠도 있구나, 홍당무의 엄마는 왜 그러실까 하는 생각도 했다. 위인전을 읽으면서 위인들의 삶을 본받아야겠다고 굳게 다짐하기도 했다.  

   

지금 기억나고 얘기하는 건 아마 거의 다 초등학생의 나이 때일 것 같다. 더 어렸을 때는 바이올린을 처음 보게 된 것, 코업에 처음 가서 선배들과 친구들을 만난 것, 아파트 공원에서 우리 정원이라고 얘기하면서 소꿉놀이하고 또 자연을 만끽한 것, 친구들과 놀고, 언니와 동생과 논 것 외에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났을 때부터 내 홈스쿨링 인생은 시작되었지만 내 짧은 기억을 탓하며 아마 다른 사람들 아기 때와 별다를 점이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 주시면 좋겠다.          


도서관도 좋아했다. 한 치 거짓말도 없이 우리 집에는 불과 2018년이 되어서야 에어컨이 생겼다. 그래서 도서관으로 피서도 많이 갔지만, 2주마다 도서관에 한 번씩 꼭 가곤 했다.     

     

Why? 시리즈를 많이 읽기도 했지만 재밌어 보이는 책은 많이 읽었다. <왕자와 거지>, <톰 소여의 모험>, <나니아 연대기 시리즈>…. 또 집에 삼성출판사 어린이용 세계 고전(?) 시리즈 같은 게 있었는데 거기서 <셰익스피어 이야기>의 한여름 밤, <피노키오>, <세라 이야기> 등 그 이야기들도 즐겨 읽었다. 책 편식은 심했지만, 결코 책을 싫어하지도 않았고, 또 좋아하진 않았다.     


그렇지만 특이하게 나는 책을 읽고 나서 뭔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실천해냈다. 여러 이야기를 읽으면서 꼭 예의 바르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원래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을 그냥 내뱉곤 했던 나는 엄마가 항상 말씀하셨던 말하기 전에 생각하고 말하기라는 규칙을 비로소 지키게 되었다. 엄마를 도와야겠다는 생각도, 동생에게 더 잘 대해 주어야겠다는 생각도 <작은 아씨들>을 읽고 하게 되었다.    

 

8살 때는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고, 9살 때는 먼저 배우기 시작한 언니랑 같이 피아노를 배우기 시작했다. 코업에서 내준 숙제는 철저하게 다 해갔고, 지금은 그때 쓴 일기를 읽는 것도 쏠쏠한 재미다. 영화도 좋아해서 할 일을 다 하고 나면 세 자매가 모여 앉아 성경 만화나 디즈니 공주 시리즈, 더 커서는 나니아 연대기도 즐겨 보았다. 수학, 과학은 정말 싫어했다.     


자연에는 관심이 많았다. 식물 관련 과학책은 잘 읽었고, 지금도 식물에 여전히 관심이 많고 좋아한다. 자연 관찰을 참 좋아했던 것 같다. 책에서 눈의 결정 모양에 대해서 읽고 나서 눈이 오자 언니랑 돋보기를 들고 베란다에 나가서 창문 난간에 쌓인 눈을 보며 감탄하기도 했다.     


12살 때부터는 뜨개질을 시작해 거의 매일 뜨다시피 해 현재 완전한 고수의 손땀의 소유자으로 거듭나기도(?) 했다. 오케스트라 단원으로 활동하다 제대로 연습 안 해서 오디션 때 큰코다치기도 하고, 교회에서 아웃리치 갔다가 말실수해서 호되게 혼나기도 하고…. 즐거운 경험들, 아픈 경험들, 여러 가지 실수의 경험들, 부끄러운 순간들, 행복하고 뿌듯했던 순간들이 쌓이고 쌓이면서 난 자라갔다.     




사실 어렸을 때 별로 한 건 없다. 그렇지만 매일 꾸준히 아침마다 매일 일어나자마자 같은 루틴을 유지하게 되면서 성실성이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다. 자연 속에서 신나게 놀고 자연 관찰하고 호기심을 가지면서 바빠진 요즘에도 예쁜 하늘과 활짝 미소 지은 꽃을 보며 행복할 수 있게 되었고, 더운 여름의 잠깐 스쳐 지나가는 시원한 바람과 흐린 날 고개 내민 햇살을 보고 감사하는 법도 배웠다. 좋아하든 말든 책을 계속해서 읽으면서 나중에 책을 사랑하게 되었을 때 정말 무리 없이 쭉쭉 읽을 수 있는 책 읽기 실력이 갖춰져 있었고, 숙제이긴 했어도 꾸준히 독서록을 쓰고 일기를 쓰며 나를 돌아보고 더 나은 나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발 받침을 마련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난 딱히 많은 걸 하진 않았지만, 많은 걸 조용히 쌓아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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