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으로 심호흡을 하고... 나의 생존(?)을 위한 연기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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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주 기대가 어린 눈빛과 표정으로 스무디를 바라보며
- 거침없는 손놀림으로 숟가락을 쥐어들고 스무디를 크게 한입 퍼먹으며 감탄사를 날린다.
“으음~~ 이거 진짜 맛있다!!!!”
- 이때 포인트는
1) 눈을 지그시 감고
2)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3) 미슐랭 맛집의 베스트 메뉴를 음미하는 듯하는 것.
- “왜 이렇게 맛있지? 오늘따라 스무디 맛이 미쳤네? (사실 스무디가 아니라 ‘내가 미친’ 거지만)
- 이렇게 맛있는 건 도저히 멈출 수가 없다는 뉘앙스를 풍기며 더욱 적극적으로 스무디를 퍼먹는다.
1) 여기서 정확히 여러분들의 이해를 돕자면, 나와 아내의 ‘스무디 계약’은 “다섯 스푼”으로 되어있다. 아내가 한 컵 가득 스무디를 채우면, 내가 다섯 숟가락만큼의 스무디를 먹고, 나머지는 모두 아내가 먹는다.
2) 따라서, 나는 총 다섯 스푼을 먹기까지 연기를 마쳐야 한다. 더 이상 마시게 되면 표정이 일그러지며 나의 완벽한 연기에 흠집이 생길 수 있기 때문에.
이렇게 스무디를 마시며 연달아 “으음~~ 이거 진짜 맛있다!!!!”를 연신 외치니, 무표정이었던 아내의 얼굴에 활짝 웃음이 폈다. 아마도 매일 스무디를 마실 때마다 무슨 ‘사약’을 받는듯한 표정으로 억지로 마시던 나의 반응 때문에 오늘도 아내는 ‘부정적 반응을 각오’하고 남편의 건강을 위해 악역을 감당하는 마음으로 내게 스무디를 주었을 텐데, 예상치 못한 내 반응이 웃기면서도 기분 좋았을 것이다. 그리고 아내는 나의 ‘연기’에 정말로 행복해했다.
‘그래... 그거면 되었다... 내가 아내를 만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할 수 있는 능력 안에서’ 아내가 어제보다 오늘 더 행복해지도록 하는 것이었으니...‘
(닭살 돋는 문장에 진심으로 사죄드립니다. 그리고 ‘닭살멘트 알레르기’가 있으신 분께는 미리 더욱 사죄드립니다. 앞으로 주구장창 나올 예정입니다. 이렇게 아침마다 남편의 건강을 위해 (But, 정신건강은 내려놓은) 맛대가리를 상실한 맛 좋은 스무디를 가져다주는 아내에게 어찌 사랑 가득한 멘트를 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사실 이 글은 아내도 읽을 것이기 때문에, 저는 저의 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습니다. 일단 나 한 몸 건사해야 미래를 내다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백수 남편은 이 치욕을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사실 이렇게까지 아내가 즐거워할 줄 몰랐고, 그러면서 동시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남편의 건강을 챙기기 위해 손수 장을 보고 1시간 동안 재료를 손질하여 점심때마다 (내가 점심때 일어난다...) 스무디를 가져다주었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게다가 백수!!) 피드백이 고작
- 무슨 사약을 받은 듯 억지로 마시고
- 인상을 찌푸리며, “맛이 없다”
였으니...
그리고 미안함과 동시에 큰 깨달음도 찾아왔다.
(이어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