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생면 파스타가 열풍을 끌고 있다. 사실 생면 파스타는 일반 파스타와 크게 다를 것이 없다. 면을 직접 뽑은 생면을 사용한다는 것 말고는. 생면 파스타를 취급하는 곳은 여러 곳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페리지는 정말 예약하기가 힘들기로 소문이 나있다. 예약이 열리면 거의 1초만에 끝나는 곳. 그럼 생면 파스타가 일반 파스타와 별로 다를 것이 없다면 페리지는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을까? 그래서 메뉴에 있는 거의 모든 메뉴를 시켜서 한 번 먹어봤다.
Starter | Manzo Tonnato
치아바타 위에 소고기, 올리브, 케이퍼 그리고 참치로 만든 소스를 곁들인 디쉬. Tonnato는 피에몬테의 전통적인 소스로 참치와 케이퍼, 앤초비 등을 이용해서 만든다. 설명으로 들으면 별로일 것 같지만 비린 맛이 없고 산미와 감칠맛 그리고 크리미함이 치아바타와 고기와 정말 잘 어우러졌다.
Starter | Perigee Eclair
디저트인 에클레어를 에피타이저 형태로 재해석한 디쉬. 개인적으로 베스트 디쉬 중 하나였다. 슈가 일반적인 슈보다 딱딱하고 바삭했는데 식감 면에서 매우 훌륭했으며 닭간과 피스타치오가 크리미하면서도 고소한 감칠맛을 줬다. 그리고 닭간이 크리미해 무거운 디쉬로 생각이 될 수 있지만 saba(포도즙을 졸인 시럽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바삭한 슈와 달콤한 saba가 무겁지 않고 디저트 같은 뉘앙스로 바꿔주었다.
Starter | Charred Octopus
매우 부드러운, 그릴에 Charred이지만 거의 찐 것처럼 부드러웠다. 그 와중에 껍데기는 바삭했다. 그리고 홍합으로 맛을 낸 버터 소스(뵈르블랑의 변형 버전인가?)가 곁들여져 나왔다. 버터 소스에 약간의 머스타드가 들어갔는지 산미를 채워줘서 좋았다.
Pasta | Tagliolini with Frutti di Mare
오징어, 관자, 랑구스틴이 들어간 토마토소스 베이스의 해산물 파스타. 해산물 라구가 더 적절할 듯하다. 오징어 내장과 랑구스틴의 머리와 껍질에서 해산물의 진득한 소스를 뽑았다. 비스크 소스와는 다른 느낌. 비스크 소스는 갑각류의 향이 강하고 산미보다는 감칠맛과 농축된 농후함이 강하지만 이 파스타의 소스는 토마토소스를 베이스로해서 산미가 주가 되고 거기에 해산물에서 뽑아낸 감칠맛과 농후함이 살짝 곁들여진 느낌이다. 개인적으로 일반 토마토 해산물 파스타일 줄 알고 별로 기대를 안했는데 맛있었다.
Pasta | Rose Cavatelli with Red Shrimp
홍새우와 카바텔리면을 이용한 비스크 소스 베이스의 파스타. 손으로 직접 꼰 카바텔리 면의 식감이 재밌었다. 넓은 면의 표면적 덕분인지 소스와 따로 놀지 않아 좋았다. 비스크 소스야 워낙 맛없기가 힘들어서 예상을 뛰어넘는 맛은 아니었으나 그럼에도 충분히 맛있는 파스타였다.
Pasta | Andarinos with Lobster
사프란과 성게알을 이용한 소스에 약간 떡 같은 식감의 안다리노스 면을 이용한 파스타. 랍스터 식감에 정말 놀랐던 디쉬. 버터 포치를 한 것인지 랍스터 자체의 맛과 향이 정말 좋았고 특히 뭐랄까 정말 탱글하면서도 부드러운, 알이 큰 샤인 머스켓을 먹는 것 같은 식감이었다. 근래에 랍스터를 먹은 적이 없지만 먹어본 랍스터 중 손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소스도 정말 맛있었는데 샤프란과 성게알의 눅진함과 크리미함 그리고 토마토로 곁들인 약간의 산미가 좋았다. 면의 식감이 떡 같아서 고급 떡볶이를 먹는 느낌도 들었다. 베스트 디쉬 중 하나.
Pasta | Pici with Vongole
두꺼운 면을 사용한 봉골레, 물이 많은 타입의 봉골레가 아니고 오일과 조개 육수가 잘 에멀젼된 봉골레였다. 파와 고추가가 주는 시원한 느낌이 좋았다. 다만 다른 파스타에 비해서 뭔가 양이 적은 느낌... 맛있는 파스타인 것은 분명하지만 꼭 시켜야 할 파스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페리지에는 다른 곳에서는 먹기 힘든 훌륭한 파스타가 많으니까.
Main | Layered Lasagna
먹기 좋게 이미 잘려서 나온 라자냐. 사실 이것도 크게 기대는 안했다. 라자냐도 어느 정도 예상치는 있으니까. 하지만 기분 좋게 예상을 빗나갔던 맛이였다. 라자냐는 일반적으로 면 위에 다진 고기, 베샤멜소스, 치즈, 토마토소스를 겹겹이 쌓아 만들어서 고기의 맛이 도드라지기보다는 치즈, 토마토, 베샤멜(크림 소스)가 겹겹이 쌓여있다 보니 고기 본연의 맛은 조금 가려지기 마련이다. 근데 페리지의 라자냐는 베샤멜의 비중이 좀 낮고 고기의 맛이 도드라졌다. 수제버거 집의 잘 익힌 햄버거 패티를 먹는 느낌. 거기에 뽀모도로 소스와 베샤멜소스, 그리고 겹겹이 쌓은 라자냐 면이 고기를 보조하는 느낌이 들었다. 베스트 디쉬 중 하나.
그래서 생면 파스타 열풍, 이유가 있었나?
페리지에 가서 배부르게 먹으려면 인당 10만 원 정도는 생각을 하고 먹어야 한다. 사실 적지 않은 금액. 가서 배를 채우는 곳 이라보다는 다이닝 바에 가깝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볼 만하다고 생각한다. 생면 파스타집이어서가 아니다. 페리지에서 생면 파스타는 그냥 파스타를 조금 더 완성도 있게 해주는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굳이 생면이 아니더라도 재료와 소스의 조화가 정말 훌륭한, 다른 곳에서는 맛보기 힘든 파스타가 많았다. 또한 홀서빙 서비스도 정말 훌륭했는데 거의 10 접시를 시켜서 일행과 나눠먹었는데 그때마다 앞접시와 식기를 말하지 않아도 매번 바꿔주셨다. 페리지를 그냥 생면 파스타 집으로 치부하기엔 요리의 수준이 높았다. 부디 예약이 된다면 한 번 가보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