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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섞인 고향 만두

과거와 지금의 내가 여전히 닮아 있음을 깨닫다

by 불안정 온기

오전 6시 43분


희미한 벨 소리가 귓구멍을 긁었다.


"네 여보세요?"

"0000번 차주시죠? 여기 차 좀 빼주시겠어요?"

"아 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기름진 머리에 모자 하나 눌러쓰고, 양말도 신지 않은 맨발에 운동화를 찔러 신고는 밖으로 나갔다. 잔뜩 성난 아저씨 한 분은 소리쳤고, 다른 한 분은 한 번의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 전화를 40통이나 했는데 왜 이제야 나와요!"


방금 막 잠에서 깬 머리가 회전을 멈춘 탓인가. 호통에 당황한 나머지 죄송하다는 말도 못 한 채 차를 후진시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화끈한 기상 미션이었다.



만두를 찌며


배가 고팠다. 문득 어제 친근한 마음에 사 온 고향만두 한 봉지가 냉동실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곧바로 냄비에 물을 올리고 찜 틀을 담갔다. 식탁에 앉아 휴대폰을 확인하니 부재중 전화 38통이 찍혀있다.


"40통이나 했다더니 진짜네..."


이쯤 되면 아저씨는 전화를 받지 않는 것에 대한 분노를 넘어, "과연 언제까지 안 받나 한번 보자."같은 기록 세우기에 혈안이 되셨던 게 분명하다. 이윽고 물 끓는 소리에 찜틀 위로 냉동만두를 올리고 뚜껑을 덮는다. 이쯤이면 됐겠지, 싶을 때 뚜껑을 열고 만두 볼살에 젓가락을 푹 찔러본다. 쑥 잘 들어가는 걸 보니 먹어도 되겠다.



소스 없는 식탁


만두를 좁은 접시에 가득 눌러 담고 수저통에서 젓가락 하나 쑥 빼서 자리에 앉았다. 뭐 하나 안 챙기지 않았냐고? 내 만두 식사 자리에 무언가 초대받지 않았음을 느낀다면 그건 소스의 부재일 것이다. 나는 만두에 아무것도 찍어먹지 않는다. 초밥, 순대, 심지어는 회도 그렇다. 나랑 식사하던 친구가 내게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본연의 맛을 좋아하나 보다 너."


그런가? 그건 아닌 것 같다. 인간이 무언가를 곁들여 먹는 이유는 한 가지 음식만으로는 낼 수 없는 조화로움을 느끼기 위함이다. 그 사실을 아는 내가 굳이 본연의 맛을 고집할 리는 없다. 그럼 도대체 언제부터, 왜 그랬을까.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다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다만 확신 섞인 추측 하나는 있다. 아마도 친누나가 내 몫까지 뺏어 먹는 게 지독히도 괴로워서 그랬던 것 같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라고 할 수도 있겠다. 그건 아마 성인의 시점을 가졌기에 더 이해하기 힘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젓가락도 겨우 드는 아이의 손가락 근육으로 '만두 집기 -> 간장 종지 경유하기 -> 입으로 가져가기'라는 경로를 반복하는 것은, 식탁 위에서 벌이는 손가락 철인 3종 경기나 다름없다. 그런 와중에 두 살 터울 누나가 나보다 1.5배는 빠른 속도로 접시를 비워낸다고? 실로 분할 수밖에. 그래서 내가 택한 방법은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한다'는 심정. 소스의 맛을 내어주고 만두의 수량을 취하겠다는, 어린 내가 할 법한 귀엽지만 필사적인 전략이었을 것이다.



향수로 맛을 채우다


그때처럼 간장 종지 하나 없이 입안 가득 고향만두를 넣고 저작운동을 시작한다. 어릴 땐 그렇게나 꽉 차 있다고 느꼈던 만두 속이, 지금은 만두피 양 귀퉁이의 밀가루 공간이 유독 크게 느껴질 정도로 초라하다. 나이가 들면서 고향만두가 아닌 속이 꽉 찬 경쟁사들의 만두 맛을 봐 버렸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이 부족함이 좋았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만화 허영만 만화가님의『식객』의 「올챙이국수」 편을 보면, 손자와 여행을 떠난 할아버지가 맛없는 올챙이국수를 먹고 가이드에게 묻는다.


"올챙이국수는 대체 무슨 맛으로 먹나요?"


가이드는 이렇게 답했다.


"올챙이국수는 맛이 아니라 향수로 드셔야 해요."


오늘 나에게 고향만두가 꼭 그랬다. 부족한 맛은 향수가 금방 채워주었다.



과거와 현재의 혀


거실의 웅웅 거리는 제습기 소리 속에서, 젓가락으로 만두 하나를 들어 입안에 넣는다. 키가 작아 가슴이 식탁 모서리에 겨우 닿던 시절, 내 손가락보다 세 마디는 더 컸던 젓가락으로 힘겹게 만두를 집어 올리던 그 순간이 겹쳐진다. 입안에서 만두를 씹을 때마다 두 공간의 기억이 머릿속에서 교차된다. 역시 고향만두는 그때의 맛을 잃지 않았다. 고군분투하며 콩고기의 단맛에 매료되었던 어린 시절과 지금은 분명 다르지만, 과거의 혀가 느꼈던 경험이 시간을 넘어 오늘의 혀에 연결됨을 느낀다. 오늘의 만두는 과거의 만두와 같은 만두다.



변하지 않은 것들


다 먹고 일어서자마자 회사에 갈 준비를 할 시간이라는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 순간, 만두를 다 먹고는 엄마에게 등 떠밀려 가기 싫은 학원 가방을 싸던 내 모습이 스쳐 갔다. 예나 지금이나, 만두 맛만 변하지 않은 게 아니었다. 떠오른 생각에 살짝 미소를 머금고는 치약 칫솔을 입에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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