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유명한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이 생애 첫 공중파 인터뷰에서 받은 질문이었다.
기자가 묻자, 나는 속으로 기대하며 아이들의 답을 기다렸다.
‘아빠가 동네방네 전업주부라고 떠들고 다니는데, 우리 아이들도 자랑스럽게 “우리 아빠는 전업주부예요”라고 말해줘야지!’
하지만 돌아온 답은 예상과는 달랐다.
'아빠는 요리해주는 사람!'
'아빠는 그림 그려주는 사람!'
'아빠는 놀아주는 사람!'
기자도 놀라고, 나도 놀랐다.
그렇다.
아직 초등학교 저학년과 유치원생인 우리 아이들에게는 ‘직업’이라는 개념이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다.
그들에게 직업이란 ‘아빠가 해주는 일’ 그 자체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는 이 답변이 의미심장하게 느껴졌다.
몇 달 전, 딸아이 친구와 나눈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엄마는 검사님이셔서 맨날 바빠요
작년 초, 토요일 도서관.
아이들은 책을 보거나 뛰어놀고, 나는 휴대폰을 보고 있었다.
그때 딸아이가 친구를 데려와 나에게 소개했다.
나는 가볍게 인사하며 자연스럽게 물었다.
“엄마는 어디 계셔?”
그러자 그 아이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또박또박 답했다.
“저희 엄마는 검사님이셔서 맨날 바빠요. 도서관에는 아빠랑 왔어요.”
나는 순간 멍해졌다.
그냥 부모님이 주변에 계시면 인사라도 하려고 한 질문이었는데,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온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태도에서 느껴졌다.
‘우리 엄마는 검사야.’
그 말 속에는 엄마의 직업이 대단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마음이 묻어 있었다.
우리 아이들은 전업주부 아빠를 어떻게 바라볼까?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우리 아이들은 ‘전업주부 아빠’를 어떻게 받아들이게 될까?
지금은 단순히 “아빠는 요리해주는 사람, 그림 도와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점점 자라면서 친구들과 비교하며 ‘아빠의 역할’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다가올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의 시기.
(= 자신의 신발 브랜드, 교문 앞에서 타게 될 차종, 방학 때 다녀온 휴가지 등으로 친구들과 비교하기 시작하는 때.)
그때가 오기 전에,
나는 우리 아이들에게 ‘전업주부도 충분히 자랑스러운 역할’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고 싶다.
왜냐하면 앞으로도 한동안,
넷째가 학교에 입학하고, 더 이상 부모의 보살핌이 필요 없을 때까지는
나는 다른 직업을 갖지 않고 ‘집안일만 전문으로 하는 주부’로 남을 예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에게 ‘직업’이라는 것이 돈을 버는 역할뿐만이 아니라, 가정을 돌보고 아이들을 키우는 것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임을 보여주고 싶다.
아이들이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든,
그들의 삶에서 돈과 명예만이 전부가 아닌 다른 가치를 발견할 수 있도록.
그래서 나는 유명한 전업주부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이들에게 ‘전업주부’라는 말이 단순히 집안일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의 일상을 지키고 삶의 가치를 만들어가는 존재임을 보여주기 위해서다.
세상에 당당히 내 이름을 걸고, 전업주부라는 직업을 더 이상 설명하거나 변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내가 자랑스럽게 살아낸 만큼, 아이들도 스스로의 선택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도록.
하지만 문제는, 내 의지만으로 이 목표를 이루기엔 부족할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나는 내 삶으로 ‘전업주부’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지만, 결국 그것은 나의 삶의 맥락 속에서 얻어진 결론일 뿐이다. 아이들은 나와 다른 시대를 살아가며, 집을 벗어나는 순간부터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외부 환경 속에서 끊임없이 타자와 비교하며 자아를 형성할 것이기 때문에, 단순히 내가 옳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그것을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아이들에게 ‘전업주부’라는 삶이 하나의 당당한 선택이 될 수 있음을 설득하려면, 나의 경험뿐만 아니라 보다 객관적인 척도가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미디어를 활용하기로 했다.
뉴스에 나오는 전업주부, 유튜브에 출연한 전업주부, 방송 예능에 나오는 전업주부, 책에 등장하는 전업주부 등 이 모든 곳에 나는 전업주부로 등장한다.
적어도 우리 집 안에서는 전업주부라는 단어가 사회적 편견과 연결되지 않고, 내가 만들어낸 새로운 의미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그렇게 나는 스스로를 콘텐츠로 만들고, 내가 선택한 삶을 세상이 궁금해하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아이들이 자라나 언젠가 자신의 길을 고민할 때, 전업주부라는 선택이 주어졌을 때도 조금 더 가볍고 자유로운 마음으로 고민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