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서로의 시간과 선택을 유연하게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방법

by 문현준 monkey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이웃사촌 모모의 책 ‘이번 여행지는 사람입니다.’에서 아래의 질문에 답한 적이 있다. 가끔 마주칠 때마다 전혀 다른 일을 하고 있고, 동네에서 모습이 보이지 않아 부모님께 근황을 여쭤보면 지구 반대편 어딘가에 있는 역동적인 삶을 사는 이웃이었다. 그런 모모의 자유로움은 항상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역할을 지켜야 하는 나에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COVID-19로 불리는 전세계적으로 유행했던 호흡기 감염병이 휩쓸고 난 뒤 모모는 독특한 라이프스타일을 가진 10명의 청년 이야기를 책으로 엮고 있었고, 영광스럽게도 내가 첫 번째 인터뷰 대상이 되었다. 경력과 인적 교류에서 단절된 삶을 살던 내게 누군가가 내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준다는 것은 뜻밖의 일이었고, 동시에 감사한 일이었다.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그때의 인터뷰는 나에게 새로운 전환점이 되었다. 표현은 지금보다 서툴렀고, 넷째도 태어나기 전이었다. 하지만 그때 처음으로 ‘전업주부’라는 내 삶이 단순한 개인적인 선택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흥미롭고 의미 있는 이야기로 다가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전까지 나는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어딘가에서 우리가족이 선택한 삶을 증명해야 한다는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인터뷰를 통해 내 삶이 외부의 시선에 의해 기록되고 공유되자, 그 질문은 점차 희미해졌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역할을 지키고 있지만, 더 이상 흔들리지 않는다. 다만, 이제는 이런 생각이 든다. 혹시 누군가는 여전히 이 질문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고민하고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나는 말해주고 싶다. 삶의 선택 앞에서 ’이렇게 살아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든다면, 그건 어쩌면 남들이 정해놓은 기준과 내 삶이 충돌하고 있다는 신호일지도 모른다고. 정답을 찾기보다는, 그 질문을 품고 살아도 괜찮다고. 결국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그 질문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주었고, 지금의 나를 만든 과정이었다는 걸 알게 될 거라고.


그때의 인터뷰 내용을 다시 꺼내 읽으며, 이제는 더 단단해진 우리의 삶과 지금의 시선을 담아, 그때 하지 못했던 이야기까지 덧붙여 재구성해보려 한다.


왜 전업주부가 되었냐고요?


(종이에 선을 하나 긋는다.)

“여기, 저라는 사람의 타임라인이 있습니다.

태어나서 나 하나로 존재하며 살았죠.

학교에 다니고, 대학에 들어가고, 군대를 다녀오고, 전과하고, 회사에 입사하고, 퇴사하고…

이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직선 위에 쌓이며 ‘나’라는 사람의 이야기를 만들어왔어요.

이때까진 오롯이 나를 위한 시간이었죠.


(선 아래에 또 다른 선을 긋는다.)

그러다 결혼을 했습니다.

이제 제 곁에는 아내의 타임라인이 나란히 그려지게 됐어요.

이제는 둘이 함께 걷는 길.

서로의 꿈과 계획, 고민과 결정들이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고 교차하고, 맞닿고, 영향을 주고받는 관계가 시작된 겁니다.


(길이가 다른 선 세 개를 오른쪽에 더 그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첫째의 타임라인, 둘째의 타임라인, 셋째의 타임라인.

그리고 가장 짧은 선, 막 시작된 넷째의 타임라인까지.

이렇게 여섯 개의 선이 나란히 놓이게 되었죠.


(잠시 멈추고 이 선들을 바라본다.)

이 선들은 평행하지 않습니다.

길이도, 굵기도, 속도도 다르죠.

왜냐하면, 모든 인생은 저마다 다른 리듬으로 흐르니까요.


(이제 이 모든 선을 관통하는 수직선을 하나 긋는다.)

이 수직선은 바로 ‘하나의 사건’입니다.

어떤 한 시점에서 벌어진 일은 가족 모두의 시간에 영향을 미칩니다.

가령, 남편이 지방으로 발령이 나면 어떻게 될까요?

대부분의 경우 가족이 함께 이사를 가죠.

아내는 하던 일을 잠시 멈추거나, 포기해야 할 수도 있고,

아이들은 정든 친구와 학교를 떠나야 합니다.


때로는 이런 변화를 한 사람이 온전히 감당하기도 합니다.

소위 ‘기러기 아빠’라는 이름으로 말이죠.

하지만 그 빈자리가 남기는 파장은 가족 모두에게 영향을 미칩니다.

‘부재’는 단순한 물리적 거리가 아니라, 감정의 거리도 만들거든요.


유연한 선택이 가족을 더 단단하게 만든다


우리는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꼭 이렇게 살아야 할까?”

“누군가가 늘 포기해야만 가족이 유지되는 걸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의 역할에 있어서 유연함을 선택했습니다.


지금은 아내가 직장을 다니고, 저는 전업주부로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첫째는 4학년, 둘째는 3학년, 셋째는 유치원생, 넷째는 어린이집에 다니죠.

하지만 이 모습이 ‘우리 가족의 영원한 공식’은 아닙니다.


어떤 시기에는 아내가 퇴사하고 집에서 아이들을 돌본 적도 있습니다.

그때 저는 동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일용직으로 건설 현장에서 일했죠.

이 모든 변화는 계획된 게 아니라, 필요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선택이었습니다.


‘누가 더 중요한가’가 아니라,

‘지금 누구의 손이 더 필요할까’라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왜 전업주부가 되었냐고요?”


이 질문은 어쩌면 이런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왜 당신은 익숙한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선택했나요?”

“왜 사회가 기대하는 방식과 다른 선택을 했나요?”


저의 대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 가족이 더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이었으니까요.

가족은 누군가의 희생으로 유지되는 구조가 아니라, 서로의 시간과 선택을 유연하게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공동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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