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전업주부로 남기로 했다.
새로운 모임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질문은 늘 비슷하다.
“어떤 일 하세요?”
나는 간단하게 대답한다.
“집에서 살림하고 애봅니다.”
그러면 대부분 내 단발머리와 덥수룩한 수염을 보고 묻는다.
“예술 하세요?”
나는 단호하게 답한다.
“전업주부입니다.”
이 대답 뒤엔 자녀가 있는 경우 두 가지 반응이 따라온다.
여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남편도 그랬으면 좋겠는데…”
남성들은 이렇게 말한다.
“나도 전업주부가 꿈인데…”
오늘의 이야기는 바로 그 두 번째 반응, 즉 “나도 전업주부가 꿈인데….”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전업주부 1년차, 내가 전업주부가 된 선택은 우리 가족의 필요를 가장 잘 충족하는 합리적인 결정이었다.
아내는 청소년 시설에서 유동적인 근무 시간과 휴무일을 소화해야 했다. 반면, 나는 대학의 계약직 행정직으로 일하던 중이었다. 우리가 원하는 곳에서 자녀를 낳고 키우려면 양가 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었고, 둘 중 하나는 살림과 육아를 전담해야 했다.
그래서 내가 그 역할을 맡았다.
아내는 정규직으로 경력을 이어가고 있었고, 나는 계약직 행정직이었기 때문에. 게다가 나는 자취 생활 10년차에 취사병 출신이라는 화려한(?) 스펙을 갖추고 있었다. 성별에 따른 역할 강요만 없다면, 누구에게나 명백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하지만 가족 내에서는 명확히 납득된 선택이라도 외부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누군가 “왜 아빠가 살림을 하니?”라고 물어볼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우리 부부의 선택이 얼마나 합리적이고 필연적인지 설득하려고 했던 초기의 대답은 길고 복잡했다.
“아내는 유동적인 휴무와 근무시간을 가진 정규직이고, 저는 계약직 행정직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하면 나도 모르게 상대의 반응을 살피며 설득에 성공했는지를 점검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알게 되었다. 내가 준비한 이 긴 설명은 사실 아무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이야기라는 것을.
그저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확인할 뿐, 그 역할을 왜 맡게 되었는지는 궁금하지 않은 것이다.
전업주부 3년차, 예상치 못한 변화가 찾아왔다.
이제는 동네에서 아무도 “왜 네가 살림과 육아를 하니?”라고 묻지 않는 것이다.
그 이유가 궁금해서 동네 모임에서 자주 만나는 분께 물었다.
“왜 아무도 제가 집에서 살림하는 이유를 묻지 않을까요?”
돌아온 대답은 간단했다.
“애들 많이 키우니까 당연히 육아휴직 오래 쓰는 아빠인 줄 알지.”
그 답변에서 작은 깨달음을 얻었다.
남자 전업주부라는 나의 역할이 이제는 의아하거나 특별한 것이 아닌, 그저 동네에서 보이는 당연한 풍경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어떤 사회적 편견이 존재하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받아들이게 된다.
내가 스스로 떳떳하고 자연스럽게 내 역할을 살아갈수록, 남자 전업주부라는 존재도 점차 자연스러운 일이 되어간 것이다.
전업주부 5년차, 이제는 더 이상 나를 설명하기 위해 구구절절 말할 필요가 없어졌다. 나는 누구보다 전업주부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고, 전업주부의 마인드셋으로 살아가고 있다.
어느 날, 대학 총동문회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동문회 인명록을 현행화 중인데요. 전 직장이 우리 학교 인재개발원으로 되어 있는데 혹시 어디로 이직하셨을까요?”
“이직 안 했고요. 지금 전업주부입니다.”
“아… 그럼 전 직장 그대로 둘게요. 주소는 변동 없으신가요? 현행화된 인명록을 보내드리려고요.”
“얼마 내야 하나요?”
“받아보시고 8만원 송금해 주시면 됩니다.”
“받으면 8만원 보내드릴 테니까, 제 직장은 전업주부로 바꿔해 주세요.”
“음… 그러면 프리랜서로 적어도 되지 않을까요? 전업주부는 조금…”
“그냥 전업주부로 적어 주세요.”
그렇게 나는 거금 8만원을 주고, 대학 인명록에 내 역할을 ‘전업주부’로 기록했다. 이것은 나의 역할이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첫 기록이었다.
전업주부 10년차, 나에게 전업주부로 살아간다는 건 특별히 대단한 일이 아니라 단순한 선택의 결과일 뿐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 선택을 지속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을 깨닫는다.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경제적 압박 때문이다. 특히 아이들이 학령기에 접어들면, 사교육비나 생활비 부담이 커지면서 대개 가사노동을 전담하던 여성이건 남성이건 간에 직업 전선으로 복귀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하게 작용한다.
또한 어린이집 입소 대기나 평생학습관에서도 다자녀보다 맞벌이 가정이 더 많은 가산점을 받는 등, 전업주부를 배려하지 않는 제도적 현실도 있다.
실제로 이번에 넷째가 다니던 어린이집이 폐원하면서 집에서 가장 가깝고 이웃들도 많이 보내고 있는 어린이집에 입소 신청을 했다. 하지만 다자녀라는 우선 선발 기준을 충족했음에도 불구하고, 맞벌이가 아닌 가구소득형태라는 이유로 대기 순번이 밀려 입소가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 허탈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제도적 불평등을 마주할 때마다, 내가 전업주부로 살아가는 선택이 사회적으로 얼마나 인정받지 못하는지를 실감한다.
넷째의 어린이집 입소 대기순번을 앞자리로 바꾸기 위해 잠깐이라도 파트타임 일을 해볼까 고민한 적도 있지만, 이제 고학년에 접어든 첫째, 곧 이어서 고학년이 되는 둘째 때문이라도 나는 더욱 이 자리에서 아이들이 하교했을때 집에 있는 아빠가 되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전업주부로 남기로 했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기를 ‘사춘기’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고, 특정 시기에 발생하는 부모와 자녀 간의 단절을 당연하게 여긴다. 부모는 자녀와 멀어지는 시기를 그저 바라보는 데 그치고, 자녀의 정서적 혼란은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많은 가정에서의 이 시기에 대한 비슷한 증언들로 위안을 삼곤한다.
하지만 나는 이 관념에 의문을 던지고 싶다. 청소년기는 아이들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다.
부모가 줄 수 있는 정서적 안정감과 지지는 단순히 가정을 넘어, 아이들이 세상 속에서 자신의 삶을 주인으로 살아가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반대로, 부모와의 단절은 자녀가 또래 집단이나 미디어, 심지어 다른 어른들의 가치관에 더 쉽게 영향을 받게 만든다.
그런 영향을 방치한다면, 아이들은 자신이 아닌 ‘세상이 원하는 대로’ 살 가능성이 더 커진다. 반면, 부모와의 지속적이고 깊은 대화를 통해, 아이들은 세상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어갈 힘을 얻을 것이라고 확신한다.
나는 학령기 이전에 부모가 집에 있는 것도 중요하지만, 아이들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청소년기야말로 부모의 역할이 더욱 중요하다고 믿는다. 이 시기에 부모는 아이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며, 그들의 감정과 고민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앞으로도 전업주부로 남을 것이다.
이유는 단순히 가사를 잘하거나 육아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아이들이 정체성을 형성하는 시기에
곁에서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의 고민에 공감하며,
아이들이 스스로의 삶에서 주인이 되도록 돕는 것이
내 삶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