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전업주부의 불안 마주하기 (1)
친구들, 전 직장 동료, 선배들과의 만남은 항상 묘한 불편함을 남겼다. 그들과의 대화는 마치 내가 어떤 ‘미래 계획’을 준비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 같은 조바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들이 이야기하는 주식과 코인 이야기는 시대를 따라가지 못하는 나를 비추는 거울처럼 느껴졌고, “청약통장을 깼다고?”, "다자녀 특공 안 할 거면 나 좀 줘라"와 같은 반응은 내가 ‘표준 정규 분포에서 벗어난 사람’이라는 사실을 상기시켰다.
그런 대화를 나누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무거웠다. 그들의 질문은 단순한 걱정에서 나온 말일 수도 있지만, 나는 자꾸만 나의 선택을 설명해야 하고, 나의 방식을 설득해야 한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서 알게 된 건, 사실 내가 느꼈던 불편함은 나의 삶이 흔들렸던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불안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것.
“애들이 다 크고 나면 넌 뭐할건데?”라는 질문은 사실 나를 흔드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진 사람들의 흔들림에서 온 것이었다.
되짚어보면 나는 전업주부가 되기 전, 나 역시 그 질문을 던지던 상대들과 비슷한 자리에 있었고, 그들과 같은 불안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계약직으로 일하던 나는, 정규직 자리가 나면 그것이 내 자리가 되도록 나 자신을 증명해야 한다는 압박 속에 살았다. ‘내가 이 자리를 떠나면 대체할 수 있는 사람이 없도록 해야한다.’는 생각으로,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만들어내려 애썼다. 하지만 그럴수록 돌아오는 건 상사로부터의 더 큰 압박과 동료들의 비협조뿐이었다. 열심히 하면 할수록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커져갔다.
이 불안을 본격적으로 마주하고 극복하기도 전에, 나는 짧은 직장 생활을 마무리하고 두 딸의 양육과 가사노동의 현장으로 들어가야 했다. 새로운 역할에 정신없이 적응하는 과정에서 나는 어떤 집단에도 소속될 수 없었는데 아이들이 어린이집도 가지 않고 하루종일 두 자녀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나만의 방식으로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왜냐면 육아관련정보를 얻기위한 맘카페에도 (남자라서) 가입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소통의 단절 속에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은 불안이라는 감정은 있는지도 모르고 한 두해를 보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입소하면서 아이들이 집에 없는 시간이 생기자 훈제요리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매일같이 옥상에 올라가 훈연 가능한 재료들로 이것저것 만들어 보며 시간을 보내곤 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새로운 훈제요리를 시도해보려고 숯에 불을 지피고 있는데 다자녀 선배이자 뮤지션인 이웃이 옥상으로 올라와 내게 한 말이 있다.
불안하지 않으세요?
그 질문은 묘하게 다시 나를 흔들어 놓았다. 그 동안 의식할 수 없었던 감정을 다시 인식하게 되는 계기였고, 불안이라는 감정이 나만의 것이 아니라, 누구나 안고 사는 공통된 감정임을 깨닫게 해줬기 때문이다.
“애들 다 키우고 나면 넌 뭐할건데?”라는 질문에 나는 한동안 이렇게 답했다.
모르겠어.
이 단답형의 대답은 방어기제였다.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삶의 화두를 던져주는 질문이라기보다, 지극히 질문을 던진 사람의 관점에서 나온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삶의 맥락에서 나온 질문은, 나의 삶의 맥락과는 너무 달랐기 때문에 어떤 대답도 그들에게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들이 예상하는 미래에는 내가 선택할 답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우리 가족의 삶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확한 질문을 던져야 정확한 답이 나온다고, 아무리 해도 내가 말하고 싶은 이야기는 할 기회는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대안을 찾았다.
지금 3차원에 살고 있는 우리 앞에 6차원에서 온 누군가가 나타나 그들의 세상을 설명한들 이해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라고 한다. 그들이 본다고 해서, 내가 보지 못하는 것 무엇을 이해한다는 건 큰 에너지가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3차원 공간, 동 차원 안에서 일어나는 일을 보여주고 그것을 이해한다는건 쉬운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들을 내 삶의 반경 안으로 초대하기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삶의 방식이 정규 분포에서 벗어난 모습일지라도,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능하고 심지어 즐겁다는 것을 보여주기로 한 것이다.
“훈제 요리가 요즘 취미인데, 이번에 수제 소시지 만들었어. 먹으러 올래?”
“우리 집 옥상에서 텐트 치고 훈제 삼겹살 만들어 먹을 건데 놀러 와.”
“이번 주 토요일 공터에 대형 트램폴린 설치할 건데, 애들이랑 같이 와. 어른도 뛸 수 있어.”
이렇게 초대를 시작한 후, 변화가 생겼다.
예전에는 “잔치국수를 기가 막히게 잘 만드는데, 한번 놀러 와”같은 말에는 “그래, 언제 한번 보자”라는 형식적인 대답만 돌아왔지만, 이제는 “이번 주? 내일도 갈 수 있어”처럼 구체적인 반응이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SNS에 이런 일상을 공유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내가 초대하기도 전에 먼저 “초대해 달라”는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고, 가끔씩 안부 전화에서 “나는 언제 갈 수 있냐?”라는 말이 나온다.
그렇게 하나둘, 내 방식으로 사람들을 설득하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갔다. 삶의 방식은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보여줄 때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선택한 삶은 틀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주는 과정에서 나에게 질문을 하려던 상대는 더 이상 자신의 관점에서 질문하지 않는다.
계약직에게는 “계약 연장이 안 되면 어떻게 하지?”라는 불안이,
정년이 보장된 직장에서는 “정년 이후엔 뭘 하지?”라는 불안이,
프리랜서에게는 “다음 달에도 일이 있을까?”라는 불안이,
정치인에게는 “과거의 과오가 드러나면 어떡하지?”라는 불안이 따라붙는다.
결국 불안이라는 감정은 우리가 집단에 소속될 때, 어떤 자리에 있느냐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나타난다. 다만 소속된 집단이 가진 불안이 나의 불안인양 착각하며 살아갈 뿐이다.
“애들이 다 크고 나면 넌 뭐할건데?”
이 질문에 이제 나는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애들이 다 크고 나면, 난 내가 좋아하는 걸 하면서 계속 살아갈 거야. 지금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