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전업주부의 불안 마주하기 (2)
“그 집은 도대체 어떻게 생활해요?"
"그 집은 뭐 먹고 살아요?”
우리 가족의 삶을 바라본 이웃들이 종종 던지는 질문이다.
한 직장에서 10년을 다니는 동안 첫째부터 셋째까지 출산한 바깥양반(아내)은, 넷째까지는 무리겠다고 판단해 일을 그만두었다. 넷째를 출산하기 전까지 서울시 육아지원시설의 “보육반장” 역할을 맡아 월 60만 원을 받으며 유연한 근무를 이어갔고, 나는 공동체가 활성화된 마을에서 마을교사로 월 50만 원을 받으며, 가끔 인테리어 현장에서 일용직으로도 일했다. 넷째가 태어나면서 학교와 마을을 잇는 일을 하며 내 수입은 80만 원까지 올랐다.
여섯 가족이 생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었지만, 자존심 때문에 생계급여 같은 저소득층 지원을 신청하진 않았다. 아이들이 하원한 뒤에는 동네 아이들과 이웃을 집으로 초대해 매일 저녁이 파티처럼 흘러갔다.
겉으로 보기에 우리의 삶은 경제적으로 비현실적으로 보였을지도 모른다. 식구가 많으니 식비가 만만치 않을 것이고, 앞으로 아이들의 사교육비는 어떻게 마련할 것이며, 두 사람 다 집에서 일하는 듯 보이는데 과연 미래에 대한 준비는 하고 있는 걸까? 그런 의문은 어쩌면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이런 질문에 대해, 이 불안이 과연 누구의 불안인가를 명확히 인식한 뒤에는 이렇게 답할 수 있었다.
“외식 안 하고, 배달 안 시키고, 집에서 다 해먹으면서 살면 되죠.”
"바깥양반(아내) 퇴직금 까먹으면서 살아요."
세 가족 맞벌이 가정에서 한 달 식비로 쓰는 비용을 듣고, 우리가 여섯 가족의 식비를 어떻게 줄이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설명을 할 때 숙연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일도 육아도 우리만의 삶의 방식에 맞춰 유연하게 조율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 삶에 가장 잘 맞는 자리와 역할이 반드시 있을 거라 생각하며 넘겼다.
그렇게 먹고사는 문제에서 오는 불안을 견디기 위한 자기암시들로 면역이 생겨서일까? 그러고보면 지난 불안들은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많았다.
부모가 되면서 온·오프라인에 넘쳐나는 육아 정보를 접하며, 부모로서 준비를 하게 된다. 육아서적, 맘카페, SNS에서는 특정 시기에 특정 용품을 사야 하고, 자녀를 위해 특별한 무언가를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메시지를 쉼 없이 주입한다.
(지금와서 보니 다행스럽게도) 나는 원래 책을 읽는 습관이 없었고, 남성이라는 이유로 맘카페에 가입할 수도 없었다. 그래서 밀려 들어오는 정보들을 습득할 기회도 없어서 남들 다 해주는데 나만 못 해준다는 불안감에서는 처음부터 비교적 자유로울 수 있었다.
예를 들어, 바운서를 하나 쓸 때도 우리가 알아봐서 준비하기보다는 이미 자녀를 먼저 키운 선배 부모들의 경험을 통해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아내(바깥양반)의 사촌언니가 선물해 준 피셔프라이스바운서*를 첫째와 둘째가 연이어 사용했다. 셋째를 출산하기 전에는 장난감 대여점 직원이 기증받은 뉴나바운서**를 챙겨주셨는데, 막상 사용해 보니 우리 생활에 맞지 않았다. 좁은 집에서 많은 공간을 차지했고, 튼튼한 금속 지지대가 항상 발에 걸려 불편함을 주었다. 결국 뉴나바운서는 얼마 쓰지도 않고 아내 사촌동생에게 물려준 뒤, 첫째 때 사용했던 피셔프라이스바운서를 중고거래 앱에서 나눔받아 넷째까지 사용했다. (피셔프라이스바운서* : 3만원대, 뉴나바운서** ; 39만원대)
만약 내가 첫째와 둘째를 키울 때 육아서를 한 권이라도 읽었다면, 맘카페에 가입했더라면, 나의 선택은 달랐을지도 모른다. 사회가 말하는 “좋은 육아”와 “최신 트렌드”는 우리 삶의 본질과는 다를 수 있다. 블로그에 맛집이라 소개되어서 찾아갔는데 내 입맛에는 동의가 되지 않았던 경험들처럼. 결국, 비싸고 좋다고 알려진 육아 용품은 순간적인 만족감을 주었지만, 우리에게는 익숙하고 꼭 필요한 도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사회적인 동물인지라, 같은 처지의 사람들과 교류하고 그들로부터 지지와 응원을 받고 싶은 때가 있었다. 두 자녀를 처음 어린이집에 보냈을 때 주로 등 하원시간에 엄마들과 마주치며 부모(엄마)모임에 항상 참여하고 싶었으나, 첫째가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둘째만 남아있을 때에서야 그런 기회는 찾아왔다.
육아 용품, 어디 문센이 좋은지, 맘카페에서 올라온 최신정보로 무장한 엄마들 앞에서는 초라해지기 짝이 없었다. 다들 써 봤다는 육아용품이 뭔지도 모르고, 문센도 안 다녀봤고, 맘카페에 가입도 안되고... 그 모임에서 나는 심각한 불편함을 느꼈고, 나의 목소리를 낼 만한 주제도 없고 남편, 남편 부모님, 남편 조상님에 대한 이야기하는 분위기에 맞추려다 보니 결국 불안을 더 키우는 자리로 변해버렸다. 처음 엄마들의 모임에 나갔던 날 이후로 나는 다시는 초대받을 수 없었고, 초대받더라도 다시는 안가고 싶었다.
그 뒤 나는 경험 많은 선배 부모들과 교류하면서 불안은 조금씩 극복될 수 있었는데, 손주 손녀를 하원시키는 할머니, 부모가 퇴근하기 전까지 자녀들을 돌봐주시는 돌봄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르신들과 하원후 일과를 함께 하였다. 이미 자녀를 키워오셨던 분들로부터 지금의 최신 육아 트렌드와는 많이 다르지만 나의 방식이 그분들로부터 지지받고, 틀리지 않았음을 인정받게 되면서 불안을 떨칠 수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서로 교류하며 공감하고 정보를 나누지만, 그 과정에서 오히려 좁은 시야에 갇히기도 한다. 누군가 “옆에서 달리는 사람이 있어서 나도 달린다”라고 말했듯, 우리는 종종 남들이 달리기에 나도 따라 달리며 불안을 더 키우는것 같다.
“우리 아이가 말이 늦는데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애가 잘 안 먹는데 키가 안 크면 어떻게 하지?”
“아이가 친구 사귀기를 힘들어하는데 괜찮을까?”
“다들 학원 가는데 우리 아이만 학원 안 보내면 성취도가 떨어지는 건 아닐까?”
이런 불안은 결국 비교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사회가 제시하는 기준에서 벗어났다고 인식할 때, 그 불안은 더 선명해진다.
이 불안을 이겨내는 방법은 다름을 받아들이는 자세다. 네 자녀를 키우면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을 받아들일 스 있었는데, 한 뱃속에서 태어나 넷 다 비슷하게 생겨도 하나같이 다 다르다는 점이다. 성격, 성향, 식성, 취향 모두 다르며, 각자가 잘하는 것도 다 다르다.
말이 빠른 아이도 있고, 느린 아이도 있으며, 지금은 크지 않아도 특정 시점에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아이, 지금은 크지만 성장이 멈추는 아이도 있다. 많은 친구와 활달하게 지내는 아이, 소수와 깊은 관계를 맺는 아이, 학원을 가야만 공부하는 아이, 학원을 가지 않아도 스스로 공부하는 아이도 있다. 결국, 평균을 기준으로 불안을 키우기보다 아이 하나하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들도 다르지만, 부모인 나 역시 다른 부모들과 자신을 표현하는 방식이 다 다르다. 누군가는 헤어스타일로 자신을 꾸미고, 누군가는 희소한 소지품(명품, 한정판 등)으로 차별화를 두며, 또 어떤 이는 독특한 음악 취향이나 영화 취향을 통해 자기만의 색깔을 만들어간다.
마찬가지로 삶의 방식과 육아에도 정답은 없다. 평균이라는 숫자가 모든 것을 대변할 수 없으며, 다름을 인정할 때 우리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겠지만, 우리가 주체적으로 선택하고 삶의 방향을 정할 때, 그 불안은 더 이상 우리를 옭아매지 못할 것이다.
불안을 키우는 것은 비교였고, 불안을 이기는 것은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