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되는 방법을 모른 채 부모가 되었다

남자 전업주부의 불안 마주하기 (3)

by 문현준 monkey

처음 아이를 안았을 때, 나는 막막했다.


어떻게 키워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빠가 되고, 결혼을 했고(?) 처음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야 하는 화장실에서 반지하 자취방 한가운데에 이동식 아기 욕조를 가져오는 일이었다. 그리고 첫째를 씻기는 아내를 위해 조심스레 아이를 잡아주는 것밖에 없었다.


그런데 정작 더 막막했던 건, 쏟아지는 정보들이었다.

“이 시기엔 이걸 해야 해.”

“저렇게 하면 안 돼.”

수많은 조언이 들려왔고, 나는 뭐라도 따라야 할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따라가면 따라갈수록 불안했다.


부모는 누구에게 배워야 하는가?


부모가 되기 전에는, 누구도 ‘어떻게 부모가 되어야 하는지’ 가르쳐 주지 않는다. 막상 부모가 되고 나서야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내가 부모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던가?’

그런데 이 질문을 던지는 순간, 우리는 자연스럽게 ‘전문가’의 조언을 찾기 시작한다.

• 육아서는 넘쳐난다.
• 소셜미디어에는 수많은 육아 전문가들이 존재한다.
• 맘카페에는 육아관련 정보들이 가득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정보가 많아질수록 부모들은 더 불안해진다. 그리고 이전까지 자기 삶을 소신껏 살아온 사람들마저도 육아를 시작하면 불안에 휩싸인다. 왜일까?


부모는 본래 자신이 경험한 것과 자신의 환경을 바탕으로 아이를 키우는 존재였다. 가족, 이웃, 친척들의 도움을 받으며 각자의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육아 방식을 익혔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부모가 되는 법을 ‘전문가’에게 배운다.

• 전문가들의 조언은 개개인의 환경을 고려하기보다는, 전문가가 전제하는 ‘평균적인 환경’을 기준으로 한 다.
• 그리고 그 대상 역시 ‘평균적인 아이’를 가정한 조언들이다.
• 즉, 한 명의 특정한 아이를 위한 조언이 아니라, 다수를 위한 ‘표준화된 방법’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질문해야 한다.


우리 아이는 ‘평균적인 아이’인가?
우리가 사는 환경은 ‘평균적인 환경’인가?


표준화된 육아가 만드는 불안


우리는 부모가 되는 순간부터 ‘표준화된 육아’를 강요받는다.

• “100일이 결정적인 시기입니다.”
• “1세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입니다.”
• “2세가 영아 발달의 골든타임입니다.”
• “3세 이전에 모든 것이 결정됩니다.”
• “4세 때 사회성이 완성됩니다.”
• “5세까지 기초 학습 습관을 만들어야 합니다.”
• “6세에는 한글 떼기가 필수입니다.”
• “7세가 초등학교 적응의 분기점입니다.”
• “8세 때 수학의 기초를 다져야 합니다.”
• “9세까지 독서 습관을 완성해야 합니다.”
• “10세가 되면 학습 격차가 벌어집니다.”

어떤 시기든 ‘이때가 중요하다’는 말이 반복된다. 문제는 이 기준들이 ‘평균적인 아이’를 가정하고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내 아이는 다르다.

• 모든 아이가 같은 속도로 자라는 것이 아니다.
• 모든 가정이 같은 환경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남들 다 하는 것’을 따라가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그리고 그 불안은 점점 더 깊어진다.


“다른 아이들은 다 유치원에서 영어를 배우는데, 우리 아이만 안 배워도 괜찮을까?”

“다들 5세부터 한글을 가르치는데, 우리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7세 때 학습 습관을 안 잡아주면 초등학교 가서 힘들어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쌓이면 결국 ‘내가 아이를 잘 키우고 있는 걸까?’라는 의심으로 이어진다. 부모는 점점 자기 육아 방식에 대한 신뢰를 잃는다. 그리고 육아의 주도권을 전문가에게 넘겨주기 시작한다.



아이의 개성은 어디로 가는가?


표준화된 육아는 부모의 신뢰를 약화시킬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개성까지 억누른다. 네 자녀를 키워온 경험에서 확신하는 것은 ‘비슷하게 다 닮은 넷이라도, 하나같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취향, 성격, 식성, 학습 방식까지 모두 다르다.


“6세까지는 한글 떼야 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었을 때, 나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성미산 마을에 살면서 취학 전 학업 부담이 없는 환경 속에서 한글을 가르치려는 노력을 등한시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 환경에서 우리 첫째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한글을 읽고 쓸 수 있었다. 둘째는 첫째보다 조금 빨리 7살 즈음 가능했고, 셋째는 다섯 살에 가능했다. 넷째는 아마도 더 빠를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학업 성취보다는 아이들이 각자 즐거워하는 것을 존중하며 양육하고 있다. 첫째는 ‘사람들과 신뢰를 쌓는 방법’을, 둘째는 ‘그림 그리고 만들기하는 것’을, 셋째는 ‘노래 부르고 몸 쓰는 것’을 좋아한다. 넷째는 아직 연구 중이다.


하지만 ‘다들 5세까지 한글을 뗀다’는 기준이 생기면, 아이의 관심사는 무시된다. 결국 부모도 아이도 스트레스를 받으며 억지로 공부를 하게 된다. 그리고 아이는 점점 ‘배우는 것’ 자체를 부담스럽게 느끼게 된다.

이런 식으로 ‘표준화된 육아’는 아이들이 자기 방식으로 성장할 기회를 빼앗는다.



부모의 자리는 어디인가?


이제 질문해야 한다.

우리는 육아의 주도권을 누구에게 넘겨주고 있는가?
육아의 주체는 전문가인가, 부모인가?


나는 네 아이의 주양육자로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실험하고 있다. 전문가의 조언보다, 내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며 직접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믿는다.

• 평균을 거부하고,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본다.
• 남들이 ‘당연하다’고 하는 것들을 의심한다.
• 부모도 불안을 느낄 수 있지만, 불안을 마주하며 성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부모가 되는 방법은 책에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부모가 되면서 배워야 하는 것 아닐까?

부모는 누군가의 지침을 따르는 사람이 아니라, 자기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존재 아닐까?


나는 아직도 배우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나는 더 이상 남들이 정한 기준에 휘둘리지 않는다. 내 아이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우리 가족만의 방식과 시간안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나는 우리 아이들도 그렇게 자기만의 길을 찾으며(x) 만들며(o) 자랐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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