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좀머 씨

작은 일상에 떠오른 생각

by 구름 의자

<좀머 씨 이야기>에서 좀머 씨는 어느 누구와도 교류하거나 관계를 맺지 않고 평생 불안과 강박에 쫓기듯 살다가 조용히 생을 마감한 인물이다. 어린 시절 나무타기를 좋아하는 주인공 소년은 그런 좀머 씨를 보며 성장한다. 소년 역시 사람들에게서 이해받지 못하는 내면이 있다. 불안하고 혼란스러운 마음, 사람들로부터 도망치고 싶은 마음이다.


돌이켜 보면 유년기의 거의 모든 시절을 나는 나무 위에서 보냈던 것 같다.

빵도 먹고, 책도 보고, 글씨도 쓰고, 잠도 나무 위에서 잤다.

나무 위는 늘 조용하였으며 사람들의 방해를 받지 않았다.

듣기 싫은 엄마의 잔소리도 없었고,

형들의 심부름 명령도 그 위까지는 전달되지 않았으며,

단지 바람이 부는 소리와 잎사귀들이 바스락거리던 소리,

나무줄기가 약간 삐걱거리던 소리……

그리고 먼 곳까지 훤히 내다볼 수 있는

탁 트인 시야가 있을 뿐이었다.

《좀머 씨 이야기(열린책들) : 13-14》


마을에서 좀머 아저씨의 이름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좀머 아저씨네가 어디에서 왔는지도 사람들은 몰랐다.

언젠가 그들은 -아줌마는 버스를 타고 아저씨는 걸어서-왔다.

그리고 그 후부터 줄곧 그곳에서 살았다.

자식도 없었고, 친척도 없었으며, 그들을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다.

《좀머 씨 이야기(열린책들) : 17-18》


좀머 씨 주변을 둘러싼 벽을 허물 수만 있었다면, 단 한 번의 소통이라도 했었더라면 어땠을까. 소설의 바깥에 있는 나로서는 슬프고 막막하고 안타까웠다. 내가 좀머 씨의 마을에 살고 있었다면 무언가 달랐을까. 과연 주인공처럼 좀머 씨를 그렇게라도 관찰하고 떠올렸을까.


문을 두드려서 대답이 없으면 몇 번이고 두드려서 문을 열고 대화를 나눴던 시절이 있었다. 얼굴을 마주보고 눈빛을 주고받으며 손을 잡기도 하고 음식을 나누기도 했다. 하지만 요즘엔 문을 두드리는 것도 한두 번이거나 혹은 아예 두드리는 일조차 없다. 나와 내 가족 챙기기에도 바쁜 시대에 점점 친구와 이웃들 챙길 여유가 없어지는 것 같다. 안부는 점점 뜸해지고 생일, 명절, 기념일들을 챙기는 인간관계의 범위가 줄어들고 있다. 대화는 줄어들고 챗 GPT를 활용하여 궁금증과 고민을 해결하는 일이 많아진다. 바쁘게 자신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멈추거나 주변을 잘 둘러보지 않는다. 각자의 휴대폰과 각자의 일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벽을 하나씩 지니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주변에도 좀머 씨와 같은 사람이 어딘가에 있지 않을까. 환한 카메라의 조명과 주목을 받는 인기인들을 향해 박수와 환호로 열광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좀머 씨는 발견하지 못할 수도 있다. 죽지 못해 겨우 사는 심정으로 우울의 안개에 휩싸인 사람들이 있고, 어느 누구도 멈춰서 쳐다봐주지 않고 빛이 사라진 곳에서 쓸쓸히 사라져가는 사람들도 있다.


죽을 만큼 힘들지만 어떻게든 살려고 몸부림치는 그들을 보면 삶의 위태위태함이 느껴진다. 질병에 맞서 홀로 싸워나가는 사람들, 우울과 외로움에 중독된 듯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분명 같은 땅에 서 있지만 흔들리고 갈라지는 그들의 땅의 진동이 느껴진다. 보이지 않는 울타리 너머의 그들을 향해 한번쯤 문을 두드리고 손을 내밀고 싶다. 그들은 곧 내 가족이거나 친구일 수 있고, 과거의 나이거나 미래의 나일 수도 있다. 누구에게나 아프지만 피워야 할 꽃이 있고 풍겨야 할 향기와 최선을 다해 열정적으로 살아갈 삶의 순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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