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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imnogoodnw Mar 24. 2022

50만 번 욕먹은 친구에게

 ‘배스킨라빈스 31’이라는 술 게임이 있다. 인원수에 관계없이, 한 사람씩 돌아가며 1부터 연속된 자연수를 최대 3개까지 말한다. 본인 차례에 31을 말하는 사람은 술을 한 잔 들이켜야 한다. 다른 사람을 위해 일부러 31을 말하는 경우도 있으나(가령 미팅 자리에서 이 게임을 하면, 마음에 드는 누군가를 위해 본인을 희생하는 사람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보통의 경우에는 30을 말할 수 있는 사람에게 패자를 결정짓는 권리가 주어진다.


인원수에 관계없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이 게임은 3명 이상이 함께 해야 그 묘미가 있다. 둘이서 이 게임을 하게 되면, ‘필승 전략’이 존재해 더 이상 게임이라고 말하기 어렵다. 거꾸로 생각해보면 아주 쉽게 필승 전략을 구할 수 있다. 30을 말하면 이기니까, 어떤 수를 말해야 30을 말할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된다.

상대방과 내가 한 차례씩 본인이 원하는 만큼의 수를 부르는 것을 ‘한 턴’이라고 해보자. 연속된 숫자는 세 개까지 말할 수 있고, 참여 인원은 둘 밖에 없으니까, 한 턴에 연속된 숫자가 2~6개까지 나올 수 있다. 상대방이 몇 개의 숫자를 부르든지 내 차례에 부르는 수의 개수를 제어하여 한 턴에 나오는 연속된 숫자를 4개로 고정시킬 수 있다. 그러니까 내가 30을 말하고 싶다면, 26을 말하면 된다. 이런 식으로 계속 생각해보면, 결국 처음에 2를 말하는 사람이 언제나 승리하게 된다.


하지만 인원 수가 3인 이상이 되면, 한 턴에 나오는 연속된 숫자를 나 혼자서 제어할 수는 없다. 술을 먹이고 싶은 사람을 제외한 나머지와 담합하는 게 아닌 이상, 게임의 필승 전략은 사라진다. 이렇게 단순한 게임에도 제어 불가능한 요소가 하나라도 포함되면, ‘정답’따위는 사라진다. 아주 복잡한, 여러 변수들을 가진 수학 문제도 주어진 식에 의해서, 혹은 공리계에 의해서 변수들을 내 마음대로 ‘제약’할 수 있기 때문에 정답이 있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사람은, 특히 우리나라 사람은 조금 슬프게도 제약 가능 요소와 제약 불가능 요소를 구분하지 못한 채 매사에 정답이 있는 것처럼 행동할 때가 많다.


친구가 얼마 전에 본인의 골프 스윙을 유튜브에 올렸다.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은 것인지, 그 짧은 영상은 50만 회를 넘는 조회수를 기록했고, 댓글은 수백 개가 달렸다. 아주 가끔 응원의 글을 남기는 사람도 있지만, 친구의 스윙에 대해 지적하는 글이 대다수이다. 친구의 스윙은 사실 ‘정석적인 스윙’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아니, 솔직히 말해 스윙의 관점에선 ‘나쁜 스윙'이다. 공을 깎아 쳐 사용하는 힘에 비해 거리를 손해보고, 방향성에도 아주 문제가 많다.


골프는 ‘스윙 콘테스트’가 아니다. 어떤 방식으로 공을 치든, 최소한의 시도로 공을 홀 컵에 집어넣을 수만 있으면 그 사람은 최선의 골프를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골프는 자유형’이라고 하지 않는 가. 프로는 일관된 슬라이스만으로도 언더파를 칠 수 있다고 한다.


골프를 쳐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제어 불가능한 요소가 너무 많다. 비단 라운딩을 가지 않더라도, 연습장에서 앞사람이 너무 잘 치면 나도 모르게 힘이 들어가 궤도가 틀어진다. 뒷자리에 미녀가 연습하고 있으면, 아이언을 연습하다가도 드라이버를 꺼내 들어야 한다. 연습장만 해도 이런데, 실제 라운딩은 말할 것도 없다. 그저 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31을 피하고자 노력해야 한다. 그 누구에게도, 다른 사람에게 왜 숫자를 두 개 말하지 않고 세 개 말했냐고 따질 권리는 없다.


친구에게 한 마디 해야겠다. '아니, 김 사장, 아 그게 아니라고. 휘두르라니까? 아니 아 손 좀 쓰지 말라고. 아 답답해 그냥 니 멋대로 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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