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imnogoodnw Feb 13. 2021

잡설

2020년 5월 어느 날

나 2주에 한 편씩 글을 쓸 거야-라고 많은 사람들에게 다짐하듯 말했지만, 워낙 단조로운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글감도 없던 데다가, 창작(창작의 범주를 아주 넓게 잡는다면)의 고통을 이겨내기에는 아직 내가 너무 모자란 사람이었나 보다. 어찌 되었든, 아주 오랜만에 글을 하나 써보려고 한다.


다른 사람들은 코로나 때문에 사람도 못 만나고 집에만 틀어박혀있어야 한다며 불평들을 했겠지만, 나에게는 그저 다를 것이 없는 지난 2개월여였다. 코로나 덕분에 출근시간이 30분 빨라진 것에 대해 소소한(?) 투정을 늘어놓곤 했지만, 언제나 그랬듯 집-회사만을 반복 해대며 열심히 챗바퀴를 달렸다.


이런 은둔 외톨이에 가까운 생활 속에서, 내게 아주 큰 힘이 되는 것은 유튜브 속의 영상들이다. 만료 직전의 인터넷 강의를 보던 습관을 버리지 못한 나는 모든 영상을 1.75배속으로 틀어놓고 다다다다 랩 하듯 말하는 영상 속 사람들을 관람한다. 누워서 유튜브를 보는 내게 동생은 이거 알아듣긴 하냐며 한마디 하지만, 그래도 나름대로는 이 1.75배속 라이프를 즐기며 살아간다.


대부분의 영상 속에서 나는 현실과 뒤틀린 시간을 살지만, 음악을 들을 때만큼은 정상 배속으로 영상을 틀어 놓는다. 뭐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조만 바뀌어도 분위기가 확확 바뀌는 음악을 배속으로 듣는단 것은 아주 파괴적인 행위니까. 물론 다른 장르의 영상들도 1.75배속으로 즐기는 것은 파괴적 행위라고 말한다면 할 말은 없지만, 다른 건 몰라도 음악만큼은 본연의 모습을 그대로 즐기고 싶다.


라이브 무대, TV 프로그램 속 무대, 뮤지컬 넘버, 클래식에 이르기까지 가리지 않고 하루 종일 음악을 들어댄다. 개중에는 뇌리에 깊게 남아 수십, 수백 번을 반복한 영상도 있다. 이승환 씨가 부른 '어떻게 사랑이 그래요'의 라이브 영상, 박은태 씨가 부른 '겟세마네'의 무대 영상 등은 관객이 언제쯤 호응하는지, 이 순간 가수/연주자는 어떤 표정을 짓고 있었는지까지도 기억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예전에 한참 흥행했던 음악 예능인 '히든 싱어'에 푹 빠져있다. 가수 한 명과 그의 모창자들이 나와 통 안에 가려진 채 노래를 부르고 목소리만으로 진짜 가수를 찾아낸다. 가수의 실력도 정말 대단하지만, 모창자들 중에는 진짜 가수와 정말 흡사한 소리를 나는 사람들이 있어 감탄을 금치 못하게 만든다. 그래도 듣는 귀는 남들보다 살짝 뛰어나다 자부하는 편인데, 가끔은 프로그램을 보며 완전히 헛다리 짚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프로그램의 특성상 '진짜'라는 말이 자주 등장한다. '진짜 ~~ 씨는 누굴까요?' 전현무 씨의 말은 화면 안과 밖의 모두를 긴장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정확한 자신의 안목에 주먹을 불끈 쥐고, 누군가는 동료를/우상을 알아보지 못했단 자책에 깊은 한숨을 내뱉는다.


참으로 신기한 것은, 물론 이 프로그램이 '진짜' 가수를 찾는 것이 주목적이긴 하지만, 모든 출연자가 '진짜' 자기 자신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비록 모든 출연자가 특정 가수의 목소리를 따라 하고 있지만, 자기 자신을 온전히 숨기지는 못한다. 누군가는 어떤 음을 낼 때 살짝 음이탈을 내기도 하고, 누군가는 특정 음역대에서 굉장히 두꺼운 소리를 낸다. 아무리 누군가를 따라 하려 해도, 고유의 소리는 감추지 못한다. 가끔은 진짜 가수의 목소리보다 훨씬 매력적으로 들리는 진짜 자기 자신을 보여주는 참가자들이 있어 이 프로그램이 더욱 재미있다.


나도,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모두 '진짜'를 가지고 살아간다. 다만 대다수의 사람에게는 삶이라는 것이 그저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참으로 어려워서 진짜 나 따위는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뿐. 그래도 혹시, 아주 가끔 나를 마주할 수 있다면 조금은 쑥스럽지만 똑바로 마주해보자. 혹시 모르지. 진짜 가수보다 더 매력적인 목소리를 지닌 사람이 당신일지도.

작가의 이전글 재능충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