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사랑하는 '척'했다.

가정폭력 생존자의 절박한 자애

by 가람

주변에서 생각하는 강다솜이란 외모만 보면 흐트러짐이 없어 보이는 사람. 생활 습관이 완벽할 것 같아 어느 땐 차가워 보이기도 한 사람. 이야기를 하면 할수록 빈틈이 많고 사랑이 많음을 알게 되는 사람. 내면이 단단하며 밝고 사회성 좋은, 배려심 깊고 솔직한 사람. 그중 가장 많이 듣는 얘기는 내면이 단단하다는 말이다.


무른 내면을 가진 채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다. 내가 나인 것이 싫던 시절이 길었다.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한 삶을 쌓아왔다. 그런 삶을 살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가끔 마주쳤다. 그들은 내 마음을 관통하는듯한 따듯한 눈빛으로 날 바라봤다. 그 따듯함에 녹아버릴 듯했지만 비참한 마음에 울던 날들이 많았다. 그들은 본인을 사랑하는 것을 넘어 타인을 포용하는 따스함을 가졌었다.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단단한 내면을 가지고 싶었다. 타인을 사랑하고 싶었다. 스스로를 사랑해야 타인을 사랑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자애를 배운 적이 없었기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암흑 속을 더듬다 찾아낸 첫 번째 방법은 그들처럼 스스로를 사랑하는 것이 어렵다면, '척'을 하는 것이었다. 타인에게 나를 사랑함을 얘기하는 것. 거짓이었지만 호언장담을 반복했다. 거짓임을 남들이 다 알진 않을까, 들키진 않을까 조마조마했다. 그런 마음이 들수록 스스로에게 사랑한다고 더욱 들려줬다. 스스로를 사랑받을만한 사람임을 설득했다. 그 시점부터 나를 이미 스스로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중 몇 사람들은 자애에 대해 묻곤 했다.

"어떻게 스스로를 사랑하시게 됐나요?"

"사실 아직 온전히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해요."

이어 또다시 거짓 호언장담을 덧붙였다.

"100중 98 정도는 사랑해요."

"정말요? 의외예요. 이미 스스로를 아주 많이 사랑하는 사람으로 보여요. 그리고 충분히 사랑할만한 사람이고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의 사랑과 응원을 받았다. 조금씩 내가 마음에 들기 시작했다. 어제보다 오늘 조금 더 편안해졌다. 내일이 기대됐다.


나를 살리고 싶은 만큼 쓰고 읽었다. 특히 자기 계발서, 심리학 서적, 에세이를 읽었다. 나처럼 스스로가 버겁던 사람들이 사랑을 나누게 된 생존기 같았다. 읽고 쓸수록 내 안에 부유하던 어둠들이 가정폭력이란 한 획으로 관통되는 접점이 보였다. 따돌림, 자기부정, 우울, 부정적 사고, 타인 불신+집착형 불안정애착, 직장 공황장애 등등. 모든 근원은 가정폭력이었다. 예전이었다면 그 큰 한 획에 짓눌렸거나, 원통해하는 방법밖에 몰랐을 나였다. 스스로를 꽤 사랑하게 된 시점에 그 획을 보자 조금은 기뻤다. 이 한 획을 정리하면 더 이상 아플 부분이 없었다. 어쩌면 기대되고 설레기도 한 것 같다. 어둠을 더 이상 아프게만 보지 않았다. 이 또한 뛰어넘으리란 자기 확신을 할 수 있게 됐다. 한 획을 정리하고자 심리상담을 시작했다. 잊고 지내던 기억들이 튀어나왔다. 풀어낼 마음들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겹겹이 쌓여있었다. 더딜지라도 결국 해낼 것이다.


책을 읽다 마주한 문구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마음이 깃든다.'에 설득됐다. 꾸준한 운동 습관을 들였다. 불필요한 정도의 부정적 사고가 생길 때면 밖으로 나가 걸었다. 햇빛을 쬐고 바람을 맞으면 무겁던 생각에서 멀어질 수 있었다. 밤보다 낮에 깨어있는 습관을 들였다. 규칙적인 수면 패턴을 만들었다. 움직이는 명상인 요가를 시작했다. 자신 외 잡념이 사라진 스스로와의 대화 시간이 늘었다. 스트레스성 폭식과 자해성 매운 음식을 멀리했다. 날 위한 음식을 먹고 싶은 만큼만 먹었다.


안쓰럽다고 생각되던 모든 날들이 이유와 목적이 존재했음을 지금은 안다. 긴 시절 내게 큰 상처였음을 스스로에게 숨기지 않고 인정한다. 이제는 나를 무서운 곳에 내버려 두지 않는다. 아직 여린 면이 많은 나를 보호하기 위해, 미리 단단한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내가 있다. 괴로운 마음이 들 때면 그 마음의 근원을 마주 본다. 그 또한 잘 넘기리라 확신하는 내가 있다. 이러한 하루들을 쌓아 올리다 보니 내가 되고 싶던 그들의 모습이 내게 보이기 시작했다. 스스로를 사랑하고 위하는 사람. 타인을 위하고 사랑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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