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신부님! 제가 지난번 출국 때도 뵈었는데, 직업란에까지 꼭 '님' 자를 붙여야 쓰겠습니까?"
그러자 신부가 같잖다는 듯 받아쳤다.
"아니, 그러면 스님들은 직업난에 그냥 '스'라고 씁디까?"
이는 ‘단어’를 이용한 개그의 일종으로서 옛날에 이 우스갯소리를 접했을 땐 그저 ‘풒’ 하고 웃음을 터뜨리며 “야, 누가 만들었는지 참 기똥차네.”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번에 브런치에 올리려고 정리를 하다보니 이 개그의 핵심 포인트인 우리말 ‘님’ 자가 눈에 들어오면서 그동안 한 번도 주의를 기울인 적 없는 이름, 신분/직업, 혈연 관계에 붙는 존칭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고 내친 김에 다른 나라와의 차이에 대해서도 한번 정리해 보았다.
이름
영어:
이름 앞에 붙이는 존칭어는 하나뿐이다. 다만 성별에 따라, 결혼 상태에 따라 ‘Mister’, ‘Miss’, ‘Misses’로 구분해 부른다.
일본어:
이름 뒤에 상(さん)만 붙이면 되고 특별한 경우, 극존칭으로 사마(さま)를 쓴다.
(예: 욘사마, 배용준)
한국어:
인칭 뒤에 붙이는 존칭어에는 한자어 ‘씨(氏)’와 우리말 ‘님’이 있다.
신분이나 직함
영어:
Teacher, Professor, Manager, Director, President등 존칭어를 따로 붙이지 않는다.
일본어:
센세이(선생), 교오주(교수), 부쬬오(부장), 카쬬오(과장)등 직함이나 직업 뒤에 존칭어는 붙이지 않는데, 예외적으로 의사에 대해서만 오이샤상('お医者さん) 혹은 센세이(先生)라 붙여 경의를 표한다.
한국어:
선생님, 교수님, 부장님 등, ‘님’이란 존칭어를 붙이되 선생씨, 교수씨, 부장씨라고는 안 쓴다.
우리말보다 한자어를 더 숭상해 온 우리네 풍토에 비추어 보면 거 참 이상타.
혈연 관계
영어:
Father, Mother, Brother, Sister와 같이 촌칭어를 붙이지 않는다.
일본어:
영어와 달리 오또오상(아버지), 오까아상(어머니), (오)니상(오빠), (오)네상(누나)등 ‘상’이란 존칭어를 붙인다.
한국어:
아버지, 어머니, 오빠, 누나로 불러 촌칭어를 붙이지 않는다.
다만 피가 섞이지 않은 사위, 며느리, 타인은 마지막 자를 빼고 그 자리에 '님' 자를 붙혀 아버님, 어머님, 할아버님, 할머님, 누님이라 하여 존칭어로 부르되 오빠는 오라버니라 한다.
이것도 참 이상타. 거 왜 아버지님이나 아버지씨로 안 하고 단어까지 파괴해가면서 님 자를 갖다 붙였을까? 또한 아버님, 어머님, 누님 이라 하면서 오빠는 왜 '오님'이라 안 하고 오라버니라고 부르는지 알다가도 모르겠다.
성직자에 관한 호칭
영어:
목사는 Reverend, Pastor, Priest,Preacher 등 다양한 호칭이 있는 반면 신부는 대개 Priest로 부르고 승려는 Monk로 칭한다. 다만 신부의 경우, 대부 제도가 있어 그런지 일반적으로 'Father' 혹은 'Padre'라 부른다.
일본어:
목사에게는 센세이를 붙여 보꾸시 센세이(牧師先生), 신부에게는 상이나 사마를 붙여 신뿌상(神父さん), 신뿌사마(神父様)라 부르고, 승려에게는 앞 뒤로 오와 상을 붙여 오보오상(お坊さん)이란 경칭을 사용한다.
한국어:
우리말의 경우 목사와 신부를 부를 때는 목사님, 신부님이라 하면서 승려에게는 승려님이라 하지 않고 스님이라 부른다.
직업군으로서의 객관적 명칭으로는 기독교의 경우 목사로, 카톨릭의 경우 신부로 칭하는데, 유독 불교만 승려 대신 '스님'이란 '님'자가 붙은 말을 쓰니 위와 같은 개그가 나올만도 하다.
마지막으로 우리말 비하어인 ‘놈’과 ‘년’을 보자.
이 말은 쌍놈, 하인 놈, 백정 놈 등, 주로 비천한 신분 뒤에 붙이는데 이의 확장성은 무궁무진하여 기분 나쁘면 온갖 데 다 갖다 붙일 수 있다.
"더러운 놈, 미친놈, 지랄 같은 놈, 화냥년" 하다가, 급기야는 "선생놈, 교수 놈, 부장 놈, 사장 놈" 하다가, 나아가서는 "목사 놈, 신부 놈, 중놈"까지 간다.
일본어에도 이와 비슷한 의미의 야쯔(やつ)와 야로오( 野郞,やろう)가 있으나 우리처럼 그렇게 심하게 아무에게나 쓰진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