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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02 때가 되면 때가 온다

낙심한 이들에게 바치는 글

by 한우물


다소 창피한 이야기를 하나 하겠습니다.

제가 지인을 통해 <브런치>를 알고 여기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건 작년 2월이었습니다.


그해 4월, <교보문고 스토리공모전>에서 문학작품 공모전 사상 최대규모인 1억 원의 상금(일등 상금 5,000만 원)을 내걸고 소설과 동화를 모집한다는 방이 붙었습니다.


내용을 살펴보니 이 공모전의 의도는 분명했습니다.

요즈음 한창 K-드라마, K-무비가 넷플릭스를 타고 세계적인 인기를 끌자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기 좋은 새롭고 참신한 스토리를 찾고자 함이었습니다.


나는 무릎을 쳤지요.

”그래, 바로 이거야! 나의 자전적 소설, 「보조기」야말로 이런 목적에 딱 맞아떨어지는 소재 아니갔어? “

내 인생을 자서전이 아닌, 소설 형태로 쓰기 시작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였습니다.


그 방을 본 후, 부지런히 써서 응모 마감날인 6월 1일에 투고했지요. 그리고 그 후 3개월간 기대에 한껏 부풀었었는데 수상작 명단에 「보조기」란 이름은 없었습니다.

완전 실망이었습니다. 식구들 앞에서 큰소리 빵빵 쳐놨다가 개쪽 다 팔았지요.


그러다가 10월이 되어 제10회 브런치 공모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여기는 교보와 달리 모든 장르의 다양한 글을 모집했고 그 중심엔 에세이가 있었습니다. 게다가 당선작이 50편이나 되니 한 놈이라도 붙겠거니 했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Brunch Book으로 잘 갈고닦은 나의 용맹한 병사들을 모두 출정시켰습니다.

또다시 기다림이란 인고의 시간이 시작되었고 드디어 당선작들이 발표되었는데 믿었던 나의 용사들은 모조리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때 받은 첫 느낌은 ‘뭐야? 이거!’ 하는 황당함이었습니다.

첫 응모 실패 후, 혹시 몰라서 이번에는 아이들에게 응모했단 말도 안 했습니다.

며칠간 아내에게도 아직 결과 발표 안 나왔다고 얼버무리다 드디어 이실직고했습니다.


"아무래도 당신은 작가로 이름 떨치기는 글렀나 보오. 그러니 꼭두새벽부터 책상에 앉아 눈 혹사시키지 말고, 마~ 건강이나 잘 돌보고 의사 일이나 열심히 하소. 에그 츳츳."


자존심이 팍 상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내가 이만한 일로 물러설 것 같소?

당신도 알다시피 내가 마음먹고 하는 일 치고 쉽게 풀리는 것 봤소?

꼬이고 꼬이고, 넘어지고 넘어지고...


하지만 나는 한번 물었다 하면 끝장 볼 때까지 안 놓는 사람인 것 알잖소?

그러니 당신도 나한테 잘 못 물렸다가 이날 이때까지 도망도 못 가고 붙어사는 거고.

책 두권 써서 별 빛 못 보고, 응모전에 도전했다가 두 번 실패했으니 이제 마~ 성공할 일만 남았네 그려.ㅎㅎ"


그러면서 말했습니다.

"아직 하늘의 때가 이르지 않았나 보오. 하나님은 내 글이 보다 무르익기를 가다리는 모양이오. 그러니 너무 졸갑증 내지 마시라요."


말은 그리 했지만 기분은 참 찹잡했습니다. 내가 마음먹고 덤벼들어 못 이룬 게 없는데, 늘그막에 뭐 이런 꼴을 다 당하노 싶으니 자존심이 너무 상했습니다.


그래서 당선작들은 얼마나 대단하나 싶어 제목과 작가 사진을 대충 훑어보았습니다.

"개뿔, 특별할 것도 없네. 게다가 추천 글이라고 올라온다는 게 툭하면 직장 때려치우고 외국 여행이나 다니는 이야기, 밥 못 먹고 죽은 귀신이라도 있는지 밥집 이야기, 이혼이 무슨 자랑이라고 이혼식 어쩌고 저쩌고,"


작가들이 다들 젊었습디다. 심사위원들도 마찬가지 아니겠습니까.

그래, 이런 생각이 들었지요.

노친네들과 놀기 싫어서 노인정 대신 어린이 놀이터에 와 ”얘들아, 나랑 같이 놀자!“ 했다가 어린애들한테 손절당한 듯한 기분 말입니다.


'역시 여기는 나같은 사람이 놀 물이 아닌가 보다.'

'아무렴 어때! 이젠 상 욕심 따위 부리지 말고 글 쓰는 재미에만 빠져 살자.'


이러면서 2022년과 이별을 고하고 새해를 맞았습니다.

그런데 새해 벽두부터 낭보(朗報)가 날아들기 시작하지 않았겠습니까?


1월 2일, 브런치를 통해 「월간 에세이」란 에세이 전문 잡지사로부터 원고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00 월간 에세이.jpg

https://news.jtbc.co.kr/article/article.aspx?news_id=NB12058777


1월 3일, 이번에는 ‘대한민국 법원’ 홈페이지에 월간으로 발간되는 「법원 사람들」이란 웹진에서 원고 청탁이 들어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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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그들에게 물어봤지요. 나를 어떻게 알게 되었냐고.

그랬더니 에세이 잡지사 편집장은 브런치에 오른 글들을 서치 하다가 제 글이 눈에 띄어 살펴봤더니 전반적인 글 흐름이 자신들 분위기와 잘 맞는 것 같아 그랬다 하고,


웹진 사 측에선 2월호에 건강특집을 싣는데 저의 저서 「아무튼, 사는 동안 안 아프게」를 읽고 감명받아 이 책을 기반으로 한 글을 머리글로 싣는 게 좋겠다 싶어 연락해 왔다 했습니다.




이 일은 제게 하나의 큰 사건으로 다가왔습니다.

이제 세상이 나를 알아보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큰 사건이었습니다.

이제 고료(稿料)란 걸 받고 내 글을 게재하는 전문 글쟁이로 인정받았다는 점이 제겐 큰 사건이었습니다.


제가 1월 들어 브런치에 올리는 글이 뜸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2주에 한편씩 올리는 200자 원고지 15매 분량의 일간지 칼럼 2편에,

10매 분량의 에세이 한 편에,

25매 분량의 건강 관련 칼럼 한 편을 한 달 내에 쓰려니 쉽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브런치에 올리는 글보다는 몇 배나 신경 쓰이고 몇 배나 시간을 많이 잡아먹었고요.


제가 이 글을 올리는 것은 제 자랑하려고 하는 게 아닙니다.

40여 명 되는 저의 찐팬 글벗 여러분을 격려하기 위함입니다.


제가 브런치 공모전 결과를 훑어봤을 때 제 글벗 이름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중에는 저보다 훨씬 필력도 좋고 심오한 분들이 꽤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니, 이런 사람들까지 모조리 낙방하다니! 심사위원들, 눈이 삐었나 눈이 멀었나?“


제 기분이 그랬던 것처럼 다들 얼마나 존심 상하고 실망이 컸겠나 싶어 안타까운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글을 쓰게 된 겁니다.


저 같은 사람도 때가 되니 기회가 찾아오듯이 여러분도 묵묵히 최선을 다하고 있다 보면 분명 그때가 오리라 믿기 때문이지요.


이제 제가 좋아하는 말 하나 소개하고 끝맺겠습니다.


”오늘도 기회의 여신은 준비된 자를 찾아 헤맨다.”


"자, 다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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