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대학에 입학한 나영에게 제일 실감 난 단어는 ‘해방’이었다.
하나의 목표를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오면서 억눌러왔던 욕구들.
장애인이란 굴레 안에서 남들 다 하는 것 옳게 해보지도 못하고 독서라는 간접경험으로 만족해야 했던 그는 이제 그 틀을 깨고 싶었다.
'좋은 경험이든 나쁜 경험이든 내가 직접 부딪혀봐야 인생이 어떤 것인지 삶이란 게 어떤 맛인지 제대로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앞으로 본과에 올라가면 그때는 지금까지 해 온 것보다 더 지독한 공부와 씨름해야 한다. 이 예과 2년이야말로 내 인생에서 가장 자유로운 황금 같은 시간이다. 이참에 그동안 못 해봤던 것, 정말 하고 싶었던 것 원도 한도 없이 한번 해보자.'
대학 입학과 동시에 주민등록증이란 마패까지 손에 넣게 된 나영은 그가 어딜 가서 무얼 하건 거칠 게 없었다. 담배를 피우고, 술집에 다녀도 그 마패만 있으면 다 통했다. 그는 타고난 '끼'를 발동시켜 통기타 듀엣팀을 만들었다. 그는 매력적인 목소리에, 음악적 재능에, 고교 1학년 때부터 치기 시작한 기타 실력에, 놀기 좋아하는 한량끼까지, 엔터테이너가 갖추어야 할 모든 요건을 완벽하게 갖추었다.
시절은 바야흐로 7080이 시작되던 때, 장발과 통기타는 대학가의 아이콘이 되었고 대학생이라면서 기타를 못 치면 "너 혹시 간첩 아냐?"라는 무시무시한 농담까지 들을 때였다. 기타 잘 치며 노래 잘 부르는 사람은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런 나영은 시대의 요구에 딱 맞아떨어지는 그런 학생이었다. 그가 결성한 듀엣 ‘보리어스(Borius)’는 부산 대학가의 가요 경연대회를 모조리 휩쓸었고 각종 행사에 게스트로 초대되었다.
부산의 양대 일간지 중 하나인 국제신보에서는 그 팀에 관한 소개 기사를 큼지막하게 실었고, MBC 부산 문화방송의 ‘이브닝쇼’라는 쇼 프로에서는 이제 갓 대학 1학년인 이들을 프로 가수들 사이에 슬그머니 끼워 넣어 출연시키기까지 했다.
나영은 명실상부한 대학가의 스타였다.
“야, 나영아, 우리 오늘 ‘에리칼포’ 공연 보러 안 갈래?”
“그래? 안 그래도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잘됐다야. 가자.”
그들은 18번 버스 종점인 장전동에서 버스를 타고 한 시간쯤 걸려 미아동에 있는 대학병원 앞에서 내렸다. 그날은 대부의대 가을 축제인 ‘행락제’ 기간 중이었다. 병원 정문을 지나 오른쪽으로 돌자 소나무 숲 속에 간호학과 학생들이 일일 찻집을 열고 있었고, 나무에는 그림 동아리 ’갈매기‘의 작품들이 백열등 아래서 방문객들의 시선을 유혹했다. 이를 지나 병원 구내 모서리에 있는 대학 강당으로 들어가니 공연 시작 40분 전인데도 좌석은 거의 차 있었다.
그들이 먼 길 마다치 않고 여기까지 온 것은 대부의대 록밴드 에리칼포(Erical Four, E4)의 공연을 보기 위해서였고 그것은 나영이 난생처음 보는 그룹사운드 공연이었다.
장내에 불이 꺼지고 ’둥둥둥둥‘ 하며 가슴을 울리는 베이스 기타 소리를 신호로 시그널 뮤직이 시작되면서 무대의 막이 서서히 옆으로 갈라지기 시작하자 그날의 주인공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무대의 제일 뒤쪽 중앙에는 솟아오른 또 하나의 단 위에서 드러머가 드럼을 두드리고 있었고, 그 앞줄에는 은은한 조명 아래 일정한 간격으로 늘어선 3명의 기타리스트가 기타를 연주하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T.V에서 보던 익숙한 장면이었다. 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또 한 명의 연주자를 본 나영은 깜짝 놀랐다.
시그널 뮤직이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에 무대 옆에서 갑자기 색소폰 주자가 나팔을 연주하며 무대로 등장하는 것 아닌가! 그는 키가 크고 굽슬굽슬한 장발에 코가 오뚝하니 높고 이국적으로 생긴 모습이 마치 가수 윤수일을 보는 듯했다. 그는 무대 맨 앞 중앙으로 나와 밝은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으며 멋들어지게 색소폰을 연주했다.
그 모습에 반한 나영의 입에선 "캬 죽이네, 죽여!"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당시의 그룹사운드는 별도의 싱어 파트 없이 기타리스트 세 명과 한 명의 드러머로 구성된 벤처스(Ventures)나 비틀스 같은 4인조 그룹이 주류였다. 그런데 그 틀을 깨고 색소폰 주자가 등장한 것이다. 그것도 아마추어 대학 보컬 팀에서!
학생이 색소폰을 들고 콘서트 무대 위에 오른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시절, 그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나영의 놀람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는 첫 곡의 연주가 끝나고 우레와 같은 박수를 받은 뒤 색소폰을 내려놓고는 무대 뒤쪽 중앙에 마련된 단 위로 훌쩍 뛰어올라 드러머 자리에 앉았다. (관객들의 눈이 온통 그에게 쏠린 사이, 첫 곡을 연주한 드러머는 이미 내려가고 없었다).
드럼 세트 앞에 앉은 그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드러머로 활약했는데 그의 드럼 솜씨는 색소폰보다 한 수 위였다. 지금껏 통기타 반주에 맑고 조용하고 애절한 노래만 주로 부르던 나영은 난생처음 접하는 그룹사운드의 강렬한 비트에 전율했다.
퍼스트 기타 주자의 현란한 연주 테크닉과 후지박스(fuse box)를 밟으며 애드리브(ad lib)를 넣을 때 나는 쇠를 가는 듯한 금속성 소리는 소름 끼치게 했고, 코드(code)만 잡고 적당한 강약을 섞어가며 리듬을 두드리는 세컨드 기타는 퍼스트와 베이스 기타 사이의 빈 공간을 메우며 연주의 흥을 돋우었다. 강력한 저주파수의 베이스 기타가 둥둥거릴 때마다 심장은 벌렁거리고, ‘두두다다 쿵 쾅 차르르~ 착” 하며 들려오는 드럼 소리는 인간의 원초적 본능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공연이 끝나고 전 멤버가 나와 무대인사를 하는 동안, 나영은 그 드러머를 가리키며 친구에게 말했다.
“저 사람이 아마추어라고? 그것도 의대생이라고? 에이, 말도 안 되는 소리! 저건 틀림없이 멤버 한 명이 부족해서 프로팀에서 임시로 빌려온 사람임에 틀림없어.”
음악을 잘 아는 나영으로서는 그가 의대생이라는 사실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연주 실력은 아마추어 수준을 훨씬 넘어섰기 때문이다.
무엇이든 의문이 생기면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영은 바로 다음 날부터 그의 신분에 대한 뒷조사에 착수했고 그 결과 그는 진짜 학생 맞았다.
- 대부의대 본과 1학년 엄 박자. 에리칼 포 3기 드러머. 악사 자격증 소지자에, 낙제 전과 2범에, 낙제 후 노는 기간에는 울산에 있는 한 나이트클럽 드러머로 활동 -
친구가 나영을 그 콘서트에 데리고 간 것은 나영의 활약상을 눈여겨보던 에리칼포 단원인 본과 선배의 지령에 의한 것이었는데, 그룹사운드의 또 다른 음악 세계와 드럼 주자 엄박자의 매력에 푹 빠진 나영은 그 선배의 의도대로 주저 없이 입단했다.
E4 4기로 들어온 멤버는 총 4명으로서, 구하지 못한 드러머 자리에 3기 드러머인 엄박자가 합세하였다. 구성 멤버들은 하나같이 음악성이 뛰어난 데다 지금껏 없던 전문 싱어까지 보강된 E4 4기는 그야말로 환상의 드림팀이 되었다.
이들은 첫 콘서트부터 주 활동기(main acting members)로 활약하기 시작했고 부산의 대학가 무대를 휩쓸었다. 이리하여 나영은 예과 2년 동안, 통기타 듀엣과 그룹사운드 메인 보컬 자리를 번갈아 가며 종횡무진 무대를 누비고 다녔다.
하지만, 그 열매는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