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한우물 Jan 24. 2024

강29 그리고 그 후

실전에피소드 05

내가 연단에서 내려오고 좌장의 폐회사가 있고난 뒤 행사는 막을 내렸다.

제1 연자와 좌장과 악수를 나눈 후 진행 요원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네고 돌아서는데 썰물처럼 빠져나간 객석 한쪽 편에 수강자 중 두 사람이 가지 않고 기다리고 있다가 내게 다가온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비록 후배이긴 하지만, 나이의 내가 먼저 고개 숙여야 하는 유일한 사람으로서 매달 내게 꼬박꼬박 봉급을 주는 고마운 나의 고용주였다.

그런 그를 병원이 아닌 장소에서 내 강의 수강생으로 만나 인사를 받게 되니 그제야 병원장이 아닌 후배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옆에 있는 젊은이를 자기 아들이라며 내게 인사시켰는데 내과 레지던트 4년 차라 한다.

하루 저녁 병원을 비우고, 전문의 고시를 앞둔 한창 바쁠 시기의 아들까지 대동하여 서울까지 와 내 강의에 참석한 그는 과연 무얼 보고, 무얼 보여주고 싶었을까?

아무튼, 반갑고 감사했다.


그들과 작별한 후, 텅 빈 홀을 지나 문 밖으로 나오니 회사관계자들이 감사의 인사를 한다. 

그때, 이 행사의 주관 책임자로서 사회까지 맡았던 손 과장이 상기된 표정으로 다가와 흥분해서 말했다.


"교수님, 원래 이런 overnight 행사의 경우 첫날에는 신청자 대부분이 등록하는데 다음 날은 절반도 등록을 안 해요. 그런데 이번 행사에는 신청자 90명이 어제 한 명도 빠짐없이 등록했을 뿐 아니라 오늘은 그중 80명이나 등록을 했답니다. 그리고 교수님 강의 동안에는 강의 끝날 때까지 참가자들의 몰입도가 대단했습니다. 교수님 너무 감사합니다. 모시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이런 기분 좋은 인사를 들으며 물 한 잔 마시고 있는데. 아까부터 가까운 곳에 서 있던 한 사람이 아는 체하는 눈치라 "이 행사 참가자이신 모양이지요? 오늘 강의 어땠습니까?"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러자 그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가 월척을 낚고 갑니다. 이 말씀 드리려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교수님, 너무 감사합니다."


그러고 보니 참가자 모두가 돌아가고 아무도 남지 않은 이 자리에 그 혼자 서 있을 이유가 없었다.

참으로 고마웠다. 그리고 그런 감상은 난생처음 들어보는 참신한 표현으로서 의미심장한 내용을 함축하고 있었다.


이제 직원 둘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리셉션 데스크를 떠나 호텔 로비로 가서 내 아들 가족이 나를 데리러 올 때까지 소파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는데, 아까 월척 이야기를 한 선생이 또다시 나에게 다가와 명함을 건네며 정식으로 인사한다.


명함을 보니 광명에 있는 한 내과병원 병원장이었다.

그의 용건인즉, 자신은 초음파를 직접 하고 있고 자신이 속한 study group이 하나 있는데 그 그룹에 나를 초청하여 초음파 특강을 듣고 싶으니 내 연락처를 좀 알려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덧붙이길

"만약 오시게 되면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교수님 하고 싶으신 대로 마음대로 강의하셔도 됩니다."

"하하, 끝장 토론을 하자는 말이군요."

"예, 이 그룹 사람들은 끈질겨서 시간에 상관없이 토론합니다."

"그것참 마음에 드네요, 저 역시 그런 것 좋아합니다."


이런 열의를 가진 사람들이라면 한 번 가르쳐 볼 만하다 싶어 전화번호를 주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손 과장으로부터 메일이 왔다.

그 내용은 내가 사전에 부탁한 피드백에 관한 것으로 그날 참가자들의 반응에 대한 회사 측 분석 결과물이었다.


"선생님, 말씀 주신 피드백 시트가 정리되어 관련 내용을 전달해 드립니다. 


강의 별로 만족도 구간을 다섯 개로 나뉘어 피드백을 받았고, 선생님의 강의는 매우 만족이 80퍼센트, 만족이 20퍼센트였으며 보통 이하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강의 중 선생님 강의가 가장 좋았다고 되어 있습니다. 좋은 강의를 만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


기타 의견 기재란에는 선생님의 강의를 다시 듣고 싶다는 내용이 가장 많았으며, 찾아서 공부하고 있었던 복부초음파에 대한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매우 좋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강의 내용과 내용 전달 방식이 매우 좋았다고 기재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행사 후 영업부에서 고객들을 직접 방문하여 들은 피드백으로는 35년간 초음파를 전문으로 하신 선생님께 강의를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은 기회였다고 많은 원장님께서 감사의 인사를 전해오셨습니다. 


선생님을 모실 수 있어서 정말 영광이었습니다~. 심포지엄을 잘 진행할 수 있게 해 주신 선생님, 정말 가슴 깊이 감사 말씀 올립니다. 감사합니다!" 


만족도 조사에서 [매우 만족, 만족, 보통, 불만족, 매우 불만족] 5개 구간 중 매우 만족 80%에 만족 20%가 나왔다면 100점 만점에 98점이 나왔다는 말이다.

이만~ 하면 됐다.




나 하나의 수고로 모든 사람이 만족해하고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니 이 얼마나 보람된 일인가!

나는 청중에게 각각 한 사람 분량의 지식과 감동을 주었을 뿐인데, 80명 분량의 만족과 기쁨으로 되돌려 받았으니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이것으로 나는 초음파 무대의 뒤안길로 사라질 것이며, 한 시대를 풍미한 노병은 전설로 남고 떠오르는 샛별들이 그 뒤를 이으리라.

이제 그들이 우리 하늘을 넘어 세계의 밤하늘을 아름답게 수놓는 모습을 그려보며 흐뭇한 미소를 머금는다.

이전 28화 강28 무대의 막은 올라가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