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무식
오늘은 새해 첫 출근이다.
그리고 과시무식(科始務式)이 초음파실에서 열린다.
거기서 나는 신년 단배사(團拜辭) 마지막 순서로 건배사를 해야 한다.
나이 60을 넘기고부터는 연말 연시면 여기저기서 송년사나 건배사 하기에 바빠
지난 년 말에는 일곱 건이나 해야 했다.
그런데 내 성질 상 똑같은 건배사를 이곳저곳에서 써먹지는 못한다.
사정이 이러하다 보니 이것도 은근히 스트레스다.
바로 나흘 전 과송년회에서 100명이 넘는 직원들 앞에서 송년 건배사를 했는데......
오늘은 또 무슨 말을 해야 하나?
완벽주의 성향의 내 성정으로는 집을 나설 때쯤이면 이미 모든 준비가 끝났어야 하는데
오늘따라 웬일인지 도무지 화두(話頭)가 떠오르지 않는다.
그런데 희한한 것이 전혀 걱정이 안 된다 점이다.
무슨 말을 하지????
광안대교를 넘어가도 감감무소식이고, 황영터널 들어가도 생각이 안 나다
터널을 나오는 순간 번쩍 시 한 편이 떠 올랐다.
옳거니!!!
# 8:30 AM, 시무식장
초음파실 통로를 따라 긴 테이블 위에 커다란 케이크, 과자, 및 음료수가 놓여있고 그 주위를 교수와 레지던트로 구성된 의국원들과 각 파트 부서장급 직원들이 둘러섰다.
먼저 과장과 기사 실장의 신년인사가 있고 난 후, 마지막 순서로 나의 신년 건배사 차례가 되었다.
"여러분, 오늘은 제가 한시(漢詩)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이 시는 지금껏 서산대사가 남긴 선시(禪詩) 중 하나로 알려져 왔습니다만 실은 이양연이란 분의 야설(野雪)이란 시지요."
그러고는 낭랑한 목소리로 아래와 같은 시 한 수를 읊어갔다.
「눈 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에는
그 발걸음을 어지러이 하지 말라.
오늘 내가 밟아 간 이 발자국은
분명 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터이니. 」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이 시의 내용은 지도자들이 갖추어야 할 덕목에 관한 것이지만,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넓은 들판이 온통 눈으로 새하얗게 뒤덮여 버리면 길이고 이정표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게 되겠지요?
이런 곳을 통과하는 내가 똑바로 걸어가지 않고 이리저리 발걸음을 어지러이 걸어간다면 내 뒤에 오는 사람은 무얼 보고 길을 가겠습니까?
바로 내가 남기고 간 그 발자국을 따라가지 않겠습니까?
우리 모두 직장에 오면 각 파트의 장이요 집에 가면 가장이거나 부모입니다.
자식은 부모의 앞모습을 보고 자라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뒷모습을 보고 자란답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자식이 아니라 하더라도 내 뒤에 오는 누군가는 내 뒷모습을 보고 따라올 것입니다.
나라가 여러모로 참 어렵습니다.
올 한 해 우리가 걸어갈 길은 지난해보다 더 많은 눈이 쌓인, 아무런 이정표도 보이지 않는, 참으로 막막한 들판 길이 될 것입니다.
우리! 이럴수록 정도(正道)로 걸어갑시다.
이 사회에 만연한 편법(便法)일랑 제발 좀 그만두고, 한 걸음 한 걸음 바른걸음으로 바른길을 갑시다.
그 길만이 우리가 살길입니다.
자~ 오늘 건배 구호는 '답설야중거'입니다.
다들 음료수 잔을 들고, 내가 '답설야!' 하면 '중거!'하고 힘차게 외치기요.
자~~ 답-설야!"
"중거~~~"
[踏雪野中去]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日我行蹟 금일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이 시는 백범 김구선생의 애송시로서 지금껏 서산대사의 '답설야중거'로 알려져 왔고 나 역시 그렇게 알고 외워왔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시는 조선 정/순조 때의 시인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1771~1853)선생의 작품으로서 그의 시집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실려있고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이양연의 작품으로 올라 있다 한다.
그 시의 제목과 원문은 다음과 같다.
[野雪]
穿雪野中去 천설야중거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今朝我行跡 금조아행적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여기서 원작인 야설(野雪)과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의 차이점은
글자 두 개가 다르다는 점이다.
즉, 첫 행에서 밟을 답(踏) 대신 뚫을 천(穿)으로, 셋째 행에서 금일(今日) 대신 금조(今朝)로 되어있는데
내가 원작에 충실하지 않고 편작(編作)이라 할 수 있는 답설야중거(踏雪野中去)에 충실한 번역을 한 이유는
行跡을 '발자국'으로 의역(意譯) 했을 때 전반적인 문맥 상 눈 덮인 들판을 뚫고 지나간다(穿雪野)는 표현보다는 밟고 지나간다(踏雪野)는 표현이 보다 더 매끄럽고, 오늘 아침(今朝)이라고 한정 짓기 보다는그냥 오늘(今日)이라고 하는 것이 보다 넓은 시간적 여유를 두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