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화. 운명의 굴레

봄이 왔는데, 겨울도 다시 올 테지요.

by 붕어예요

겨울은 끝자락이었다. 끝날 듯 말 듯,

하늘은 매일 조금씩 눈을 떨구었다.

산속의 집 안에서는 장작이 타닥거리며 속삭였고,

연심은 바느질을 하다 말고 문살을 힐끗거렸다.

아이들은 화로 곁에서 작은 돌멩이를 굴리다가

졸음이 와 고개를 끄덕였다.

백서는 장독대에서 들여온 항아리 뚜껑을 하나씩

닦아 올려두며 소리 없이 기침을 삼켰다.


쿵—, 쿵. 두 번, 잠깐의 쉼, 그리고 다시 한번.

연심이 바늘을 멈추고 낮게 속삭였다.


“이 밤에 누구지?”


바람을 가르며 낮은 목소리가 문틈으로 스며들었다.


“차윤재요. 문 좀 열어주시오.”


서화는 잠시 눈을 감았다.

화롯불의 빨간 심지가 살짝 튀며 작은 불꽃을 흩었다.

그녀가 고개를 끄덕이자 연심이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눈발이 한 움큼 들이치며 등불을 흔들었다.

그 속에서 윤재가 서 있었다.

도포자락은 젖어 눌어붙었고, 어깨에는 눈이 소복했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그의 눈빛만은 오히려 또렷했다.

연심이 반걸음 물러서자, 서화가 문턱으로 나섰다.


“... 도련님, 더는 찾아오지 말라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윤재가 잠시 웃는 듯 고개를 숙였다.

웃음이라기보다는 체념이 뚝 떨어지는 표정이었다.


“오지 않으려 했습니다.

헌데... 내 마음인데도 어찌할 수가 없었습니다.”


서화는 눈을 들지 않았다.


“도련님께서 곧 혼인하신다 들었습니다.

부디 가정의 평안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그만하시지요.”


윤재가 한 발 다가섰다가 멈췄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습니다.

함께 도망가자 하면,

저는 기꺼이 그리할 것입니다.”


서화가 그제야 눈을 들었다.

오래된 온기와 차가운 결심이 한눈에 어지럽게 얹혔다.


“무슨 농을 그리도 재미없게 하십니까.

저는 더 이상 도련님께 마음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 있는 겁니다.”


잠깐의 침묵 끝에 그녀가 마지막 말을 고르듯 뱉었다.


“돌아가십시오. 두 번 다시 찾아오지 마십시오.”


문은 서서히 닫혔고, 나무판이 포개지는 소리가

겨울밤을 가로질렀다.

윤재의 발자국이 눈 위에 선명히 찍혔다가

바람 한 번에 서서히 흐릿해졌다.

서화는 문고리를 붙들고 오래 서 있었다.

그때 연심이 걱정스레 다가와 물었다.


“아씨... 괜찮으셔유...?”


서화는 힘겹게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잠시만... 잠시만 이대로 혼자 있게 해 줄래...?”


그녀는 비틀거리며 뒷마루로 향했다.

화로의 불꽃이 굽이치며 조용히 타올랐다.


며칠 뒤 도성의 대청은 붉은 비단과 등으로 번들거렸다.

북소리, 축사, 웃음. 사람들 말 사이로 호들갑 섞인

덕담들이 넘쳤다. 신부는 단정한 활옷과 족두리에

잔머리 한 올 흐트러짐 없이 서 있었다.

집안 어른이 천천히 글을 읽어 내려가다가

주례의 소리가 대청에 낮고 길게 울렸다.

“신랑은 신부의 손을 잡으시오.”


윤재가 손을 내밀었다.

신부의 손끝이 닿는 순간,

윤재의 손이 이상하리만큼 차가웠다.

사람들의 환호가 파도처럼 지나갔지만,

그 소리는 금세 멀어졌다.

그의 시야 가장자리에 흰 눈발과 어두운 나무문이

번개처럼 스치고 사라졌다.


‘서화...’


주례의 말은 꼬리를 물고 이어졌고,

축주는 잔을 채웠다.

사당의 위패가 빛을 받아 반짝였고,

어른들은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윤재는 예를 갖췄고,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절을 올렸으며,

신부의 손을 이끌어 자리에 앉혔다.

모든 것이 무사히 흘렀다.

니, 무사히 흘러야만 했다.

그래서 그는 단 한 번도

눈빛을 흐트러 트리지 않았다.

신부가 조심스레 물었다.


“... 서방님, 추우십니까?”


“아닙니다.”


윤재는 짧게 답하고 잔을 들었다.

입술이 닿았으나, 술맛은 나지 않았다.

화려한 등 불빛 아래 앉아 있으면서도,

윤재의 마음은 눈 덮인 산길을 떠나지 못했다.


그러나 혼인 며칠 뒤,

변방에서 급히 올라온 전갈이 모든 걸 바꿔 놓았다.

나라가 뒤숭숭했고, 젊은 무사와 선비들은

모두 군문으로 불려 나갔다.

윤재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더 이상 산속 집을 찾지 못했다.

하루, 이틀, 한 주가 지나도록 문 앞은 고요했고,

마당의 발자국은 아이들뿐이었다.


어느 날, 산길을 떠돌던 보부상이 산속 집에 들렀다.

커다란 보따리를 옆구리에 끼고,

어깨에는 장삼이 너덜너덜했지만 눈빛만은 살아 있었다.

불가에 앉아 언 두 손을 녹이더니,

숨을 훅 불고 말했다.


“아씨, 세상 소식 들으시겠습니까?”


서화가 찻잔을 내밀며 고개를 끄덕였다.

보부상이 목을 축이고 말을 이었다.


“변방이 시끄럽다 하더이다.

오랑캐가 경계를 넘본다니 군문이 통 어수선해서 원...

젊은 사내들, 다들 불려 나갔다지 뭡니까.”


연심이 바느질을 멈췄다.

“그럼... 도성도 난리가 났다는 말이 여유?”


“아휴, 도성이라고 뭐 다를 게 있겠어?

들리는 소문엔 차장군님도 그 얼마 전에 혼인한

아드님을 데리고 변방으로 가셨다고 하더라고.”


서화의 손에 있던 숟가락이 그릇에 닿아

‘짤랑’ 소리를 냈다.

서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등 뒤로 찬 기운이 사뿐히 기어올라

등에 달라붙는 느낌만이 선명했다.

보부상이 눈치를 보며 덧붙였다.


“아씨, 겨울이 길면 봄은 짧은 법 아니겠습니까?

이 말이라도 남기고 갑니다.”


“고맙습니다.”


서화의 목소리는 낮고 일정했다.

그 일정함이 오히려 위태로웠다.

밤이 내려앉자 연심이 작은 소리로 물었다.


“아씨, 정말 윤재 도련님께서...”


서화가 고개를 저었다.


“글쎄... 무사하시겠지...”


등불 심지를 낮추자 방 안의 그림자가 길어졌다.


그 무렵, 바닷바람 거센 남쪽 유배지에서도

또 다른 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문짝이 덜컹거릴 때마다 지붕 위 해초가

바스락 소리를 냈다.

춘매가 부엌에서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물을 데워 그 앞에 놓고,

장독에서 퍼온 장을 작은 사발에 담아왔다.


부엌문 앞에 있는 작은 평상에 앉아

책을 읽고 있던 김지헌이

살며시 책을 내려놓더니

춘매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말했다.


“그만해라. 굳이... 이럴 필요 없다.

이젠 예전처럼 주인과 종이 아니라 하지 않았느냐.”


춘매가 미소를 지었다.


“평생 이리 살아왔는디 그게 쉬이 바뀐데유...

너무 괘념치 마셔유”


김지헌은 바람 소리를 잠시 들었다.

눈은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다 이내 눈이 시리기라도 한 듯

감았다 뜨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너를 이리 만든 게 바로 내가 아니겠느냐...”


춘매가 아궁이 앞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그리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김지헌 앞으로 다가갔다.


“나으리, 사랑은 소인의 선택이었고,

이별도 마찬가지였고 만유

그 뒤의 일도 소인의 몫이 였어유.”


그 말에 김지헌의 눈빛이 흔들렸다.

오래 삼켜온 물음이 목에 걸렸다.

그는 결국,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 연심이, 그 아이...”


춘매가 고개를 들었다. 바람만 파도소리를

이끌고 왔고 둘은 서로를 바라보며

공간이 멈춘 듯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 정적을 깨며 김지헌이 조심스레 물었다.

“혹시.. 내 피가... 아니냐.”


김지헌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만큼 낮았다.


“오래전부터 의심했으나, 두려워 물을 수가 없었다.”


춘매는 한참 동안 대답하지 않았다.

그 침묵이 오히려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결국 그녀가 부드럽게 고개를 저었다.


“나으리.”


미소인지, 울음인지 모를 표정을 지으며,

그녀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때는... 살아야 했고 만유...”


그 말 한 줄에,

젊은 날의 모든 장면이 움찔하며 떠올랐다.

기와지붕 위로 햇빛이 번지던 오후,

서로의 손등을 스치던 여름의 땀,

밤비 내리는 처마 밑에서 나누었던 속삭임.


그리고 어느 날,

집안의 명에 따라 올려진 혼인서.

김지헌이 윤 씨 부인과 혼인하던 날,

춘매는 울지 않았다.

울면 바닥으로 떨어질 눈물이 너무 많을 것 같아,

그저 하늘을 오래 올려다보았다.


이별 뒤였나, 몸의 변화를 눈치챘다.

두려웠다. 아이를 잃을까 봐,

세상이 그 아이를 앗아갈까 봐.

그녀는 서둘러 다른 사내와 혼인했다.

소문을 피하기 위한, 얄팍한 울타리였다.

그러나 그 울타리는 오래 버티지 못했다.

남편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떴다.

아이가 세상에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녀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그 뒤로 그 누구도 묻지 않았고, 누구도 의심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모두, 연심이는 죽은 남편의 아이라 여겼다.

세상은 늘 그 정도의 이야기만 믿었다.

현재로 돌아와, 춘매는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

춘매의 이야기를 다 들은 김지헌은

손을 모아 움켜쥐었다가 천천히 풀었다.

그리고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춘매야... 내 마음이 아는 것을 이제는 부정하지 않을 것 이다.

참으로 미안하구나... 난 정말 그 때도 지금도 비겁한 사내다...”


바람이 다시 문을 흔들었다.

그 소리가 마치 오래된 방죽을 두드리는 물소리 같았다.

두 사람 사이에 앉은 낮은 청자는 조용히 김을 뿜어냈다.


그렇게 유배지의 밤이 깊어가던 때,

멀리 북쪽 산속의 집에도 봄기운은 더디게 스며들고 있었다.

눈은 여전히 내렸지만, 낮은 조금씩 길어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산길을 울리는 두드림 소리가 다시 들려왔다.


“서화… 나요.”


연심이 먼저 달려가려 하자 서화가 그녀의 팔을

조용히 잡아 멈추게 했다.


“내가 나갈게”


연심은 고개를 끄덕이고 한 발 뒤로 물러섰다.

문이 열리자, 윤재가 서 있었다.

갑옷은 그대로였으나

허리춤에 묶인 붕대 하나가 삐져나와

바짓단을 살짝 물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그 눈빛은, 그 모든 상처와 피로를

밀어내는 따스한 기운으로 빛났다.

서화가 한 걸음 내딛어 그를 맞았다.

그는 어색하게 웃었다.


“미안합니다. 이렇게 찾아와서.”


서화가 아무 말 없이

그의 옷자락을 힘주어 잡아당겼다.

손끝에 닿은 감촉은

전보다 더 실하고 믿음직스러웠다.


“다치신 겝니까?”

그녀의 목소리는 낮았으나

묻고 싶다는 간절함이 깃들어 있었다.

윤재가 허리를 조금 숙이며 팔을 들어 보였다.

붕대가 보였고, 그 밑으로는

피가 마른 자국이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옆구리에… 찰과상일 뿐

크게 다친 건 아니니 괘념치 마십시오.

그보다 내게 중요한 건…

낭자가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서화의 눈엔 순간 눈물이 차올랐다.

코가 찡하게 아파왔으나 이내 숨을 가다듬었다.


“제가 이젠 뭐라 불러야 합니까? 예전처럼 도련님이라고

부르면 아니 되지 않사옵니까?”


그는 웃었다. 그 웃음엔 어딘가

비장함보다도 다정함이 자리했다.


“이렇게 살아 있는 한 끝까지 낭자에게

저는 도련님으로 남을 수 있겠습니까...?”


연심이 재빨리 물과 따뜻한 헝겊을 들고 나왔다.

백서도 상자에서 약포를 꺼내 왔다.

소란스럽지 않게 모두가 움직였다.

윤재는 서화를 물끄러미 보며 손을 내밀었다.

서화는 그의 손을 잡아 이끈 뒤, 안으로 들였다.

집안은 순간 온기로 차올랐고,

윤재는 문턱을 넘어 서화의 불빛 속에 서자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


“오래 머물지는 않겠습니다.

낭자를 난처하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윤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서화는 잠깐 그를 쳐다보다가 낮게 답했다.


“예, 숨이 골라지거든 내려가시지요.”


윤재 자신도 모르게 순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그리고 그는 손을 더 꼭 쥐었다.

서화의 손을 잡았던 그 온기가 남아 있었고,

그의 긴 전장의 추위를

조금씩 녹여 주는 듯했다.

백서가 잔잔히 말했다.


“간단히 상처 치료만 하고 쉬면

곧 괜찮아 질게요”


그런 백서를 바라보며 윤재가

허리를 살짝 숙여 감사의 인사를 하였다.

연심은 소나무 껍질처럼 굳은 손으로 불을 다졌다.

서화는 연심이 곁에 조용히 자리를 잡았다.

밤이 깊어갈수록, 이야기는 차츰 잦아들었다.

서화가 어느 순간 그의 말을 끊고 조용히 말했다.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윤재의 얼굴이 순간 굳었다.

그는 서화의 손을 더 세게 잡았다.


“정말 너무 하십니다... 어찌 제게 이렇게까지

잔인 하십니까...? 제가 얼마나 낭자를

그리워했는지 아십니까...?”


서화는 한숨을 쉬었다. 그 한숨은 안도와

상처의 무게를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녀는 그의 이마를 손등으로 살짝 짚어보더니,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련님, 댁 부인께서 기다리실 것 이옵니다.”


윤재는 조용히 눈을 감았다.

침을 한번 삼키고는

이내 아무 말 도 하지 않았다.

대신 그가 서화의 손을 꼭 잡았다.

바깥에서 바람이 문을 흔들 때마다

방 안의 불빛은 몸을 낮추었고,

그 속에서 둘의 그림자는 길게 늘어났다.


밤은 그렇게 지났고,

이튿날 이른 아침 윤재는 모두가

아직 자고 있는 틈을 타

산속의 집을 조용히 빠져나왔다.

그 뒤로도 윤재는 끊임없이

산속 집을 찾았다.


산속에 봄기운이 스며들 무렵,

윤재는 여느 때처럼 말을 몰아 산길을 올랐다.

그가 마당에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아이들은 제일 먼저 뛰어나왔다.


“도련님이다!”


막동이는 나무막대를 검 삼아 휘두르며 달려왔고,

단이는 뒤에서 치맛자락을 치켜쥔 채

헐레벌떡 따라왔다.

윤재가 허리를 굽혀 손을 벌리자,

아이들은 기어이 그의 품에 안겼다.


“자, 오늘은 검술을 배워볼까?”


막동이의 두 눈이 반짝였다.

윤재는 허리춤에서 나무검을

꺼내 들고 자세를 잡았다.

“힘보다 먼저 마음이 고요해야 한다.

이렇게 발을 굳건히, 눈은 흐트러지지 않게.”


막동이가 흉내를 내자,

윤재는 웃으며 아이의 발목을 잡아 바로잡아 주었다.


“옳지. 그 자세라면 백 명도 두렵지 않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고,

단이도 돌멩이를 들고는 칼춤을 추듯 장난을 쳤다.

서화는 그 모습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바구니를 챙겨 들었다.

약초를 캐러 나갈 차비였다.

윤재는 곧장 눈치채고 다가와 바구니를 받아 들었다.


“이리 주시지요. 제가 들겠습니다.

어찌 낭자가 이 무거운 걸 직접 드시렵니까.”


“익숙한 일입니다. 괜히 번거롭게 하실 것 없습니다.”


“번거롭다니요. 낭자와 함께

걷는 길은 늘 가볍습니다.”


서화는 잠시 시선을 내리깔았다.

바람결에 풀내음이 스며들며 두 사람 사이를 감돌았다.

연심이 아이들을 챙겨 뒤따랐다.

눈이 다 녹지 않아 이따금 발이 미끄러졌지만,

아이들은 환성을 지르며 앞서 달렸다.

윤재는 바구니를 들고 서화 뒤를 따라 걸었다.


“낭자, 이 잎은 무슨 약입니까?”


손가락에 쥔 잎사귀를 들어 보였다.


“뿌리를 달여 마시면 감기에 좋습니다.


서화가 무심히 미소를 지어보였다.

그 미소는 오래간만에 산속에 맑게 물들어졌다.

아이들은 꽃봉오리를 주워 서화 품에 안기며 자랑했다.

윤재는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문득 서화에게 눈길을 고정했다.


“이 순간이 멈추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두 잊고… 그저 이렇게.”


서화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땅을 보며 애꿎은 풀만 뜯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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