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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y Sep 10. 2021

COOL

                                                  

학교(school)에서 ‘sh’를 떼어내면 “멋지다(cool)”가 된다.

                                           -존 오코너      

  학교에 다닐 때는 몰랐는데 막상 사회인이 되고 보니 모든 것의 기준이 다양하다. 일반상식이라는 틀 속에서 나이와 성별에 따라 각자 다르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말을 안 하고 있어서 모르다가 서로 마음을 주고받다 보면 이질감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한다. 같은 또래 집단에서 매일 얼굴을 맞대며 비슷한 공부와 생각을 하고 있던 친구들과 비교하면 너무도 생소하기 때문이다.      

 나의 성격은 얌전한 편이긴 하지만 항상 활발한 친구들이 주위에 많았다. 그런데도 서로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갖고 있었고 친구들은 그것을 실천에 옮기는 용기가 있었기 때문이리라.       

 한 번은 한 친구의 초대로 ‘인디언 아이들의 춤’이라는 공연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다. 나이가 9살에서 13살가량의 아이들이 동그랗게 모여 춤을 추며 노래를 부르는 짧은 공연이었는데, 그렇게도 맑고 초롱초롱한 눈은 세상에 태어나서 처음이다.     

 아이를 출산해서 지금에야 알겠지만 막 태어난 아기가 처음 엄마를 쳐다보는 순수한 눈빛 같은 아름다움이었다. 그것은 지켜주고 싶은 모성애와 의지하고 싶은 나약함을 동시에 느끼게 하는 신비로운 감정이었다.     

 직감적으로 이런 만남은 좀처럼 없을 것 같았기에 공연이 끝나자마자 무대 뒤의  인디언 아이들과 악수를 하고 사진을 찍고 싶어 달려갔다. 나의 엉뚱한 행동에 창피하지만, 친구도 같이 따라왔다. 그때 우리의 나이는 19살이었고, 우리의 부탁에 응해준 아이는 9살과 13살이었는데 나이를 떠나서 금방 친구가 되었다.     

 침착하고 자신만만한 태도에 반했다고나 할까? 지금도 ‘엔젤’과 ‘크리스’라는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인디언들과의 인연은 여기까지만. 주소를 써 주긴 했지만, 글씨가 알아보기 어려웠다.     

 그런데 친구는 진심으로 ‘엔젤’과 ‘크리스’를 만나러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엔젤’과 ‘크리스’의 맑은 영혼을 동경하기는 했지만 멀리 외국까지 가기는 겁났다. 결국, 친구는 열심히 아르바이트한 돈을 모아 여름방학 내내 미국 쪽으로 여행을 떠났고 가을학기가 돼서야 모습을 비췄다.      

  

“나, 엔젤을 만나고 왔어.”         

  

“어떻게?”          

 

그랬더니 엔젤을 만나러 가기보다는 인디언들의 마을을 여행할 목적으로 가까운 다른 친구를 데리고 렌트카를 빌려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그런데 우연히 한 인디언 마을에서 아주 쉽게 ‘엔젤’을 만났다고 했다.     

 그때 아주 기뻐서 이런 우연이 있나 싶었는데 그 마을 ‘추장님’이 나타나셔서 더 놀라운 이야기를 하셨다고 한다.     

 

“당신이 올 것을 일주일 전부터 예감하고 있었습니다. 환영합니다.”

라고 말이다.     

 

사람이 마음으로 생각하는 것이 간절할 때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다고 친구는 말했다.     

 그리고는 ‘추장님’이 흙으로 그리신 그림과 이상한 모양의 귀걸이를 내게 선물로 주었다. 그 친구도 크리스천이었는데 종교를 떠나 영적인 교감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지금 그 친구는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사모로 아들 셋 낳고 시골의 작은 교회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       

 젊은 시절 학교에서 만난 친구와의 비슷한 경험과 사고방식의 체험은 일시적일지라도 어른이 되었을 때 큰 힘이 된다. 우리가 사회에 나왔을 때 ‘홀로서기’를 잘한다는 것은 이미 학교에서 잘 훈련된 일체감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만약 사회인이 되어서도 자기와 다른 생각의 창의적인 인재를 비난하고 싶다면 그때는 다시 학교라는 공동체에서의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적어도 학교라는 곳에서는 나약한 우리의 생각을 일깨워 줄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거나 되어 줄 수 있다.     

그런 생동감이 있기에 작은 감정에도 쿨(cool)할 수 있다.     

믿음이 있기에 굳이 말하고 표현하지 않아도 쿨(cool)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인생이 곧 학교이기 때문이다. (*)

                                                                                                 2013.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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